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스페인어를

우울할 땐 스페인어 공부 1

by 풀꽃


직장에서 복지 혜택으로 원하는 책을 구입할 수 있었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은 사주명리학 책과 <Nuevo Espanol en Marcha > 1권이었다. 누구는 자기계발서를, 어떤 이는 인문교양서를 살 때 사주 책이랑 스페인어 책이라니.

옆에서 동료가 “스페인어 공부하세요?” 묻는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내 얼굴에 써 있나?

“스페인어 책 사셨네요.”

헐, 부끄러울 건 아니지만 누가 스페인어라도 한마디 해보라 할까 봐 굳이 알리지 않으려 했던 건데.....

그가 또 묻는다. “스페인어는 왜 공부하시나요?”

“아, 네... 우울증 치료에 아~주 좋답니다~.”


스페인어는 왜 공부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영어를 잘하는 그 동료는 어쩐지 완전 내 맘 안다는 표정으로 엄지척을 날린다. 요즘 쇼츠에 뜨는 “엄마가 우울해서 빵을 샀는데~” 시리즈로 알아보는 MBTI검사대로라면 “어머, 요즘 우울하세요?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라고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엄지만 날리면 당신이 T인지 F인지 어찌 아나. 그런데 동료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 지문을 자꾸 보여줄 뿐이다. 난 뭐 생전 안 우울할 줄 알았으까?


스페인어 공부한 지 어느새 1년이 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던 건지 가물거려서 일기장을 뒤져보니 22년 1월 일기에 스페인어 공부, 라고 적혀 있다. 축지법의 비법이 길을 접어버리는 거라더니 누가 내 세월을 접어버렸나. 언제 1년이 지나갔지? 벌써 1년이나 지났다고 하니 지난 세월에 비해 나의 스페인어 실력은 별로 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나는 ‘너 나한테 책 한 권 줄 수 있니? ¿Puedes darme un libro?’ 이런 문장 하나 정도 작문은 할 수 있다. 사실 공부할 때마다 내 실력이 제법 늘었다고 나 스스로 매우 기특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공부한 지 벌써 1년이 된 줄 몰랐다. 어떤 사람들은 바짝 1년 외국어 공부를 하면 어지간한 의사소통을 한다는데 그에 비하면 엄청 발전한 것도 아니네. 하긴 직장 다니고, 학원도 아닌 야매 독학을 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무슨 시험을 볼 것도 아니라서 절실함도 없었으니 확 발전할 동력도 없었지 않았나. 오히려 공부를 즐기고 있으니 일취월장 따위는 바라지 말자.


사실 왜 갑자기 스페인어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책장에 ‘프랑스어 첫걸음’, ‘스페인어 첫걸음’ 이런 책들이 꽂혀있는 걸 보면 한참 전부터 재미삼아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수십 년을 공부해도 여행 가서 말도 잘 못하는 하나마나한 영어에 질렸는지도 모른다. 별 이유 없이 그냥 영어 말고 또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었다면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배운 프랑스어도 있는데. 샹송을 따라 부르고 싶어서라든가 <어린왕자>를 원서로 읽고 싶어서라든가, 소통을 할 일은 절대 없더라도 근사하기로 따지면 프랑스어가 더 공부할 만했건만. 심지어 프랑스어는, 배운 게 있어서 조금만 공부하면 땅속 씨앗이 움트듯 확 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지금쯤 나는 미셀 폴라레프의 <Holidays>를 읊조리며 비행기가 내려앉기 전 파리의 낮은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필 프랑스어도 아니고 스페인어였을까나?


