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폐쇄 병동 입원기 - 2
23.10.7
어제 일찍 잘 거란 다짐이 무색하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용 휴게실에서 거닐다 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 조증 룸메이트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던 할머니었다.
룸메이트와 이야기 중 지나가던 나를 향해 손을 까닥이셨고, 룸메이트는 나랑 같은 방 쓰는 언니야. 소개할 여력이 없던 나 대신 내 소개를 건넸다.
- 왜 여기 들어왔어요? 아가씨가.. 좀 우울한가?
할머니는 왜 내가 폐쇄병동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신 것 같았다. 나도 이 할머니는 왜 이곳에 들어왔을까 궁금해지던 찰나였으나, 곱상하고 귀부인 같은 얼굴과 이어진 목덜미에는 삶의 가시덤불이 둘러져 있었으므로 금방 할머니의 입원 사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렇지만 나에게선 그러한 처절한 삶의 흔적도 눈에 보이지 않았고, 룸메이트처럼 격양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무기력하게 잠만 자지도 않았고, 간호사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지도 않았기에 쉽사리 입원 사유를 유추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딱히 내 입원 스토리와 병명을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므로(다들 뭐 비슷하게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다시 내 타의 같은 자의 입원 이야기를 했고 내 조울의 서사에 대해서도 간략히 말했다. 말했다기 보단 거의 읊었다란 말이 맞겠다. 요 며칠새 입원수속부터 면담까지 너무 많이 반복해 말했기 때문에 더 이상 감정 없이 내뱉는 앵무새가 된 기분이었다.
피곤해서 얼른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고 들어가 쉬려고 하던 때에, 의외의 순간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깐 할머니가 큰딸의 전화를 받느라 이야기가 중단되었는데(할머니는 오랜 폐쇄병동 생활로 핸드폰 사용이 가능했다), 큰딸과의 대화에서, '얘. 오늘도 내가 살고 싶은지 묻더라. 그래서 살고 싶다고 했어. 살기는 개뿔, 아직도 죽고 싶어 죽겠어.' 하며 토로하는 할머니가 너무 솔직해서 그만 모두 웃음이 터졌다. 나도, 내 룸메이트도, 옆에 있던 간호사와 실습 대학생들도. 여기서만 허락되는 블랙 코미디었다.
눈썹은 그린 거야? 코 수술은 한거구? 예쁘게 생겼네. 원래 고향은 어디야?
빵 터진 것도 잠시, 전화 이후 내게 쏟아지는 질문에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이내 할머니는 머뭇거리며, 마스크를 껴서 더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갈 말하려 했다.
- 나.. 칠십이 넘어 정말 챙피한 죽을죄를 지고 왔어.
할머니는 그 죄에 대해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3-4년 전에 저지른, 영영 심해 속으로 묻힐 것 같던 죄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할머니는 오로지 죽을 생각뿐이었다고. 안 해본 자살 기도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입원한 가장 큰 이유인, 습관적 자살에 대한 생각과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큰 동질감이 드셨는지 내가 세운 실행 방식과 실패 사례에 대해 물어오셨다.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죽음, 그러니까 철학적인 것들이 아닌 오로지 결과가 무(無)로 끝나는 것을 논하고 있다니. (*이때의 나는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자살에 대한 충동이 커진 상태였다.) 불쾌감이 올라오려던 때에 할머니는 운명이 정해져 있음을 아느냐고 물어왔다.
- 내가 목을 매고 11시간 만에 발견되어서 살았어. 그때 모습이 어땠는지 알아? 지혈도 안되고, 그냥 몸에 있는 모든 걸 토해내고 쏟아냈지. 근데 나는 그렇게 죽고싶구.. 지금도 그런데.. 살 사람들은 살더라. 참 이상하기도 해. 난 이렇게 죽고 싶은데 요새 이상한 묻지마 살인범들은 희망찬 청년들을 데려가더라. 에구 참, 나를 데려가주지.
-....
-어쨌든 아가씨, 살 사람은 산다는 거야.
-....
-아가씨도 그리도 힘든데 결국은 살아있잖아. 그러니 힘들어도 살아갈 운명 아니겠어?
순간 내가 행했던 인생의 총 5번의 자살시도, 그리고 습관적으로 검색해 보던 자살과 관련된 기사와 사망사건 판례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나 자신.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할머니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어제 담당의 선생님이 권했던 취침약이 정말 잘 맞았는지 사흘 만에 꿈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심지어 간호사분이 깨우기 전까지는 계속 잠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약을 먹기 위해 물을 뜨러 갔다가 뜻밖의 희소식도 들었다. 어제 혹시나 면회시간이 30분 밖에 되진 않지만 엄마가 면회 관련 연락처를 궁금해할까 알려주었더니 면회 신청을 하셨단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본가에서 서울까지는 편도로만 4시간 30분이 걸렸고, 그탓에 엄마와 아빠는 서울-수도권에서 생활하는 나와 오빠에게 딱 한 번씩만 방문했었고, 심지어 오빠가 인천에서 군복무를 했을 때에는 단 한번 면회를 오신 적이 없다. 그런데 단 30분 보자고 먼 길 면회를 온다니.
