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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건 Mar 26. 2024

나 뭐 먹고 살아요?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데 

“나 뭐 먹고 살아요?” 

중학생 둘째의 질문이 귀를 때린다. 딸이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이 있구나 하고 내심 반갑기도 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안쓰러움도 느껴졌다.      


나는 대학생, 고등학생 딸이 있다. 첫째는 대학생이다. 둘째는 고등학생이고 그림을 좋아해서 학원에 보내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림을 좋아해 미술관에도 같이 가고 작가 강의에도 여러 번 가다 보니 이젠 나도 그림에 관심이 생겼다. 둘째는 관찰력을 위해 일부러 한글을 빨리 가르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제는 거실에 누워서 내 오른쪽 발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 발에 태양을 돋보기로 모으는 볼록렌즈처럼 집중력을 모아 보내는 시선을 받은 적은 없다.

”발 관찰해요, 그림 그리려면 관찰해야 해요 “ 

“그럼 많이 봐라.” 

유심히 관찰을 많이 한다.     

 

둘째는 학원에 다니면서 그림을 배운다. 한 날은 학원 선생님이 둘째가 그린 그림을 보러 오라고 했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그림이 점점 나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림이 점점 심도가 깊어져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고 하는데 새끼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고 돌아와 아내와 약속했다.

“좋아하는 그림 그리게 하자.”     


그림을 네 시간 그려도 불평 한마디 안 하고 집중해서 그리는 걸 보면 분명 그림을 좋아하는 거다. 싫어하는 일은 단 일 분이라도 하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지. 자기가 좋아하는 거 찾기도 어려운데.      

둘째 꿈인 그림 그리는 걸 도와주고 싶었다. 출판사 창업을 하면 출판사에서 그림을 그리면 먹고살 수 있고 꿈도 이룰 수 있다. 곧바로 출판사 창업 준비를 실행했다.      


인터넷에 출판사 창업을 검색하고 잊을세라 금방 휴대폰으로 찍고 구청에 가서 그대로 따라 썼다. 서류 한 장 쓰는 게 끝이다. 이 간단한 종이 한 장에 얼마나 쩔쩔매었던지.      


산 넘어 산, 이제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둘째가 고등학생 1학년이라 아직 미성년자다. 게다가 스마트 스토어에 둘째가 직접 그린 그림을 판매하려고 했기에 사업자 등록증, 등기도 필요했다. 가지가지 필요한 서류는 왜 이리 많은지? 조금은 지치고 짜증도 나는 가운데 등기국에 갔더니 직원이 하는 말. 

“미성년자 등기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해요. 참 대단하십니다. 따님을 위한 아빠의 정성이 지극하시네요.”


둘째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데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제 나는 TV를 보고 있던 둘째의 “나 뭐 먹고살아요?” 질문에 이렇게 답하려고 한다. 

“네가 좋아하는 거 하며 먹고살면 돼. 그 과정은 힘들지만 즐기는 거고, 어차피 힘들 거면 네가 좋아하는 일로 힘든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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