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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나다 Nov 02. 2023

사업이 망했습니다

쇼핑몰 고인물의 이야기

“저 다음 주부터 장사 못하게 됐어요.” 마지막 순서로 오랜 단골 김정자 할머니에게 폐업 인사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갑자기 무슨 일이다냐?”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서운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종종 인터넷으로 결제가 힘든 어르신들은 전화로 주문을 도와드렸는데, 그러다 친해진 분이었다. “손님이 할머니밖에 없어서 망했어요. 헤헤헤.” 철없는 손녀의 농담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늙은이가 편하게 주문했는데 고마웠어. 기도 헐게. 넘 속상해 말어” “제가 더 감사했어요. 할머니 덕에 지금껏 먹고살았어요. 건강하셔요.” 진심이었다. 이 통화를 끝으로 매주 걸려오던 할머니의 주문 전화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 새삼 망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울리지 않는 전화 (출처 pixa bay)




지난 6년 동안 제조업체에서 물건을 납품받아 스마트 스토어, 쿠팡 등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파는 일을 했다. 지금이야 대학생, 육아맘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하는 쇼핑몰이지만 그땐 친구의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둘러봐도 비빌 언덕이라곤 하나 없었다.


‘역시 사업은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건가?’ 말 잘 듣던 모범생, 평범한 회사원 그 자체였던 내가 장사라니. 아무리 상상해도 어울리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낯설게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달랐다. 필요 이상으로 혼자 책임감 갖는 스타일,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배워서 남 주고 싶은 타고난 오지랖까지 이런 범생이 같은 성격이 의외로 장사와 사업에 꽤나 잘 맞았다.


“우리 회사에서 대표님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껏 미수금 없는 유일한 회사거든요”


어느 날 회계 업무에 지친 거래처 직원이 푸념 끝에 한 말이었다. 얼마나 많은 거래처가 미납을 하는지, 외상 금액이 이렇게 클 수가 있는지 난생처음 알았다. 줄 돈은 늦게 받을 돈은 빨리. 이 바닥이 원래 다 그렇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산 날짜와 마감 시간을 단 하루도 어기지 않았다. 특별한 철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나는 돈을 빨리 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거. 그뿐이었다. 내가 빨리 받고 싶은 만큼 상대에게 빨리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요즘 같은 신용 사회에서 이런 일이 나 혼자 당연했을 줄이야. 암튼 그 덕에 제조사에서 나온 신제품이나 한정판을 제일 먼저 팔 수 있는 뜻밖의 이득을 누리곤 했다.


“사장님 세상에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합니까?”


거래처와 고객에 대해 TMI는 없었다. 지나가는 대화로 알게 된 거래처 담당자와 단골 아줌마의 개인 대소사도 다음번에 꼭 안부를 물었다. 일부러 기억한 건 아니다. 소식이 진짜 궁금했다. 비대면이 주를 이루는 온라인 가게였지만, 주고받는 전화나 메시지로도 돈독한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재주가 있긴 했나 보다. 그렇게 점점 단골 고객층과 충성 거래처들이 생겨났다.


당연히 좋은 품질이 기본이었지만, 단골 고객들의 소개와 소개로 이어지는 입소문도 무시 못 했다. 메인 제품은 첫 매출 8만 원으로 시작해 2년 만에 해당 업계에서 판매량 1위 상품이 되었다. 리뷰 수와, 평점 모두 압도적으로 높았고 3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제일 잘 파는 셀러이면서, 동시에 가장 신뢰받는 거래처라는 점이 뿌듯하고 기뻤다.


계속해서 꽃길만 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야생 같은 온라인 시장에서 당연히 평온하기만 했을 리 없었다. 불안하고 힘든 날들이 더 많았다. 돌이켜보니 사업이 위태로워진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어떤 제품이 잘 팔린다는 소문이 나면 경쟁 상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장의 흐름이라더니 진짜였다. 세상은 돈 되는 걸 절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제조 원가와 물류비, 배송비까지 크게 오르면서 가격 경쟁에서 점점 밀려났다. 특히 후발 주자였던 큰 기업의 유명 브랜드 상품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판매율도 이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약육강식도 진리였다.


결정적으로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라는 큰 이슈가 있었고 해양 수산업 관련 제품들을 주로 취급했던 터라 전체 매출에 큰 타격이 왔다.

‘오 신이시여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큰 흐름 앞에 무릎 꿇는 기분이랄까. 내 힘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던 날들이었다. 개인사업자가 동일한 업종으로 6년이나 버텼다는 것이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긴 했지만, 사장으로서는 결론적으로 아이템 선정과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 규모와 업종을 수정해야 할 타이밍도 놓치면서 결국 쇼핑몰을 완전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 시작하면 되잖아? 요즘 쇼핑몰하기 쉽던데”


일을 그만둔 후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렇죠”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온라인 판매가 진입 장벽이 낮기는 해도 자리 잡고 성과를 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아무래도 다들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공식과 이론은 아는 말이지만 제일 큰 문제는 나에게 다시 시작할 돈도, 체력이나 기운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삼십 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투입된 자본과 시간에 비해 집약적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사용한 정신적 에너지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하루하루 팔리는 판매 건수와 수익률, 고객 클레임 등 주요 업무들이 하나같이 의지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 밖에 갑작스럽게 생기는 납품 기한 딜레이나 배송 관련 문제들도 대부분 외부의 잘못으로 발생했지만 책임은 모두 내가 져야 했다. 사업을 했던 것도, 망한 것도 처음이라 이런 모든 일들을 고농축으로 해내고,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리스크까지 미리 끌어와서 버는 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성공과 돈은 자신의 그릇만큼 담긴다는 것, 맞는 말이었다.


실패는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제법 긴 시간 누워만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방전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상태였다. 장사가 한참 잘 될 때에는 돈이나 경제, 사업과 성공에 관련된 책을 백 권정도 읽었고, 투자와 재테크에 관련된 강의에 쓴 돈만 해도 수백만 원이 넘었다. 유행처럼 FIRE 족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을 꿈꿨다. 일찍 달성하는 경제적, 시간적 자유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열심히 달린 종착지는 파이어 족이 아니라 번아웃이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탓일까. '빠르기 보단 꾸준히 성공하는 법'이나 '살아남기 위한 내공 키우는 법'을 알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후회스러웠다. 어쩌면 성실했지만 현명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그만 주저앉을 것인가 결정도 내 몫이었다.


답은 현실에 있었다. 아이도 계속 키워야 하고, 살아 나가야만 하는 나는 사업가 엄마였다. 아이에게 여러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실패를 겪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따라 햇살이 참 따뜻했다.


pixa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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