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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Nov 17. 2023

청년 자립을 응원하는
따뜻한 이작가의 가슴 벅찬 하루

I am 진지예요.

2028년 11월 10일. 찬 바람이 코 끝을 스치지만, 따사로운 햇빛이 작업실 한가운데까지 길게 드리워지는 늦가을.


작년에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퍽 마음에 들어 꿀 발라 놓은 듯 드나들고 있다. 나의 연구실이자 글을 짓는 방앗간,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스튜디오이자 달스르 쿰쿰한 책 향기로 가득한 나의 서재. 팔색조 같은 매력을 가진 이 공간을 위해 건축설계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시간이 아깝지 않다. 통창으로 햇살이 길게, 오래 들어올 수 있게 복층으로 설계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10년 전부터 태안 시골집에 심어 놓았던 나무들이 이곳 양평에서 세월의 위용을 자랑한다. 나무를 좋아하는 남편이 소박하게 묘목을 사다 심을 때 군말 않고 옷에 흙 묻혀 가며 같이 심기를 잘했다. 지금 나의 정원에는 10년 넘게 자란 블루 애로우, 문 그로우가 그때의 수고로움과 땀에 보답이라도 하듯, 의리 있고 멋들어지게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아침마다 서울에서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글에 대한 생각을 시작할 수 있어 가슴이 부푼다. 양평으로 넘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생각의 꼭지를 하나 찾아 갈무리할 수 있을만한 최적의 여유를 나에게 안겨준다. 어떤 날은 의식의 고리를 놓칠세라 작업실로 뛰어 들어와 종이에 휘갈기고, 또 어떤 날은 발로 컴퓨터를 켜고 기똥찬 무언가를 쏟아내듯 키보드를 힘차게 두들겨 댄다. 5년 전 글쓰기 하나를 위해 모였던, 소박(이라 쓰고 욕망이라 읽는다)했던 우리의 모임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절절한 글쟁이의 삶을 지속하고 있을까. 당신의 어려웠던 시간을 딛고 일어서게 한 것이 읽고, 쓰는 일이었다 강한 어조로 설파하며, 우리 삶이 마치 당신의 삶인 양 간섭하고 단소리, 쓴소리 가리지 않던 우리의 멘토. 가슴 아픈 글에 조언을 하며 함께 울어 주던 그녀가 없었다면 가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할 엄두를 냈을까.




공부를 끝까지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삼 남매의 어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나의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단했지만 엄마의 응원과 지지 덕분에 보람된 일과 소중한 내 삶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나중에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마음만 안고 정신없이 살았다. 예순이 훌쩍 넘어서도 손주들과 힘차게 배드민턴을 치고, 봄날의 꽃처럼 곱던 엄마가 그렇게 황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나를 위해 고생하다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슬픔과 죄책감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슬픈 감정은 시간이 흐르며 옅어질 수 있지만, 변화 없이 또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심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40대 중반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나는 긴 터널 끝의 가느다란 빛줄기와 같은 답을 찾았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명의처럼 촌각을 다투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낼 재간은 없지만, '지쳐 있는 누군가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가슴을 때렸다. 마치 우리의 멘토가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안갯속에 가려진 가로등 불빛 같은 희미한 꿈이 나를 버티게 하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살핌의 사각지대에 있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에게 눈을 돌려 보았다.




