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츠윌리엄 다아시 Jul 23. 2024

코토르

몬테네그로

Kotor Beach - Kampana Tower - 코토르 요새 - Gurdic Bastion

 두브로브니크에서 코토르까지는 편도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몬테네그로는 쉥겐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유럽연합 소속 또한 아니다—, 국경을 지나갈 때 출입국 심사를 해야 한다. 여태 공항에서만 해보았던 출입국 심사를 차 안에서 한다니 처음에는 상상이 잘 안 갔다. 하지만 막상 별 거 없었다. 여권과 렌터카의 그린카드를 건네주니 언제 돌아올 거냐고만 묻고는 도장을 찍고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우리나라 여권 파워 덕분인가.

 몬테네그로에 들어와 코토르 만을 따라 도는데, 전날의 피로가 몰려와 잠이 막 쏟아졌다. 코토르까지 1시간도 남지 않았지만, 몰려로는 졸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잠시 길가에 차를 대고 잠깐 눈을 붙이려고 했다. 길가로 나와 돌담 앞에 차를 대는데,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오르막길이라 악셀을 살짝 밟고 바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어디에 혼이 팔린 듯 악셀을 꾹 밟아버렸다. 돌담에 차를 박고 서야 아차 싶었다. 순간 가슴에 철렁했다. 일단 이 차가 입은 손상이 어느 정도인가. 렌터카 회사에 연락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돌담은 멀쩡한가.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었다. 오른쪽 전면 라이트가 깨지긴 했지만 불은 여전히 잘 들어왔고, 돌담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남은 여행 일정에 차질은 없을 것 같아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보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러기엔 사소해 보여서 직원에게 문자만 남겼다. 아무튼 이 사고 덕분에 잠은 확 깨버렸다—완전 럭키비키잖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곧바로 출발했다.

 코토르 만 내부 인공섬에 있는 암굴의 성모를 곁눈으로 힐끗 보고 지나치며 시내에 진입했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다 못 차린 걸까, 이번엔 차를 박을 뻔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구글맵만 믿고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했다. 핸들을 다시 푸는데 갑자기 앞에서 차가 나를 마주 보며 오고 있었다. 그래도 집중력은 유지하고 있었어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 부딪히지는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사실 이 도로는 일방통행이었다. 즉 내가 역주행을 한 것이었다. 구글맵을 다시 봐도 일방통행이라는 말도 없고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라고 분명히 안내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만 보지 않고 주위 표지판도 항상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시부렁시부렁 대는 상대편 운전자에게 미안하다고 한 뒤, 차를 천천히 빼고 한참을 돌아 무사히 주차장에 들어갔다.

화려하게 금이 간 라이트 |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암굴의 성모 | 들어가기 어려운 만큼 주차장의 뒤편 경치는 아름다웠다

 어찌하였든, 우여곡절 끝에 코토르에 무사히 도착했다. 마치 날도 매우 맑아서 Kotor Beach를 거닐었다. 바다와는 거리가 있는 만이라 그런지 물이 정말로 깨끗했다. 바닷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람도 하나 없어 하늘과 산, 물과 모래의 색 대비가 선명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서 코토르 성벽으로 갔다. 크로아티아의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회색 벽돌로 성벽을 쌓아 올린 것은 똑같았지만, 색채는 더 어두웠다. 그리고 더 울퉁불퉁하고 덜 정돈된 느낌도 들었다.

이때까진 비가 올 줄 상상도 못했다 | Kampana Tower | 코토르 구시가지에서는 심심찮게 귀여운 네로들을 볼 수 있다

 성벽 내부 마을을 쓱 둘러보고 코토르 요새로 올라갔다. 15유로의 거금을 내고 등산로로 입장했다—중량 조끼를 입고 뛰면서 올라가는 아저씨는 현지인이라 무료로 들어갔다. 이곳도 스르지산처럼 1시간 가까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았지만, 이 정도는 내게 가뿐하다고 생각되어 호기롭게 올라갔다. 하지만 돌계단 하나하나 디딜 때마다 체력이 급격하게 떨여졌다. 그동안 쌓인 여독 때문도 있지만, 날씨가 정말로 괴랄했다. 전날 날씨는 양반이었다. 분명 정오까지 쨍쨍하던 해를, 북쪽 한 켠에 몰려있던 먹구름이 뒤덮으며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땀이 너무 나 내복처럼 입던 흰 반팔만 입고 있었는데,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는 기괴한 패션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성모교회와 주거지 등을 지나 요새에 도착했다. 이 성벽을 직접 오르고 보니, 내가 적군이었으면 싸워볼 생각조차 안 하고 깔끔히 회군했을 것이다. 숨도 고를 겸 코토르 시내를 바라보다 비가 갠 뒤 내려왔다.

산을 타고 넘어가는 코토르 요새 | 이때부터 먹구름이 조금씩 들어섰다 | 처량히 남겨진 몬테네그로 국기
1979년 지진 때문에 많은 부분이 무너졌다고 한다 | 비가 갠 뒤 성모 교회의 모습

 다시 구시가지에 내려와서는 아직 안 가봤던 남쪽을 쓱 둘러보았다. Gurdic Bastion에는 물을 건너기 위해 놓은 나무판자나 포신을 위한 총안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착한 지 4시간도 채 안 되었지만, 더 이상 볼거리도 유별난 맛집도 없어 마트에서 빵 조가리만 하나 사 먹으며 두브로브니크로 돌아왔다. 다시 크로아티아로 넘어올 때도 역시 출입국 심사가 진행되었다. 세관 신고 절차가 추가되었다는 점이 오전과 달랐다. 몬테네그로에서 산 게 있냐고 세관원이 묻길래 빵쪼가리를 들어 보여주었더니 웃으며 그냥 보내주었다.

 렌터카 직원으로부터 하루 종일 답장이 오질 않았다. 국경을 넘을 때와—원래 국경 넘을 때 69유로를 추가로 내기로 계약했었다—돌담에 박았을 때, 총 두 차례 문자를 보냈음에도. 최고급 옵션으로—흔히 말하는 완전자차—계약해서라고 하기에는 국경 넘을 때도 조용한 것을 보고 의아했다. 뭐, 나로서는 아쉬울 게 전혀 없으니까, 독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무 연락이 안 오기를 바랐다. 아무튼 이 여행은 매우 짧았지만 사건사고들과 새로운 경험들,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히 담긴 당일치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플리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