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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의글방 Dec 03. 2023

인스타, 진작 할 걸 그랬어

‘뭐야, 인스타 안 하는 사람이 없네.’     


처음부터 인스타 따위를 하려던 생각은 없었다. 그건 철없는 젊은 여자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난 그런 거 모른다, 관심 없다, 상관없이 살 작정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하나 가진 언어치료사 자격증이 있는데, 관련 교육을 받던 중 우연히 시작한 인스타그램. 이 놈은 커피믹스보다, 온라인쇼핑몰보다 강한 중독성을 가진 실로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인스타 안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만 안 하고 있었다. 그럴 순 없지.     


 필요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나가면 꼭 들렀다 가야 할 것 같은 다이소 마냥 누군지도 모르는 인스타 스토리며, 피드를 드나든다. 인스타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니 여기에는 없는 사람이 없고 정보도 넘쳐난다. 여고 시절 좋아하던 우리 오빠는 요즘 마라톤 하시며 유공자분들 집 짓고 계시는구나, 역시 내가 사람 볼 줄 알아. 우리 이은경 선생님 오늘 머리 감고 강연가시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일상이 공유된다. 전업 주부로 살면서 내 손으로 집밥 해 먹이며 사는 게 가장 큰 보람이자 자랑이었는데 일하면서 집밥 해 먹는 사람도 이렇게나 많네. 우와, 어쩜 집을 저렇게 깔끔하게 하고 살 수 가 있지? 수납 바구니 엄청 사서 정리했나 보네. 집 정리도 돈으로 하는 거지. 저런 건 어디서 샀데? 저거 사려고 검색 엄청 했겠구만.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이 아직까지 색안경이 써진 채로 눈에 보인다. 인스타 사진 속 화려함과 여유로움은 잘 촬영된 잡지의 한 컷으로 보인다. 사진 너머의 현실도 사진과 같을까? 그렇지 못할 꺼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연출된 사진들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남편이 인스타그램 보면서 이런 거 보고 나를 디스한 거였구나 하고 다시 확신을 한다.  

 인스타 관심 없다고 했지만 매일 들여다보면서 살짝 절망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 같다. 그 들의 세상에서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예쁘고 멋지고 자신감이 넘치며 무척 여유로운 모습이다. 사회 생활 없이 아이들과의 생활만 10년 한 내 모습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아서 그 꼴 보기 싫으면 내 눈만 감으면 되는 거다. 그런데 왜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도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내가 코끼리 농장의 가느다란 밧줄이 묶인 덩치 큰 코끼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힘을 쓰면 언제든 끊어버리고 도망갈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묶인 가느다란 밧줄이 아직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코끼리!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내 밧줄에 묶인 채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바꾸기 위해 묶여있던 밧줄을 무쇠 다리로 끊어 제끼고 인스타 속 주인공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게시물을 하나씩 업로드하고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팔로잉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주저하던 현실 아줌마는 인스타그램 세상에서는 먼저 좋아요를 누르며 친숙하게 댓글을 달고 있고, 칭찬을 아낌없이 하고 있다. 댓글이 달렸음을 알리는 알림음이 들리면 설거지하던 고무 장갑을 벗어던지고 확인하며 입꼬리를 실룩실룩 거린다. 전에 없던 즐거움과 생기를 찾게 되면서 내 안의 사그라들었던 불꽃이 치지직거리며 다시 열기를 내는 듯하다.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인친들과 낭독 모임을 통해 새벽에 일어나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고 강연에서 만났던 이은경 선생님을 통해 브런치 글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대한 재미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팔로워가 뭐지? 팔로잉은 또 뭐야, 말이 비슷한데 다른 건가? 공동 구매를 할 때도 똑같이 이런 내용이 있었을 텐데 왜 이제 이런 게 보이지? 상대가 나를 친구 추가하면 팔로우구나, 내가 친구 추가하면 팔로잉이구나. 맞팔은 서로 이웃이구만. 궁금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했던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초록창으로 검색을 한다. 또, 뭐가 있더라, 맞다. 피드, 태그, 릴스도 있었네.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려고 하니 생소한 단어가 너무도 많다. 주입식 공부 세대인 아줌마는 노트에 일일이 메모를 하며 뜻을 적기 바쁘다. 도서관 검색에서 sns에 관한 책을 찾아 보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하는 일에만 익숙한 80년생 아줌마는 절대 혼자서 인스타의 메뉴 버튼을 허투루 누르지 않는다. 다만 검색하고 또 검색할 뿐이다. 인스타그램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나니 새삼 릴스나 게시물 하나를 보더라도 작성한 사람들의 고민과 정성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어떤 고민을 하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정성을 쏟아서 만들었을까 생각하니 눈 감고 안 보면 그만이라던 생각이 점점 바뀌기 시작한다. 게시물의 수가 많을수록 그 사람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그렇게 기록하지 못한 지난 일이 아쉽게 느껴지고 진작 시작하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을 보면서 과거의 나는 내가 만든 테두리 안에서 판단하고 결론 내리고 속상해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인스타 친구들에게 칭찬과 열정적인 응원을 받으며 긍정적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 보려고 한다. 44살! 아직은 어설프지만 새로운 꿈꾸기 참 좋은 나이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슬초브런치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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