가난한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 힘겹게 대학에 진학했던 청년 J는 키가 190cm가 넘는 거구였다. 그는 병들어 퇴직한 아버지 덕에 학업을 계속 이어 갈 수 없어 무작정 휴학을 하고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언젠가 상담 중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니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글을 쓰는 일이 좋다고 했었다. 글을 쓰고 싶지만 고상하게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는 것은 J에게는 욕심낼 수 없는 사치였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며 J도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기 바랐다. 식당 일을 하면서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당한 길이의 편지를 써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고, J는 짧은 답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병들고 나이 든 아버지에 대한 걱정, 아버지를 위해 공무원 시험을 보고 싶다는 J의 마음, 그러나 당장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아직은 어린 청년의 고된 삶이 그의 편지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짧게 시작한 그의 메일은 하루하루 길어졌고, 종종 나에게 보내는 답장이 아닌 자신의 사유가 담긴 에세이도 보내어 왔다. 그렇게 1년 이상 주고받은 글을 엮어 우리는 출간을 하였고, 아마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에게 힘이 되었나 보다. J는 지금 두 번째 독립 출간을 앞두고 있는 어엿한 청년 작가가 되었다. 에세이뿐만 아니라 소설에도 두각을 보여 얼마 전에는 클라우드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어려운 시절의 J에게 말을 걸 듯, 학창 시절의 아픔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 소녀 K와 수다를 떨 듯, 그리고 서해안 바닷가 마을에서 유학의 꿈을 꾸며 내 채널을 구독했던 여고생 S에게 조언을 하듯, 청년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글을 썼다. 보다 많은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채널을 통해 영어 글쓰기 강의를 해왔고, 일대일 컨퍼런스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정성스러운 맞춤형 지도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해가 거듭되며 조금씩 늘어나는 청년 구독자들이 변화를 겪고 성장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경제적 어려움, 부모의 무관심, 몸과 마음의 병으로 소외받던 이들이 사회초년생으로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는 소식은, 힘겹게 오른 높은 산 정상에서 기가 막히는 절경을 내려다보는 희열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니 그 몇 곱절되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초창기에 만난 청년들 중 여럿은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여 멋진 커리어를 쌓고 있다. 몇몇은 다니던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을 했고, 해외 기업들과 무역을 하느라 항공 마일리지가 주체할 수 없이 모인다며 나한테 나눠주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영어 글쓰기를 나와 함께 공부하며 보다 깊은 학문에 뜻을 두게 된 이들은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개성 만점 청년 남매는 우리말로 쓰던 웹툰 <결코 흔하지 않은 남매>와 단편 소설을 영어로도 쓰게 되면서 해외 구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글쓰기 배움이 이루어지는 영글강(영어 글쓰기 강의실)은 이제 제법 많은 직원들이 함께 하는 회사가 되었고, 전국에서 실력 있는 영어 전공자들이 뜻을 함께 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원해 주어 참 감사하다. 나는 쉬지 않고 우리말 글쓰기와 영어 글쓰기를 함께 하며, 모국어 글쓰기 경험이 외국어 글쓰기 활동에도 얼마나 중요한 지 영글강의 우리 가족, 글쓰기 선생님들에게 입이 침이 마르도록 교육하고 있다. 


내가 다른 댁의 청년들을 위해 일하는 동안 나의 첫사랑 로나는 훌륭한 사수를 만나 국제장애인협회에서 운영하는 한국무용단 활동을 하고 있다. 중학교 때 한국무용에 푹 빠진 로나는 무용단 언니들과 함께 호주, 미국, 유럽으로 해외 공연도 다닌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한 작품 한 작품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고 대견해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러면서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은 버리지 않고, 부족하지만 꾸준히 그림 공부에도 열심이다. 예쁜 옷을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로나의 착한 마음만큼이나 패션 디자이너의 길도 착하면 좋으련만, 홍디 작가의 감각을 보면 그 길은 매우 사악함에 틀림없다. 




오늘 쓰고자 했던 글의 꼭지가 마무리되었다. 내일 들여다보면 지우고, 바꾸고, 한참을 또 곱씹겠지. 그러다 보면 또 무언가 나올 테고, 생각지도 못했던 근사한 문장이 손 끝에서 빚어지리라. 작업실 근처 호숫가의 노을은 형용할 수 있는 단어를 작가가 된 지금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유독 맑았던 날은 숨이 멎을 만큼 품격 있는 색을 띤다. 이 귀한 아름다움을 지닌 호숫가에서 오늘도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5년 전 온전하지 않은 믿음으로 시작했던 모든 것들이 열매를 맺고 있으니, 앞으로 다가올 5년은 또 얼마나 신이 날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다. 2주 후면, 지난 5년을 함께 달려온 동기들과 연간 모임을 갖는다. 올해는 지중해 크루즈에서 만나기로 했다.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줄로만 알았던 크루즈 여행이 가성비 갑 중에 갑인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예전의 우리는 엄두도 낼 수 없었으니까. 이제는 낯선 호화스러움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여유들이 생겼다. 선상에서 눈을 뜰 때마다 만나는 새로운 나라의 아름다운 항구와 아침 인사를 하겠지. 그리고 저마다의 눈으로 관찰하고 느낄 것이다. 작가의 언어로 마음의 캔버스에 그림을 또 그릴 것이다. 



5년 후 동기 모임은 지중해 크루즈에서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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