<Holidays> 대신 <Donde Voy>

그러고 보니 스페인어 공부를 하게 된 무수하고 잡다한 이유 중에는 <Donde Voy>를 따라 부르고 싶었던 것도 있다. 원래 좋아하는 외국어 노래는 듣다가, 따라 부르다가, 뜻을 알고 싶어지는 단계로 나아가게 돼 있지 않나. 한때는 한글로 가사를 적어 따라 부르던 <Donde Voy>가 이제는 원어 그 자체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단계가 되긴 했으니 실력이 늘긴 늘었다. 음률의 애절함보다 더 현실의 처절함을 담은 가사 말이다... 내가 돈을 좀 부칠 테니 당신도 어서 내게로 왔으면 좋겠다는, 이민국에 들키지 않으려면 새벽에 떠나야 한다면서 거친 삶을 사막과 산을 헤매는 발길에 비유한 이 노래를 뜻도 모르고 그냥 무슨 사랑 노랜 줄 알고 듣고 또 듣던 그 시절, 어쩌면 나의 스페인어 공부는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페인어 공부는 2011년, 가족과 스페인 – 포르투갈 여행을 갈 때 인사말이라도 해보자고 수첩에 몇 단어를 끄적인 것을 시작이라면 시작이라 할 수도 있겠다. 2017년 쿠바 여행 갈 때 한 번 더 여행용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1에서 10까지도 제대로 외워지지 않던 이방의 언어라니. 하지만 그렇게 꼭 가고 싶던 두 나라는 이미 다녀왔고 남미를 갈 생각은 없으니 여행 가서 쓸 일도 없는 스페인어를 나는 왜 배우는 거냐. 엎드려 열심히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나를 남편은 의혹의 눈길로 바라본다. 저 사람이 퇴직하고 어디 가려는 건가? 아마 하루에도 백 번, 그거 공부해서 뭐에 쓸 건데? 묻고 싶겠지. 안 물어봐줘서 참 고맙다.


다른 이유도 있다. 루이스 세폴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다가 이 작가가 궁금해서 그의 다른 작품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를 읽었다. 왜 그런 책 있지 않은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원서가 궁금해지는 책. 번역이 너무 뛰어난 경우와 너무 어색한 경우 그런 욕구가 일어난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이 책을 원서로 읽어 보고 싶어졌다. 제2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니 하는 칭송을 듣는 작가 루이스 세폴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서 그토록 정교하게 끈적하고 끔찍한 열대의 삶과,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책이라는 걸 읽어나가려 애쓰는 노인 이야기를 담아내던 작가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좀 써주세요’라고 청탁을 받기라도 했는지 참으로 딱 청소년에게 읽히기 좋은 책을 썼다. 그게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다. 주제의식도 좋지만 어딘가 어설퍼서 귀여운 이 책을 스페인어로 읽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하긴, 스페인어를 사용했던 이들 중에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이 참 많구나. 파블로 네루다, 체 게바라, 마르코스... 스페인어로 시를 쓰고 일기를 쓰고 연설을 한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다 죽어간 빅토르 하라도 있다. 그들이 한 말을 날것 그대로 읽어 보고 싶기도 했다.


스페인어를 말하는 내 남자들

하지만,

1년 전의 내가 굳이, 마치 고치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애벌레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엎드려 아A 베B 세C 데D 에E 에페F 헤G를 읊은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그때 우울했다. 사실은 그 전해 10월, 아들이 취업 시험에 (또) 실패하자 나는 격렬한 우울감에 사로잡혀 괴로웠더랬다. 그때는 시답지 않은 시를 쓰면서 어찌어찌 그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더 이상 시를 모욕하지 말고, 현실로 우울을 극복하자고. 그러니까 나의 스페인어 공부는, 우울을 이기기 위한 도구였다. 그래서, 효과가 있었냐고? 그랬다. 적어도 스페인어 공부를 할 때는 목표가 있었다. 공책을 써야 하고 외워야 하고 종이를 채워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내가 퇴근하고 저녁 먹고 엎드려 스페인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새 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는 것. 불면증엔 어려운 책 읽기 혹은 공부가 최고다. 반드시 엎드려서 할 것.

그렇게 스페인어 공부는 우울과 불면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