아침밥을 먹고 샤워를 재빨리 해야겠단 생각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의 바디로션을 바를 생각에 잠시나마 행복해졌다. 엄마와 아빠가 온다 하니 오전은 글을 쓰지도 않고 잠만 잤고, 점심밥도 거의 먹지 않고 오로지 면회 시간인 2시만 기다렸다.
2시가 되니 간호사분이 면담실에서 엄마와 아빠를 먼저 기다리라 했고, 2시 5분. 마트를 거의 쓸어온 엄마 아빠가 폐쇄병동 입구 수색을 마치고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잘 지냈어?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먼저 말을 건네자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응 우리야 그랬지… 하고 울먹이셨다. 놀라셨겠지. 연휴였던 10월 2일만 해도 멀쩡히 오랜만에 차려입고 연휴 간 휴식을 목적으로 대구 할머니댁을 찾았으니까. 나는 따라 울기 싫어서 내가 전화로 먹고 싶다 한 말차프라푸치노도 잊지 않았냐고 하니 엄마가 '휘핑크림 가득 올려서 가져왔는데 녹으면 맛이 없는데..'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25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알았다.
엄마와 아빠에겐 내 입원 소동이 내가 투병 중임을, 드디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계기라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실망한 부분도 있었다. 나는 내 병을 알리기 위해 엄마에게 읽기 쉬운 책들도 선물했는데 엄마는 보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본 척을 했던 것이다. 엄마는 이제야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며, 여러 단약 사례와 성공적인 완치 사례를 남긴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아빠의 사과. 내 기분은 딱히 우울하진 않았는데, 여러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밀려왔다. 내 병에 대해 직면하고 받아들였다면서 여전히 성공사례만 말하는 엄마. 그리고 가정환경이 내가 앓고 쌓아온 트라우마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저 이겨내길 바라는 엄마 아빠. 고등학교 시절 처음 공황 발작이 왔을 때도 전학이나 자퇴는 뜯어말렸고 정신과 약도 먹지 말라했다. 그렇게 내가 결국 아파 병가휴직을 내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 다니는 대기업만은 그만두지 말라는 부모님.
그럴 때면 늘 '네 마음이 너무 여려서야. 마음을 편히 먹어.' 그 두 마디로 나를 위로하셨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위로가 아니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앓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거다.
사랑하는데 모순 덩어리인 거 알아?
속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삼키느라 가슴이 답답했지만 엄마와 아빠가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함을 알기에 그냥 조금 울고 면회를 마무리했다. 가기 전에 한번 따뜻한 포옹을 하면 좋았을텐데. 면회 종료라고 재촉하는 간호사와 녹아가고 있는 프라푸치노에 정신이 팔려 그러지 못해 아쉽다.
엄마와 아빠는 말 그대로 마트를 쓸고 오신 듯했다. 두 박스를 가득 메꾼 반찬, 간식, 생활용품... 보안요원, 간호사분들도 놀랄 스케일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들여올 수는 없다고 해서 엄마아빠가 돌아가신 뒤, 나와 간호사분은 2인 1조가 되어 열심히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식사로는 초밥과 치킨. 그리고 병원 밥이 맛이 없을 거라 생각해 챙긴 듯한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 사과, 레토르트 식품, 과자들. 그리고 내가 스타벅스 텀블러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 엄마가 사 온 듯한 스타벅스 텀블러.
그중 내가 잘 먹지 않는 과자들과 싫어하는 스팸 레토르트 식품을 빼냈다. 스팸은 아마 아빠 취향이었을 거다. 나는 스팸만큼은 있어도 먹지 않는데 아빠는 그 사실을 종종 까먹곤 했으니까.
