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Oct 20. 2023

중고 백수, 첫 직장의 가로수 길을 거닐다. -하-

두 번째 나무: 어느새 경력직 간호사.

나는 연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2018년 5년 차 간호사가 되었다. 응급실은 연중무휴 돌아가고,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폭탄이 떨어진 전쟁터가 되곤 했다. 기계처럼 환자의 히스토리와 주증상을 확인해서 기록을 남긴다. 내 기록이 치료의 방향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항상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감정은 배제되고, 쇠보다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갔다.


 이제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아픈 어린아이를 봐도, 중상을 입은 가장을 봐도,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잃은 이가 내 앞에서 울고 있어도 슬프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에 대한 결과가 참담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원래 그런 곳이니까. 간호사는 슬퍼도 슬퍼하면 안 되고, 아파도 아파해서는 안 되는 그런 사람이니까.


 감정을 배제하자 오히려 편해졌다.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자, 내가 괴물로 변해가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들 때는 피곤에 절은 응급실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그때부터 편한 길을 택했다.


 환자나 보호자에게만 감정 없이 대하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든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게 내가 덜 힘든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은 잘 들어주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의만 챙기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 후배 간호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 같았던 그 친구도 항상 사람 때문에, 감정 때문에 힘들어 보였다. -실제론 나와 다른 이유로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마는.- 만약 내가 지나온 길을 걷고 있다면, 그 친구는 나만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와주고 싶었다.


 그 친구가 가진 아픔을 정확히 모르는 통에 특별한 도움을 줄순 없었지만 무던히 함께 해주는 쪽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선배 간호사가 나에게 해주셨듯 응원했다. 그리고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사실 그 당시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던 건지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하하하.- 반대로 그 친구도 그 친구만의 방식으로 나의 쇠 같이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고, 열이 가해진 쇠는 이전보다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한 고비를 넘겼다.


 3교대 간호사라는 업무 특성상 수년을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 후배 간호사 친구도 1년을 못 채우고 병원을 그만뒀다. 더 큰 꿈을 이루길 바라며 배웅해 주는 길에 편지 한 장을 건네받았다.


선생님 덕분에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나에 대한 존경을 담은 편지 내용도 정말 고마웠지만, 말미에 적힌 문구를 보고 깨달았다. 나는 그저 누구라도 상처에 가볍게 바를 수 있는 연고 같은 사람을 꿈꿨는데, 지금의 나는 어떤 간호사가 된 걸까?


 고민이 몇 개월간 이어지던 어느 겨울날, 나는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사직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지만.-


 나는 처음으로 “중고 백수”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중고 백수, 첫 직장의 가로수 길을 거닐다. -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