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을 때우고 중앙역으로 갔다. 역에서 같이 가게 된 교환학생 친구들과 만나 같이 IC를 탔는데, 운 좋게 4인 테이블이 비어 같이 앉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본 친구들도 둘이나 있었음에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독일 남동쪽의 뮌헨에서 북서쪽의 본으로 가는 직행 열차가 없기에, 우리는 슈투트가르트를 경유해서 갔다.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동안 본에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슈투트가르트발 본행 기차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존 열차에 비해 1시간 이상 늦게 출발하는 기차를 타는 것이 최선이라 슈투트가르트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중앙역 근처에서 수제버거로 배를 채우고 다시 본행 기차에 탔다. 우리 같이 원래 타려고 했던 열차를 못 탄 사람들 때문에 이번 열차는 사람들로 꽉 찼다. 겨우겨우 각자 앉을자리를 찾아 본까지 갔다. 하필 우리가 탄 차량에 FC 샬케 04—한때는 잘했으나 지금은 몰락한 축구팀이다—의 젊은 열성팬들이 타 있었다. 이들은 맥주를 마시며 응원가를 불러대곤 했다. 한 번은 어떤 독일인 아주머니가 정숙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이 팀의 연고지인 겔젠키르헨이 본보다 더 북쪽에 있어서 도착할 때까지 응원가를 듣게 되었다.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바로 베토벤 생가로 향했다. 가는 길에 큰 아시안 마트가 있길래 약속 시간까지 남아 잠시 들렀다. 웬만한 REWE이나 Lidl 정도의 크기였다. 나름 바이에른 주의 주도인 뮌헨에도 이 정도 규모의 아시안 마트는 없었데 내심 본을 질투했다. 반가운 우리나라 음식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 사들고 가기로 하고 나와 베토벤 생가에 도착했다. 기차 예매를 못해 버스를 타고 온 나머지 한 명도 여기서 합류해, 맞은편 기념품점에 가서 표를 구매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베토벤 초상화도 있고, 그가 썼던 악보와 메모들, 그리고 음악 감상실도 있었다. 처음에는 가이드를 들었는데—심지어 한국어 가이드도 있었다—베토벤의 음악 뺨칠 정도로 졸음을 불러와 중간에 포기했다. 음악에 관심이 전혀 없는 나로서 베토벤의 일생에는 눈길도 가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대충 쓱 둘러보고 음악 감상실에 가서 차분히 음악을 듣다 나왔다.
뮌헨에 있는 그 어떠한 아시안 마트들보다도 소주 종류가 많았다 | 거대한 베토벤 | 사악한 베토벤
그다음 바로 하리보 본점에 갔다—本店인 동시에 Bonn점이다. 베토벤으로 인해 살짝 쳐진 분위기는 금세 밝아졌다. 매장 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깟 젤리가 뭐라고 두 층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메칭엔점과 뮌헨점도 결코 작지 않았는데, 그들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각자 먹고 싶은 젤리를 담을 동안, 나도 동생이 추가로 부탁했던 젤리들을 담았다. 다들 종이봉투에 젤리를 한가득 담은 뒤 산뜻한 발걸음으로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러 갔다. 바로 옆에 있는 Münsterplatz에 갔는데, 그 넓은 광장이 상점들과 사람들로 빼곡했다. 베를린에서 갔었던 Wintermarkt는 크리스마스 마켓의 예행연습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명이 훨씬 많고 밝으며, 크리스마스 피라미드 등 신기한 조형물들도 있었다. 게다가 음식을 파는 상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형과 스노볼 등 다양한 기념품들과 귀여운 방한용품들을 파는 상점들도 많았다. 아직 크리스마스는 20일 남짓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왁자지껄하다니, 이 사람들 크리스마스에 정말 진심이구나. 어쩌면 이 12월이 독일의 가장 화려한 달이 아닐까 싶었다.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먹어보고 싶어 한 음식이 몇 가지 있었다; 으깬 감자를 튀긴 Kartoffelpuffer, 우유와 달걀로 만든 따뜻한 칵테일인 Eierpunsch 등. 저녁을 이곳에서 해결할 계획이라 여유만 있었다면 이것저것 다 사 먹을 수도 있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진 못했다. 그래도 각자 Glühwein이나 Eierpunsch 한 잔씩 들고 Kartoffelpuffer와 크레페, Bratwurst를 사 왔다. 겨우 좁은 테이블을 하나 발견해 옹기종기 모여서 나눠 먹었다. 크레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빵 종류고, Bratwurst야 이미 많이 먹어봤기 때문에, Kartoffelpuffer가 참 궁금했었다. 특이하게 위에 사과소스(Apfelmus)를 뿌려져 있어 맛에 의구심이 생겼으나, 의외로 바삭한 튀김과 따뜻한 감자랑 잘 어울렸다. 감자에 카레맛이 살짝 나는 듯한 것은 좋았지만, 너무 짠 것은 조금 아쉬웠다.
