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확진받은 언니를 위하여!
솔직히 말해서 언니랑의 어린 시절 추억은 거의 없다고 기억된다.
최근 들어 언니랑 이야길 하다 보니
알코올 중독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삶이 곤고했고 구타를 피해 참 많이도 도망 다니고 피해 다녔단다.
결혼도 집에서 탈출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 형부를 사랑해서는 아니었다니 그 삶이 또한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언니가 거의 가장 역할을 했었다. 도움을 수없이 많이 받았다. 그래도 정이 들지 않았다.
그랬던 제일 큰 이유는 나의 국민학교 시절 노동의 강도는 뭇 어른들보다 세면 세었지 약하진 않았다. 장사하시던 엄마를 아버지 대신 도와 야채 다듬고 파는 일, 배달하는 일까지 도맡아 했던 터라,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었다. 자전거 배워서 같이 배달하자고...
"너 힘든 거 뻔히 보는데, 내가 왜 힘들게 자전거 배워? 난 나중에 자가용이나 타고 다니련다"
돌아온 이 대답이 어린 나이의 나에게 충격이었다. 쇠철문 닫아걸듯 철커덩! 언니를 향한 마음 문을 완전히 닫아걸어 버렸다. 그 후로는 언니의 존재를 싹-지웠었나 보다.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난다.
5년 전 언니가 사는 안산으로 이사를 했다. 지방으로 일주일에 4-5일은 컨설팅을 다니던 터라 초기치매 증상이 있으신 엄마를 집에 혼자 두기 불안해서 언니와 함께 엄마를 케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이야기하는 시간이 생겼고, 언니의 어린 시절도 만만찮게 힘들었구나 싶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중인데, 건강에 이상 신호를 느끼고 정밀 종합 검사를 해보니 파킨슨병 중기 란다. 눈에 보이는 신체적 상태는 다행인지 아직 초기로 보이지만...
카톡으로 소식을 듣는데,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 제 안에서 단 하나의 질문이 계속 울려 퍼졌다.
“내가 언니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파킨슨병은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병이라고 했다. 약으로 증상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에 더 막막해졌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족으로서, 동생으로서,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어르신들을 돌봐온 사람으로서 저는 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때 제 마음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식생활을 개선 시킬 ‘음식’이었다.
02편에서는 고민하고 만든 첫 번째 소스 레시피와 언니의 반응을 기록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