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준팔 Nov 02. 2024

빨간색 자전거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특히 소비에서는)

빨간색 자전거에 대한 로망이 있다. 늘 있어왔던 건 아니고 아마도 계기는 자전거는 빨간색만 산다는 어느 유튜버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빨간색과 인연이 있었지~' 로 시작한 추억 회상이 집착으로 번지는 건 참 쉬웠다.


첫 번째 인연은 우리집 자동차다. 기아의 빨간 프라이드는 첫번째 자동차는 아니었지만, 내 기억의 시작과 함께한 자동차다. 썬팅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차를 타고 아빠와 등하교를 함께 했다. 안에 누가 탔는지 뭐가 있는지 훤히 보이는 유리창이 민망하면서도 다른 차들과는 달라 쉽게 눈에 띄는 우리차를 좋아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색깔이 빨간색이었다는 점이다. 온통 검정, 회색, 흰색만 가득한 자동차들 틈에서 우리차는 귀여웠다. 그래서 밖에 있는 누군가를 부를 때 창문 손잡이를 빠르게 돌려야하는 불편함마저 재미로 느껴졌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나의 첫 자전거다. 12~13살까지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나에게 어느 날 아빠가 자전거를 사주셨다.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상상했던 내 눈앞에 있던 것은 바퀴가 두 개뿐인 빨간 자전거였다. 이 자전거를 끌고 초등학교로 향했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한 운동장에서 아빠가 열심히 짐받이를 잡아주며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셨다. 주위에는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는데 덩치도 큰 고학년이 아빠와 자전거를 배우고 있으니 조금 위축되었지만,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경험을 하고 나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페달을 열심히 밟고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아빠가 서있는 경험말이다.


어쩌면 이 순간부터 빨간 자전거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잘 타지도 못하고 멀리 간 적도 없고, 자주 타는 것도 아니지만 자전거를 좋아하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마음과 더불어 문제가 함께 따라왔다. 세상에 자전거 종류는 다양하다는 것이다.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로드자전거, 험한 산속을 누비는 MTB, 이 두 가지의 장점을 섞은 하이브리드, 그리고 작은 바퀴가 매력적인 미니벨로까지. 나는 이 모든 걸 잠깐이라도 다 타봤다. 그럼에도 하나의 자전거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빨간색이 아니라 그런게 아닐까싶다. 당시에는 빨간색을 살 생각도 안했으니 억지 이유가 맞다. 그래도 이런 시행착오가 자전거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눈에만 예쁘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뭔가 하나라도 아쉬운게 있으면 사면 안되는 것이 자전거다. 그 아쉬움 하나가 자꾸만 다른 자전거에 눈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빨간색 MTB 중고 판매자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3개월 전 국토종주를 가겠다며 로드 자전거를 산 나를 알고 있는 지인들은 깜짝 놀랄테지만, 내 마음이 그런걸 어찌하겠나. 로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 어딘가 불편하고 무릎이든 팔이든 어디 하나가 꼭 아팠다. 익숙해지면 괜찮아 지겠지만 익숙해질 정도로 로드자전거 본연의 재미를 즐기고 있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자전거는 잘 닦인 도로를 빠르고 멀리 가게 하는 탈 것이 아니라 두 다리로 천천히 어디든 갈 수 있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연식이 오래 되었어도 내 눈에는 아주 예쁜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 하얗게 쌓인 눈 위에 서 있는 빨간 자전거를 그려본다. 오늘 거래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자꾸만 들여다 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변태는 브랜드가 될 수 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