크리스마스 마켓마다 꼭 하나씩 있는 크리스마스 피라미드 | 독일식 감자전인 Kartoffelpuffer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시안 마트에 다시 들렀다. 저녁을 넉넉히 먹지 못해 숙소에서 야식을 간단히 먹기로 했다. 과자에 맥주를 마실까 하다 막걸리를 발견하고는 모두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술을 좋아해도 막걸리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때는 정말 오랜만에 타지에서 마셨던 터라 정말 맛있게 마셨다—역시 한국인에게는 느끼한 Eierpunsch보다 막걸리가 맞다. 아무튼 2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부엌에서 수다를 떨던 우리 주위를 계속 서성거리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정말 1시간 넘게 부엌에서 계속 흥얼거리기도 하고 궁시렁궁시렁 혼잣말도 했다. 그가 우리 주위로 가까이 올 때마다 웃음을 참기 어려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체하며 무시하려 노력하곤 했다.
자리를 파한 후 샤워를 하고 도미토리에 들어오니, 이 할배가 내 도미토리에 들어와 있었다. 하필 그는 나와 같은 도미토리에서 묵었다. 정말 다행히도, 내 침대는 그와 거리가 꽤 있었고, 그의 옆에는 어떤 청년이 있었다. 이 둘은 내내 수다를 떨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와 공산주의 이야기—comminist라는 단어를 명확히 들었다—등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청년이었다면 대충 듣다 졸린 척 잠에 들었을 텐데, 그는 대화에 진심인 듯 아닌 듯 애매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자기 위해 불을 꺼도 되냐는 허락을 받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대화가 끝났다. 무난히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대화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할배는 코를 골기 시작해했다. 군대 선임의 코골이에 버금갔다—독일산 탱크 참 쉽지 않았다.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다음날을 맞이했다.
둘째 날
쾰른 대성당 - 루드비히 박물관 - Kolumba - Alter Markt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짐을 챙겨 중앙역으로 가 곧바로 쾰른으로 갔다. 1시간도 안 되어 쾰른 중앙역에 도착해서 라커에 짐을 맡기고 나왔다. 역 정문 바로 앞에 거대한 쾰른 대성당이 떡하니 서있었다. 크기도 큰데 외벽도 거뭇거뭇하니 더욱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모두 감탄을 자아내며 가까이 가보았다.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쳐들어야 할 정도로 높았고, 옆으로도 매우 길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칙칙하게만 보였지만, 가까이 가니 섬세한 조각을 볼 수 있었다. 내부도 밖에서 본 것만큼 웅장했다. 크고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들과 금으로 된 동방 박사 유물함을 실컷 구경했다.
오랜만에 본 생생한 스테인드 글라스 |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쾰른 대성당
그다음 바로 옆에 있는 루드비히 박물관으로 갔다. 사실 나에게는 처음 들어본 박물관이었고 미술에 관심이 없어서—특히 현대미술은 질색이다—슬쩍 둘러보기만 할 계획이었지만, 피카소의 작품을 세 번째로 많이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흥미가 생겨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피카소 그만의 그 익숙한 그림체의 작품들과 조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관람실에는 앉아 있는 사람을 옛날 카메라를 통해 보고 그 화면 위에다 기름종이를 올려놓고 그리는 방도 있어서 서로 그려주기도 했다. 그림을 보기만 한 것은 사진을 다시 봐야 겨우 기억을 떠 올릴 수 있었지만, 서로 직접 그려준 것은 루드비히 박물관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되었다.
