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벨 정원 - Cafe Konditorei Fürst - 호엔잘츠부르크 성 - Stiegl Keller - 사운드오브뮤직 파빌리온
연이은 여행들을 마치고 열흘 정도 뮌헨에 머물며 잠시 삶을 재정비했다. 백종원 선생님으로부터 요리도 많이 배우고, 같이 온 교환학생들과도 어울려 놀고, 오랜만에 테니스도 쳤다. 테니스는 주로 Thomas라는 훤칠한 독일 아재랑 쳤다. 실력도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해서 재밌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한 번 여행을 왔었다며 기억나는 말이 3가지가 있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ㅆㅂ'. 이 욕설 뒤에 자주 따라오는 'ㅅㄲ'라는 말을 까먹어 내게 묻길래, 아주 상냥하게 알려주었다.
체력도 회복했고 그사이에 뮌헨 생활도 살짝 지루해져—공부를 안 해서 그런가—모처럼 여행을 나갔다. 비자가 만료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아 독일 밖이면서 그리 멀지 않은 잘츠부르크로 결정했다. 열차를 타고 2시간도 안 되어서 도착했다. 기차에서 본 바깥 풍경은 내내 새하얗었는데, 역시나 잘츠부르크 도시도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다.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쭉 걸어 내려와 미라벨 정원부터 갔다. 나무에 잎은 하나도 없었고, 잔디와 조각상들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연못들은 얼어 있었다.
이후 자물쇠들이 걸려있는 파인골트 다리를 건너 모차르트 광장에 도착했다. 중간에 모차르트 생가도 있었지만, 돈을 내면서까지 들어가 볼 가치는 없어 보여 그냥 지나쳤다. 먼저 Fürst라는 카페에 갔다. 이곳에 오기 직전 친구에게서 모차르트 쿠겔을 추천받고 몇 개 사 먹어 보고 싶었다. 이 카페가 원조라는데, 역시나 넓지 않은 매장에 사람은 꽉 차 있었다. 겨우 세 알만 샀는데 한 알당 1.8유로, 총 5.4유로나 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올라가서 먹을 한 알과 헬부르너 공원에서 한 알을 남겨두고 딱 한 알만 먹어보았다. 아껴서 야금야금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엄청 달지 않고 중간에 견과류 크림(?)이 들어가 있어 고소했다. 10초 만에 1.8유로가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맛 감상을 헤친 것은 조금 아쉬웠다. 레지던츠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고 잘츠부르크 대성당에 들어가서 잠시 몸을 녹이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출발했다.
페가수스 분수 | 가장 오래된 모차르트 쿠겔 매장 Fürst |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바라본 호엔잘츠부르크 성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산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지 않았다. 내부는 사람이 사는 마을 같았다.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이들을 귀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마을은 온통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느 쪽 성벽에서 밖을 바라보든 다 멋있었지만, 잘츠부르크 시내가 가장 아름다웠다. 눈이 쌓인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강과 산을 가로지르는 구름이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주었다—건물들이 다 낮은 덕분이다. 귀가 시려질 때까지 도시 전경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산 중턱에는 Stiegl Keller이라는 맥주 집이 있었다. 살짝 배도 고프고 이 양조장이 나름 유명하다고 해서 들어가 보았다. 음식은 너무 비싸 라거만 한 잔 사 마셨다. 신선하고 깔끔해서 쭉 들이켰다.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잘츠부르크 대성당이 보이는 풍경만 하지는 못했다.
성벽에서 바라본 잘츠부르크 |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
시간이 많이 남아 다시 레지던츠 광장으로 갔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를 도저히 참지 못하고 굴라쉬를 하나 사 먹었다. 숟가락을 집은 손은 엄청 시린데 살짝 매콤한 스프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든든히 배를 채운 뒤, 버스를 타고 헬부른 공원으로 갔다. 먼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파빌리온으로 갔다. 공원은 전반적으로 한산했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정말 초라하게 파빌리온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지만, 그나마 사람들이 있어서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다. 공원 중앙에는 호수가 있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구름과 산, 나무가 정말 선명하게 비쳐 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파빌리온 | 웬만한 거울보다도 선명히 반사된 풍경 | 산책 중간에 나랑 눈을 마주친 순록
당시 헬부른 궁전은 공사 중이라 갈 수가 없어, 대신 남쪽에 산을 좀 올라보기로 했다. 중간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동굴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 보니 계단과 무대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Steintheater이라는 공연장이 있었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기원전 사용되었던 것 같았는데, 옆에 표지판에는 겨우 1617년에 개장되어 있다고 쓰여 있어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산을 더 올라 Watzmannblick이라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 특히 해가 질락 말락 했던 시간이라 하늘이 엄청 예뻤다.
가장 오래된 야외 음악 공연장 Steintheater Hellbrunn | Watzmannblick | 뒤에 뿌려지는 물이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시내로 돌아와서는 모차르트 초콜릿 리큐르를 마트에서 한 병 사들고 바로 뮌헨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탔다. 분명 외국에 다녀온 여행인데, 겨우 10시간 남짓 소요된 것이 너무 어색했다. 마음만 먹으면 국가와 국가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유럽이 정말 부러웠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나라도 통일이 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