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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Jul 09. 2024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피구왕 통키가 떠오르는 함민복 시인의 시 열쇠왕

열쇠왕



                             함민복


머리에 종이 금관

금관에 열쇠왕이라는 글자

주먹코 안경

열쇠 자물쇠 주렁주렁 달린 조끼 벗고

겨울바람 피해 농협 현금자동지급기에서

콜라에 빵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

온수리 장날은 헐겁고

할아버지는 수많은 열쇠를 깎아 무엇을 열었을까

현금지급기 거울 속을 들여보다

압축된 내 삶 같은 직불카드를 들이밀면

내 몸뚱이는 무슨 열쇠일까

무엇을 열겠다고 세상을 떠돌아왔는가

하 많은 자물쇠를 만났는가

혼자여서 쩔렁거리지도 못하는

내 몸은 무슨 열쇠인가

꿈에서 가끔 무엇을 열어보았는가

탈칵 열리던 게 뭐 있었건가

열리지 않음만 실컷 열다가

상처로 깎은 열쇠가 되어

결국

이 악물고 호흡 끊으며

죽음만 비틀어 열고 말 존재인가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려고 돈을 찾고 있는

잔금에 신경 쓰는

나는

아직 내 몸이 무거운, 열쇠가 되지 못한

철편 하나




<출처_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함민복, 2013 창비>



최근 고른 시는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을 골랐다. 왜냐하면 대학생 때 이 시집의 제목과 함민복 시인의 성함이 익숙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익숙한 대상에게 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눈물을 자르는 것이 눈꺼풀이라는 표현은 너무 멋졌다. 그래서 펼친 시집은 뭔가 1962년 생 시인임을 느껴지게 표현이 어렵거나 이미지 위주가 아닌 어떤 서사 중심의 구조를 띈 시가 더 많았다. 이것저것 읽어보다가 고른 시의 제목은 열쇠왕이었다. 맨 끝에 왕이 들어가는 단어로는 리어왕, 유희왕, 통키왕 등을 떠올렸다. 왕이라는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이고 어떤 자리에서 최고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킨다. 나는 열쇠왕이라는 단어가 뭔가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머리에 종이 금관

금관에 열쇠왕이라는 글자

주먹코 안경


시인 앞에 지금 한 사람이 있나 보다. 그는 머리에 종이 금관을 썼고, 금관에는 열쇠왕이란 글자가 쓰여있고, 주먹코에 안경을 썼다. 사실 종이와 금관이라는 단어가 벌써 언발란스함을 느껴주게 한다. 보통 종이 금관은 아이들 학예회에나 등장하는데 주먹코에 안경을 쓴 어떤 성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썼다니.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궁금해지는 대목 같다.


열쇠 자물쇠 주렁주렁 달린 조끼 벗고

겨울바람 피해 농협 현금자동지급기에서

콜라에 빵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


계속 시인은 한 인물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시인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열쇠 자물쇠 주렁주렁 달린 조끼를 벗고서 겨울바람 피해 농협 현금자동지급기에서 콜라와 빵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나는 처음 콜라와 빵이라는 대목에서 단것 더하기 단것이라니 그 부분에서 놀랐다. 물론 빵이 목이 메어 물 종류인 콜라를 먹을 수도 있다. 콜라는 달고 탄산도 있고 소화제의 개념도 같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보통 빵과 우유를 먹는 것을 떠올려 조금 색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겨울바람을 피해 아주 구체적인 장소인 농협 현금자동지급기에서 끼니를 빵과 콜라로 때우는 모습은 매우 슬프고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모습이다.


온수리 장날은 헐겁고

할아버지는 수많은 열쇠를 깎아 무엇을 열었을까


온수리 장날이 뭔가 했는데 온수리라는 지명의 장날이 열린 것이었다. 장날이라고 하면 사람도 북적대고 상인도 많이 나와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 속에서 열쇠왕 할아버지의 모습은 헐겁다고 하였다. 헐겁다는 낄 물건보다 낄 자리가 꼭 맞지 아니하고 크다는 뜻으로 할아버지의 왜소한 모습과 장날의 흥겹고 풍성한 모습을 보고 시인은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생각을 확장해서 할아버지는 수많은 열쇠를 깎아 무엇을 열었을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할아버지 모습 이면에 숨겨진 그의 인생이 시인은 문득 궁금해졌던 것이다. 엉뚱하게 방문을 잠근 어느 여자의 방문도 열어주고, 열쇠를 잃어버린 어느 집의 대문도 따주고, 가로막힌 문 앞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왕이고 훌륭한 구원자였을 것이다.