친구가 나를 열심히 그려줬지만... 잘생긴 실물은 온전히 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 뒤샹의 '자전거 바퀴' 복제품 | 아따맘마
점심은 Früh 양조장에 가서 먹었다. 익숙하고 평범한 독일식 독일 음식들과 함께 쾰른의 유명한 Kölsch를 마셨다. 사실 밍밍한 라거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내가 맥주를 좋아함에도 Kölsch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의외로 첫 모금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맛이 강하지 않고 깔끔하며 탄산감은 적었다. 정말 물처럼 마실 수 있는 맥주였다. 가벼운 데에다가 독일 음식들의 느끼함을 덜어주니, 낮에 마시기에 최적의 맥주였다. Kölsch는 보통 200mL짜리 잔에다 마신다. 한 잔을 금방 들이켜고 한 잔을 더 마시기로 마음을 먹은 찰나, 종업원이 갑자기 와서 아무 말 없이 한 잔을 더 가져다주었다. 원래 이곳에서는 빈 Kölsch 잔을 보면 끊기지 않게끔 새 잔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저녁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또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 잔만 더 마시고 잔 위에 코스터를 올려둠으로써 그만 마시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이후 잠시 카페에 가서 몸을 녹이다 Kolumba라는 미술관에 갔다. 이곳도 역시 처음 들어본 곳이지만, 같이 온 건축학과 친구가 궁금하다 하여 가게 되었다. 입장 전 이 친구가 이 건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지만, 교회였던 건물의 허물되 일부는 남겨두고 그 위에다 새로이 건물을 지었다는 매우 독특한 사실만 기억에 남았다. 미술관 내부에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교회의 터만 남겨둔 전시관이 있었는데, 마치 바닥은 유적처럼 되어 있었고 이를 구멍이 송송 뚫린 벽으로 감싸져 있는 게 인상 깊었다. 다른 전시관들에는 현대 미술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쓱 둘러보고 의자에 앉아 쉬다가 나왔다.
미술관에서 바라본 쾰른 대성당 | 바닥만 보면 역사 깊은 유적 느낌이 든다 | 옛날 교회에 새 건물을 덧입혔지만 꽤나 잘 어울린다
잠시 쾰른의 유명한 향수 브랜드인 4711에서 몸도 녹이며 이것저것 시향을 하다 Alter Markt로 갔다. 전날 본보다도 사람이 많았고 한국인들도 이따금씩 보였다. 본에서는 10보에 한 번씩 멈췄었다면, 쾰른에서는 5보도 한 번에 가기 힘들 정도였다. 전날 먹지 않은 음식을 위주로 사 먹었다. 지나가는 길에 봤던 연어 한 접시와 돼지와 칠면조 꼬치도 사 먹었다—당연히 Glühwein도 빼놓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를 지키는 사람과 음식을 사 오는 사람, 술을 사 오는 사람으로 각자 역할을 맡았다. 빈 테이블 사수, 점포 앞에서 새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눈치 싸움,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것까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랬기에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 광장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겹게 이곳을 빠져나와 쾰른 대성당 근처 광장으로 가보았다. 아직 배가 다 차지 않아 간단하게 츄러스와 함께 음료를 한 잔씩 더 사 마셨다. 이번에 나는 기존 Glühwein에 아마레토를 한 샷 추가하여 마셔보았는데, 비싸지만 드디어 술을 마신다는 느낌이 나서 좋았다. 대성당 쪽 광장은 특이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중심으로 조명을 거미줄처럼 엮어 머리 위에 달아놓았다. 여기에 점포 천막은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흠씬 풍겼다. 그리고 한편에는 밤하늘에 모습을 감춘 듯한 쾰른 대성당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봤지만, 이곳만큼 예술적인 곳은 없었다.
