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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지 Nov 06. 2023

내 나이 서른여덟, 새로운 도전을 위한 긴 여정의 시작

<다시 쓰는 성장일기> by 빅이지

(프롤로그) 2023년 가을, 그동안 내 마음을 꽤나 애태웠던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 2019년 8월에 청원서를 제출했으니까 만 4년이 걸렸다. 마지막 관문이었던 인터뷰를 마치고, 영사로부터 이민 비자가 최종 승인되었다는 말을 듣고 대사관을 나오는데, 그동안 안되면 어쩌나 하고 마음 졸인 게 생각 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처음 영주권을 신청할 때까지 만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고, 안되면 말고라는 아주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당시 남편은 서른 넷이라는 늦은 나이에 파일럿이 되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항공사들이 채용문을 굳게 걸어 닫아 한국에 돌아가도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남편과 같이 유학했던 분들 중 한국으로 돌아간 그 누구도 항공사에 취업하지 못했다. 항공사들의 러브콜을 받는 공군 파일럿들 조차 취업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남편처럼 민간 항공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경쟁에서 밀리는 건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다행히 남편은 내가 미국으로 파견되면서, 내 배우자 자격으로 워킹 퍼밋을 받았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파견 기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영주권을 받게 되었다. 영주권을 신청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청원서를 제출하고 나서는 그냥 무기한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정말 피가 마른다. 내 옆에서 인터뷰를 본 사람들도 최종 승인을 받았는지 끝나고 환호성을 질렀는데, 그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갔다. 나도 표현은 안 했지만, 정말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영주권을 가지고 미국에 돌아와서 나는 내가 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정말 먹고 노는 백수가 되었다. 친정, 시댁 모두 한국이라 챙겨드려야 할 부모님도, 돌봐야 할 아이도 없었다. 처음 몇 개월은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밀린 잠도 실컷 자고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지금 이렇게 시간을 헛되이 보내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함이 엄습했다. 나도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미국에서 새롭게 직장도 잡고 정착을 해야 하니 말이다.


나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흔한 학연, 지연도 없다. 심지어 미국 회사를 다닌 경험도 없다. 그나마 이직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기존 경력을 최대한  살려 유사한 분야로 지원하는 것인데, 내가 하던 일에 회의감을 많이 느꼈던 터라 같은 일을 하긴 싫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생각이 복잡한 와중에 남편은 아이를 갖자고 했다. 왜 신은 여자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셨는지. 내 나이 벌써 마흔을 코 앞에 둔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어렸을 때 막연히 생각했던 마흔 살의 나의 모습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경제적 부도 이룬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작 마흔을 코 앞에 둔 나는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것 같았다. 정말 참담했다. 내적 불안감이 커지니,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불안해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나를 돌볼 수 있는 이 소중한 시간을 왜 이렇게 허비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꽤나 워커홀릭이었던지라, 10년 넘게 회사 생활하면서 내 몸과 영혼을 일에 쏟아부었고, 불확실한 미래로 힘들어하는 남편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미래를 불안해 하기보다는 그냥 나 자신을 믿고, 지금 이 시간을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한 템포 쉬어가는 시간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도움닫기가 필요한 것처럼,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던 자기 개발도 다시 하고,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도전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인생이 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내 미래를 꿈꿔볼 것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 나아갈 것이다. 100세를 사는 시대에 마흔이면 아직도 청춘이기에.


2023년 10월15일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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