무려 15분이 걸려 선별 작업을 끝내고 드디어 잠시나마 자유의 상징이요, 자본주의의 상징이요, 어쩌고 무튼 '사회의 음식'이라 불리는 초밥, 치킨, 프라푸치노를 병상 탁상에 가득 채우니 마음의 풍요도 잠시, 미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왜냐하면 폐쇄병동 특성상 누군가와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내 룸메이트가 와, 언니- 맛있겠다! 맛있게 먹어요! 천진난만하게 참기 힘들어 잠시 나가있겠다고 말했지만(폐쇄병동에서는 음식은 꼭 본인 자리에서 취식해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입원 둘째 날, 몰래 자신의 약과와 견과류를 나누어주던 룸메이트가 떠올라 나도 꾀를 조금 부려 가지고 있는 스타벅스 마카롱을 우리 방 분리수거 통 위에 올려다 두었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초밥은 입에 살살 녹았고 치킨 역시 끝내주게 맛있었다. 말차프라푸치노는 어떻게 병원 밖에선 다이어트한답시고 절대 먹지 않았을까. 조울증약은 흔히 물만 먹어도 살찐다라는 말이 진실로 신경생리를 늦춰 적게 먹고 운동해도 살이 찌기 때문에 특히나 신경을 썼었다. 그럼에도 살이 쪄버린 것은 눈물이 나지만 이건 미친 하늘을 둥둥 뛰노는 맛이었다. 물론 양이 많아 바깥음식정식을 다 먹지는 못했지만 깨달은 게 있었다.
첫째는 치킨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울었는데, 난 왜 이런 소확행에 대해 바깥세상에선 소중히 여기지 못했는지, 심지어 살이 찔까 혐오까지 했는지. 둘째는 그냥 왜, 나는 지금처럼 행복할 수 없었는지. 내가 욕심이 많았던 탓일까? 이상하게 폐쇄 병동에 들어와서 계속 눈물이 났다.
- 봄씨는 조울증인데, 변화되는 마음을 확 끌어내리는 강한 항우울제가 있어서 아마 역효과가 왔을 거예요.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많이 불안하셨을 거고, 자살에 대한 생각도 강해졌을 거예요.
눈물을 흘리면 졸리는 법, 꾸벅 졸고 있다가 담당의 선생님이 피검사 소견이 나왔다고 내 방을 찾아왔다. △라는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느냐 물으셨다. 순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날 이리도 불안에 떨게 만든 놈이 그놈이라니.
나는 내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신과 진료를 봤다. 명의에 꼽히는 분이시기도 했고, 개인 번호를 알려주시면서 언제나 궁금하거나 힘들 때 연락하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좋았다. 대학병원과 다른 면모가 좋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밖에 갈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없음에도 그 병원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칠푼이 같은 성격이었다. 나는 종종 약봉지 몇 개를 잃어버리곤 했는데, 금단 현상이 너무 심해 하루라도 약을 먹지 못하면 일상생활이 힘들어(** 브레인 잽스가 말도 안 되게 심했다.) 공휴일에 잃어버린 경우에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응급실에서 약을 타곤 했다. 그때 받은 약이 △였다. 그리고 타놓고 종종 급할 때 먹곤 했다.
여기서 나는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몇 십 번이고 알았지만, 실제 체감하지 못했던 '한 병원의 약만 꾸준히 먹는다'라는 조울증 치료의 기본 철칙을 깨달았다.
조울증 치료의 몇 가지 철칙이 있다면 아래와 같다.
1. 주치의가 처방해 준 약 잘 먹기 (약물 오남용 금지)
2. 되도록 병원에 가는 텀은 1-2주로 너무 길지 않게 하기
(첫 진료나 병원과 약물을 바꾸었을 때에는 더 자주 주치의와 만날 것)
3. 규칙적인 생활하기
4. 가족에게 알리기
5. 큰 결정이나 소비에 대해서는 가족과 함께 결정하기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1,2,5번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약을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규칙적인 생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1번이 쓰러지면 남은 4가지 항목도 도미노처럼 쓰러질 가능성이 높다.
무튼 담당의 선생님이 이제 새로 약을 쓰기에 괜찮아질 것이라며, 혈중 농도는 퇴원할 즈음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퇴원? 보통 2주는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벌써 퇴원이야기라니.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물었다. 퇴원이 언제인데요?
- 10월 9일 한글날 지나시고 원하실 때 퇴원하시면 되세요.
- 우와.
- 제가 봐도 그렇게 심각하시진 않으신 거 같아서요.
그렇담 이틀만 더 참으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더 쉬고 싶으면 더 쉬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차라리 밖에 나가서 하고 싶은 것들과 운동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먹는 수면약 중 '조스정'이라는 아이가 오늘 밤 나를 얼마나 괴롭힐지.
**브레인잽스 : 항우울제 중단 증후군 영어로 '브레인 잽', '브레인 잽스(Brain zaps)' 또는 '전기 충격 감각(electrical shock sensation)'등으로 불리는 증상으로, 안구나 고개를 빠르게 움직이거나 자세를 급하게 바꿀 때 머릿속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찌릿한 느낌, 하얀 섬광 등을 느끼거나 이명을 듣는다. 가장 빈번하게 보고되는 증상 가운데 하나이며, 단약 후 짧게는 수 주, 길게는 수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다. 또 민감한 사람에게는 가벼운 복용량 또는 일시적 단약으로도 쉽게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