화로에서 맛있게 구워지고 있는 연어들 |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 반짝반짝 빛나는 천장 조명
원 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고 중앙역에서 짐을 챙겨 숙소로 갔다. 나름 프랜차이즈 호스텔인 Meininger로 예약을 해놓았다. 분명 사이트에서 예약할 때는 4인실 하나와 6인 도미토리 중 한 자리를 예약했었는데, 프런트에 가서 방을 달라고 하니 4인실을 이미 다 꽉 차서 줄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그들에게 사과는 받았지만 그다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더니 대신 우리에게 6인 도미토리를 통째로 주겠다고 했다. 다들 피곤해하고 지쳐 있어서 더 항의하지 않고 바로 체크인했다. 2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던 전날과는 다르게 모두들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져 버렸다—필시 내가 코를 골았을 텐데 다들 잘 잤으려나...
셋째 날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일찍 곯아떨어진 만큼 일찍 일어나 일찍 에센으로 떠났다. Essen, 우리나라 말로 '식사'라는 뜻이다. 어떻게 도시 이름이 '식사'일 수 있지?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이 도시는 과거 산업혁명 당시 석탄을 캐던 산업단지였다. 처음에 친구가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에 간다고 했을 때 '그게 뭔데?' 싶었지만, 찾아보니 이곳은내가 '문명 6'이라는 게임을 할 때 자주 지었었던 불가사의인 '루르 밸리'였다—생산력을 크게 늘려주어 과학 승리에 매우 도움이 된다. 이를 알고 난 뒤부터 내가 그 건축물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현재는 폐쇄된 탄광 산업단지라는 말을 들으니 썰렁하고 칙칙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에 도착하여 바라보니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피읖'자 모양의 도르래(?) 건축물을 기준으로 깔끔한 검붉은색의 건물들이 각을 맞추어 이어져 있었다. 푸른 하늘과 대조되어 더욱 선명해 보였던 것 같다. 멋들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한참 타고 올라가서 건물로 들어갔다. 깔끔한 외벽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렇다고 더럽거나 혼잡한 것은 아니고, 과거에 사용했던 녹슨 기계들과 파이프들이 남겨져 있어서 그렇게 느꼈다. 이것들을 따로 떼어내어 유리관 안에 전시해두지 않고 그 위치 그대로 남겨두어 실감 났다. 표를 끊고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이곳의 역사에 대한 전시관도 있었지만, 별로 관련 없는 내용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어떤 전시관은 일반 박물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박물관에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층수가 1층, 2층 이렇게 되어 있지 않고 높이로 되어 있었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관람객 입장에서는 헷갈리기만 했다. 대충 둘러보다 옥상에 가서 구경한 산업단지 전경이 가장 멋있었다. 역시 '문명 6'에서 불가사의인 루브르 박물관이나 빅 벤 같이 유명한 것들은 직접 봐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 루르 밸리의 '피읖'자 건축물은 왜인지 모르게 볼 때마다 벅차올랐다.
실제로 사용되었던 파이프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 용광로를 표현한 계단 | '문명 6'의 루르 밸리 아이콘으로 나오던 그 건축물
이후 일정은 갈렸다. 뒤셀도르프, 보훔, 드레스덴에 가는 친구들을 빼고, 나와 다른 한 명만 뮌헨으로 바로 돌아갔다. 기차를 너무 빠른 것으로 예매해 자칫 놓칠 뻔했다. 그 친구가 우버로 택시를 잡자는 아이디어를 낸 덕에 겨우 탈 수 있었다—이번 교환학생에서 내 돈 주고 탄 유일한 택시였다. 이즈음 독일 남부에는 폭설이 내렸었는데, 다행히 우리 기차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 밤늦게라도 무사히 뮌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2박 3일 여행은 오랜만에 또래들과 온종일 다녔다. 혼자 왔으면 가보지 않았을 곳이 태산이었을 텐데, 친구들 덕분에 뜻밖의 장소들을 가고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자 넷과 이렇게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낯선 나는—공대생인 나로서 어딜 가든 남자가 7할 이상인 게 당연했다—이 상황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이들이 많이 배려해 주어 편하게 다닐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여행 내내 춥고 피로했지만, 순간순간 느꼈던 행복과 남겨진 추억은 그보다 훨씬 큰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