현금지급기 거울 속을 들여보다

압축된 내 삶 같은 직불카드를 들이밀면

내 몸뚱이는 무슨 열쇠일까


장면은 이제 열쇠왕 할아버지에서 시인 자신으로 옮겨갔다. 시인도 현금지급기에 돈을 뽑으러 온 듯하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을 보면서 직불카드를 현금지급기에 넣으면서 그 안에 압축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직불카드에는 입출금 내역을 통해 한 사람의 행동반경이라던가 아니면 그 사람이 자주 가던 장소에 대해 알 수 있다. 먹고, 사고, 행했던 모든 것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열쇠로 문을 따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은 어떤 것을 여는 열쇠일까 하고 시인은 의식을 확장시킨다.


무엇을 열겠다고 세상을 떠돌아왔는가

하 많은 자물쇠를 만났는가

혼자여서 쩔렁거리지도 못하는

내 몸은 무슨 열쇠인가


무엇을 열겠다고 세상을 떠돌아왔는가, 하는 구절에서는 시인이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헛헛해하는 심정이 잘 느껴진다. 나도 생각해 보면 뭘 이루자고 여기까지 노력해서 왔나 싶을 때가 있다. 하, 많은 자물쇠를 만났는가. 우리는 살면서 자물쇠 같은 열지 못해 낑낑대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을 열쇠로 사물화 시키면서 혼자여서 쩔렁거리지도 못하는 내 몸은 무슨 열쇠냐고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열쇠라고 하면 어떤 하나의 문을 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할만 제대로 수행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을 열쇠라 칭하고 열쇠왕의 열쇠들처럼 쩔렁거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무래도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열쇠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쩔렁거리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시인의 안에 내재된 욕망이 아닐까 싶다.


사실 열쇠가 아니라 인간으로 친다면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 아무리 편할지라도 결국에는 심심하고 외로워지고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생긴다. 타인을 만나서 짤랑거려 보기도 해야 평소 갖지 못한 에너지를 얻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을 열쇠로 표현했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의미는 사람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시인은 인간으로 태어나 근본적으로 느끼고 있는 외로움과 감정에 대해서 열쇠에 빗대어 토로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꿈에서 가끔 무엇을 열어보았는가

탈칵 열리던 게 뭐 있었건가

열리지 않음만 실컷 열다가

상처로 깎은 열쇠가 되어

결국

이 악물고 호흡 끊으며

죽음만 비틀어 열고 말 존재인가


그리고 우리는 흔히 꿈을 꾼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시인은 꿈에서 가끔 무엇을 열어보았는가 하고 참신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꿈이라는 게 크리스마스에 받은 어떤 선물상자라도 되는 마냥 열어보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탈칵 열리던 게 뭐 있었건가, 여기도 자조가 보인다. 인생을 살면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이 어디 쉽게 탈칵하고 해결되었던가. 그렇지 않았다. 열리지 않음만 실컷 열다가,라는 표현은 아주 멋지다. 나도 풀리지 않는 숙제만 잔뜩 풀었고 지금도 푸는 중이다. 그러다가 상처로 깎은 열쇠가 되어, 결국, 이 악무록 호흡 끊으며, 죽음만 비틀어 열고 말 존재인가,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은 처음부터 자신이 열쇠였지만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상처로 깎은 열쇠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이 조금 마음도 아프고 슬프게 느껴진다. 그냥 열쇠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다가 이 악물고 버티다가 호흡 끊긴 죽음만 비틀어 생각하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인가. 한없이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얻게 되는 게 고통뿐인 것인가. 자우림 노래 중에 샤이닝이란 노래가 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 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말처럼 이렇게 상처 투성이가 된 열쇠를 받아줄 누군가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려고 돈을 찾고 있는

잔금에 신경 쓰는

나는

아직 내 몸이 무거운, 열쇠가 되지 못한

철편 하나


나는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되게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표현에서 오는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도 '찌개용 돼지고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찾고 있는 그리고 잔금에 신경 쓰는 아주 흔하고 보편적인 소시민인 나를 시인은 화자로 내세웠다. 물론 나도 시와 시인이 별개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 화자는 시인의 어느 한 부분을 닮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아직 내 몸의 무거운, 열쇠가 되지 못한 철편 하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철편 하나'라는 표현에 나는 무척 공감이 갔다. 왜냐하면 나도 내가 그린 그림들을 '낙서 하나'라고 쉽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도 열쇠가 되어 어떠한 기능을 다 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열쇠가 되고 싶은 철편 하나'에 그쳐있음을 말하고 있다. 나는 화자의 절망과 무기력한 감정에 공감이 갔다. 내가 함민복의 시를 주르륵 보았을 때 이 시의 표현이 가장 눈에 잘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잘 읽혔다. 나는 너무 짧고 함축적인 시보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서사가 담겨 있어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은 시가 좋더라.


그리고 문득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쇠왕 말고 낙서왕이 되어보겠다고. 그리고 그는 '철편 하나'가 아니라 '철편왕'이 되었다고 그리 생각하고 싶다. 바라던 것을 되지 못했다고 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가 살아온 발자취가 있을 것이고 그가 인내해 온 세월들이 버젓이 그의 안에 살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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