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카라도즈 베그 모스크 - 즈린예바츠 공원 - 스타리 모스트
여태까지 크로아티아에서 주차 운이 너무 좋았다. 항상 숙소 바로 앞 도로에 주차할 자리가 있어 쉽게 댈 수가 있었다. 이번 숙소는 무료 주차 옵션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예약하여 걱정을 아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주차가 가장 어려웠다. 일단 숙소가 일방통행인 도로에 있어서 들어오는 데에 헤맸고, 숙소가 있는 골목은 차를—귀여운 르노 클리오였음에도 불구하고—한 번에 틀기 힘들 정도로 매우 좁았다. 그래도 주인아주머니가 계속 옆을 봐주어 더 이상 차를 긁는 일은 없었다.
사장님은 체크인을 진행하기 전 나를 소파에 앉히며 간단한 간식거리를 주셨다. 팥죽과 생긴 것은 매우 비슷했는데, 그와 달리 따뜻하게 먹지 않고 견과류와 베리류를 넣었다. 낯설고 밍밍했지만 배가 고파서 순식간에 해치웠다. 체크인을 한 뒤, 가장 먼저 환전하러 나섰다. 보스니아는 유로가 아닌 태환 마르크(KM)를 사용하고 카드를 받는 곳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환전이 필수다. 그래서 여러 ATM을 다니며 수수료를 확인했는데 모두 너무 높아 결국 은행에 가서 환전했다. 이 과정에서 30분이나 허비했는데, 환전에 시간을 쓰기 귀찮다면 얌전히 Bosna Bank International에 가서 하는 것을 추천한다—나는 당시 35유로를 66.45KM으로 환전했다.
드디어 이제 무언가를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숙소 사장님이 추천해 준 식당에 가서 케밥을 하나 사 먹었다. 내용물은 실한데 겨우 2.5유로(5KM)밖에 안 들었다. 기본이 7유로인 독일과 물가 차이가 확 체감되었다. 야금야금 베어 먹으며 선명한 에메랄드빛을 내는 네레트바 강을 따라 동쪽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이토록 뚜렷한 에메랄드빛의 물은 처음이었다. 만약 강물 색이 그저 평범했다면 주위 건물들이 매우 칙칙해 보였을 것이다.
주변 국가들은 겨우 국경 하나를 맞대었을 뿐인데, 건물들의 모양이 확 달라진다. 몬테네그로 코토르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여기서는 더 확 와닿았다. 이전까지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빨간 지붕 주택은 전무했고, 주택들은 대부분 어두운 회색을 띠었다. 무엇보다도, 성당과 모스크가 공존한다는 점이 가장 신기했다. 유럽의 기독교와 중동의 이슬람이 만나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Turkish라는 글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작년에 갔던 튀르키예가 종종 떠올랐다. 이스탄불과 코토르가 섞인 느낌이 들었다.
서쪽으로 넘어와 즈린예바츠 공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보였다. 좌측에는 주황색으로 매우 깔끔하게 지어진 모스타르 고등학교가 있는 한편, 우측에는 전쟁 당시 저격수들이 위치하던 아무것도 안 남은 빌딩이 있었다. 그 외에도 벽의 일부가 부서진 폐허들과 곳곳에 박힌 총알 자국들도 보였다. 이렇듯 20여 년이 지난 전쟁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도시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일부 건물에는 이 총알 자국들 위에 그려진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는 벽화들이 있었다. 내 몸이 이토록 전쟁과 가깝게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전쟁 당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하루하루가 두려웠을까. 정말 좋은 나라에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난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은 본래 평화로워야 하는 법인데, 전쟁의 잔해들을 보고 난 뒤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공원을 계속 산책하다 해가 지려고 할 즈음 다시 스타리 모스트로 돌아왔다. 모스타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사실상 그 자체인 스타리 모스트는 항상 관광객으로 가득이다. 스타리 모스트가 가장 잘 보인다는 곳에 가서 사진도 찍고 멍하니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가 다 지고 다리에 다시 가보았는데, 들개들이 제 집인 것마냥 누워있었다. 여기서 튀르키예의 분위기가 흠씬 풍겼다.
저녁을 먹으러 구글맵 평점이 괜찮으면서 현지 음식을 하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케밥체라는 전통 음식과 맥주를 주문했다. 케밥체 4.5유로에 맥주 500mL는 단 2.5유로. 저렴한 가격이 보내는 과식의 유혹을 참는 데에 애를 먹었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조금 짜고 고기 냄새가 나긴 했지만, 곁들여 나온 양파와 함께 먹으니 괜찮았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완전히 어두워진 시내를 한 번 더 돈 뒤에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일기를 쓰려고 침대에 딱 자리를 잡은 순간, 사장님이 내게 간식을 건네주셨다. 찐 감자에 사워크림(?) 소스를 얹은 음식이었다—이름을 물어봤었는데 일기장에 안 적어서 까먹었다. 감자와 신 맛 나는 소스가 어울리진 않았지만 먹을 만했다. 깨끗이 비운 접시를 돌려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 숙소에 하루 머물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모스타르에 여행을 갔다 왔던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늘 밝은 모습을 띠려 하고 실제로도 친절하다고. 솔직히 저녁때까지는 갸웃했지만, 숙소 사장님과 그녀의 가족들과 교류하며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