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즐거움
"행운을 포함하여 가치 있는 것은 모두 다 당신이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찾아오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해야 한다. 뭔가를 사거나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
by T.Harv Eker <Secrets of millionaire mind>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전화기와 텅 빈 메일함만큼이나 고요한 오전. 모두가 정신없게 바쁠 월요일이었지만 청소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식탁을 닦다가 옆 책장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분명 두세 번은 본 책이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문장에 끌리고 있었다.
‘띠링. 띠링’
때 마침 핸드폰 메시지가 경종처럼 울렸다. 관리비 출금 문자였다. 생활비 통장 잔액을 보니 정신이 더 번쩍 들었다. 무엇이든 행동할 시간이었다.
당장은 재창업을 할 준비나 여유는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취업준비생처럼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해오던 쇼핑몰 일과 최대한 비슷한 일을 찾고 싶었지만, 작은 지방 도시에 관련 일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경력을 이어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잘할 수 있는 일이나 해보고 싶었던 일을 구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니 항상 세상에 나를 맞추어 살기만 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대학도 회사도 점수 맞춰 갔고, 결혼과 출산도 남들 다 한다는 적령기에 했다. 내 손으로 시작했던 장사도 항상 결과에 따라 끌려 다녔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라고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수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힘이 빠졌다. 이제 내 뜻대로 한 번 살아 보고 싶었다. 어차피 망한 마당에 예전처럼 살 이유도 딱히 없었다. 동네에서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는 것이지만 경단녀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남편. 나는 뭘 잘하는 것 같아?” 퇴근 한 사람을 붙잡고 다짜고짜 물었다.
“말빨이 좋지. 내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잖아. 국대급이야.” 남의 편은 깐족거리며 대답했다.
“아 뭐래. 그런 거 말고 뭐 없어?”
“잘 울지. 드라마 보면서 우는 거 잘하잖아. 감정 이입이 여배우야.”
“어우 됐어. 밥이나 먹어” 역시 남의 편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말빨이랑 감정이입이라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잠시 멈춰 섰다. 황당했지만 은근히 맞는 말 같았다.
‘설명을 쉽게 한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 전화 주문이나 제품 관련 상담을 할 때 자주 듣던 칭찬이었다. 그리고 진상고객도 단골을 만드는 뛰어난 ‘공감 능력’이 CS 부문 필살기였다.
‘T 남편이 나보다 객관적이긴 하니까.’ 어쨌든 정확히 보긴 봤다.
마음속 한 편에 자꾸 ‘선생님’이란 일이 떠올랐다. 어릴 적 꿈이었다. 교대나 사범대를 가지 못해서 선생님이 될 계기나 자격이 영영 없을 거라 잊고 살았는데. 아이를 사랑하고 키워 본 경험도 있고, 설명을 잘하고 공감능력도 좋은 ‘재능’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공부를 봐주는 동네 학원에 이력서를 넣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 몇몇 학원에 학부모인척 입학 상담 전화를 걸었다. 서류 통과나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처지였지만 ‘고용주’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장사 짬밥 6년, 게다가 아줌마는 ‘촉’이라는 직감이 있기에 대화를 해보면 대충 느낌이 왔다. 그중 몇 군데만 ‘선택’해서 지원했다.
기쁘게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10년 만에 보는 면접이었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찬찬히 빈 교실을 둘러보았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큰 통창으로 햇살이 밝게 들어왔다. 마음에 든다. 내 아이를 맡겨도 괜찮을 것 같은 쾌적한 공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면서 학원을 운영하는 여성 사업가인 원장님과 나는 대화가 잘 통했다. 교육철학이나 소신도 있었고 무엇보다 배울 것이 있는 분이었다. 일터에서 배울 점이나 얻을 것이 있는지는 페이만큼이나 중요했다.
“처음 통화에 목소리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같이 오래 일했으면 좋겠네요. 다음 주부터 바로 나오세요”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전해졌는지 결과는 합격이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쁨인가 아니면 선택하는 즐거움이 이런 건가. 이토록 통쾌한 기분이 드는 구직 활동은 처음이었다.
“아빠. 나 다음 주부터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애들 가르치는 일 하기로 했어요.”
“애는 누가 보고? 낳으라는 둘째는 안 낳고 니 나이에 무슨 아르바이트고” 예상은 했지만 친정아버지의 팩폭 2 연타에 정신이 아찔했다.
“종일반이랑 돌봄 보내면 돼. 젊을 때 일 해야죠.”
“월급은 얼마나 주노?” 소소한 금액을 듣곤 더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와서 애 봐주실 거 아니면 응원이나 해주세요. 걱정은 용돈으로 해주면 더 좋고.” 평생 말 잘 듣던 착한 딸로서는 처음 해보는 당돌하면서 뻔뻔한 대답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 착한 딸 역할도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도, 내 뜻대로 살기에도 딱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