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에요?
“정화? 대학생?”
“네? 아닌데요. 아줌마인데요.”
“내가 제대로 못 봤구먼 미안해요.”
“아이고, 제대로 못 봐주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비가 하루 종일 부슬부슬 내리는 금요일! 한가득 빵빵하게 넣은 가방이 힘겨워 하차문바로 근처에 자리를 잡았던 나에게 어르신이 옆에 앉으시며 물으신다. 처음에는 못 알아들어서 혼잣말을 하시는가 싶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중고등학교 이름이라는 것을 퍼뜩 알아차리고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니 바로 대학생이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대학생 소리인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짐은 물론이며 아줌마라고 말씀드리는 소리도 제법 경쾌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서 어르신에 감사하다는 인사가 저절로 나왔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안은 소위 동안 집안이었다. 얼굴 형태도 동굴동굴하고 항상 단발을 하거나 길어도 어깨를 넘지 않는 머리 스타일이었기도 하였고 밋밋하게 생겨서 그런지 어리게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20대가 되어서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어린 얼굴이 조금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부모님들을 자주 대하고 부모 교육을 해야 하는 치료사가 초짜처럼 보여서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0대가 되어서도 경력은 점점 많아지고 치료실을 운영하면서도 어린 얼굴로 건물주나 같은 건물에 남자 사장님들도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움츠려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만 육아하는 전업 주부가 되고 나니 ‘아가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집에만 있거나 동네 놀이터, 도서관 등만 다니다 보니 ‘누구 엄마’로만 불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듣기 거북했던 나이에 맞지 않은 호칭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듣기 싫었던 때가 언제냐 싶게 불러주시니 감사해서 뭐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에 따라 불려지는 호칭이 달라진다. 선생님이 될 수도 ‘누구 엄마’로만 불려지기도 ‘아가씨’로 불려지기도 한다.
그중에서 최근에 들은 말 중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오늘의 ‘아가씨’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