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내가 브런치 작가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다
난 어렸을 때 영화광이었다.
극장에 마음대로 갈 수 없던 나이 일 때는 로드쇼, 스크린과 같은 영화 잡지로 아쉬움을 달랬다.
신작 영화 소개 페이지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마음대로 그 영화에 대한 상상을 하면서 상상력을 키웠었다.
성인이 되어 극장에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나이가 된 다음에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예약시스템이 온라인으로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무조건 극장에 가서 표를 사야만 했다.
인기 영화의 경우에는 새벽부터 줄을 서야만 했다.
그것도 나름 추억이었다.
새벽부터 서있는 우리를 보고 신문을 돌리던 아저씨가 심심하니 신문이라도 보라고 건네줄 정도였으니까.
굿즈 살 돈까지는 없어서 극장에서 나눠주는 팸플릿이나 미니 카드를 보물처럼 소중이 여겼었다.
가장 좋아했던 장르는 호러물이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상상력에 반했던 것 같다.
좀비나 드라큘라, 유령등이 현실 세계에는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거기에다 호러영화에는 무명의 이쁜 여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대부분은 잔혹하게 살해되거나 희생양이 되어 버렸지만 그 과정을 두근거리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살인마나 귀신들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반전이랍시고 영화 후반부에 살인마들이 멀쩡히 살아서 돌아오면 화를 버럭 냈었으니까.
호러영화의 매력은 저예산이다 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짜내서 만든 티가 보인다는 것이다.
B급 장르 영화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호러영화가 제대로 된 CG도 입히고 유명 배우들도 출연하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 당시 출연했던 무명 배우 중에도 나중에 유명배우가 된 사람들도 많다.
감독들도 그랬다.
반지의 제왕, 호빗으로 유명한 피터 젝슨 감독이 과거에는 고무인간의 최후(1987년작)와 같은 B급호러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 거다.
케빈 베이컨 같은 유명 배우도 13일 밤의 금요일 시리즈에 나와서 참혹하게 죽는 단역을 맡기도 했었다.
과거 호러영화들을 다시 보면 무명시절의 유명 배우를 찾는 재기가 있다.
여기에 큰 호재도 있었다.
절친이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덕분에 저녁이면 비디오 가게에 들러서 양손 가득히 영화를 받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절친 역시 나처럼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골라주는 안목이 남달랐다.
덕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좋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하루에 3~5편은 봤던 것 같다.
체력이 되냐고? 팔팔한 대학생 시절이라 시간도 남고 체력도 좋아서 밤새 영화를 보고도 다음날 수업을 듣는 데는 큰 지장은 없었다.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이다.
호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잔뜩 보다 보니 영화감독의 꿈을 꾸게 되었다.
당시에 한국영화의 위상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지금처럼 세계에 얼굴을 알린 배우도 없었고 촬영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설날이며 추석 같은 대목에도 외국영화들이 득세였으니 항상 나오는 말이 국산 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우리나라 영화계는 진짜 많이 발전한 거다.
영화감독을 꿈을 꾸다 보니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막상 감독이란 자리가 명예는 있어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 거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보니 함부로 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시나리오 작가였다.
학창 시절에 무협지도 재미로 썼겠다, 영화 시나리오라면 해볼 만할 것 같았다.
한동안 도서관에서 시나리오와 관련된 책을 미친 듯이 읽었었다.
군대만 가지 않았다면 시나리오 작가로 도전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제대 후에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모든 것이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무협지 작가의 꿈도, 시나리오 작가의 꿈도 과거의 추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브런치에서 다시 작가의 불씨를 태우기 시작하고 있다.
이래서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그때만큼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시작하는 마음은 이상하게 가볍기만 하다.
마치 오랫동안 객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할까?
오랜 방황을 마치고 다시 꾸기 시작한 꿈이니 만큼 이번에는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