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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Mar 18. 2024

<파묘>를 봤다, 명동성당에 갔다

우울할 땐 스페인어 공부 4

영화 <파묘>를 보았다

오컬트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딸의 말과 숏폼으로 본 대살굿 장면에 호기심이 생겼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리뷰를 더 즐겨 읽는 편이라 이미 대략의 줄거리들을 알고 갔고 갑작스레 귀신따위들이 출몰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서 그런지 엄청 무섭지는 않았다.


영화는 일단 너무나 재미있었다. 영화평들을 보니 공포영화의 진수는 공포의 실체를 끝끝내 모르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실체가 드러나고 그와 싸워 이기는 이런 유치한 공포영화는 오류라고 까는 비평들도 많더라. 공포영화에 그런 공식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공포영화를 즐기러 간 게 아니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끝내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의 찝찝함을 돈 내고 보고 싶지 않은 1인으로서는 오히려 깔끔한 엔딩이 좋았다.


반일영화 논란이 있다 하는데, 솔직히 좀더 메시지가 강한 반일영화였어도 난 좋았을 것 같다. 곳곳에 그런 모티프들이 있다고는 해도 내가 볼 땐 감독이 많이 자제한 것 같다. 지관인 상덕의 입으로 이 땅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라고,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비장하게 말하는 것이 선언된 메시지의 전부이다. 그 정도는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현실망령을 보다

역사는 사실이다. 평가도 다르고 입장도 다를 수 있지만 이 땅에 침략의 역사가 있었던 것, 일본이 우리 땅 곳곳에 문화를 파괴한 흔적을 남기고 갔다는 것, 모두 사실이다. 영화는 그 사실들에 근거해 벋어나간다. 쇠침이 있니 없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박혀 있는 쇠침은 '실체가 아니라 정령'이었던 것처럼 쇠침 자체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잘먹고 잘살고 있는 현실망령들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우리 안에 남아있는 일본 문화를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열등감에 기반한 걱정들은 해가 떠오르자 사라지는 밤의 그림자처럼 사라져간다. 그러나 아직도 식민역사를 왜곡하는 망령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이 부와 권력, 지식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정말 좋았던 부분은 대살굿, 경문, 귀신 쫓는 노래 등 민속문화적 장면들이었다. 그런 문화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구비문학 등을 공부하면서 무속신앙이든 지방문화든, 민중의 문화들이 가진 가치를 배웠다. 공부하면서 늘 역사는 5000년에 육박하는데 문화적 자산, 특히 문학적 자산이 빈약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답은 일본의 침략 과정에서 문화적 자산들을 말살하려 애썼고 그게 대부분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동성당에 갔다, 신앙도 없는 주제에

영화를 다 보고 서둘러 명동성당에 갔다. 오컬트 영화의 검은 기운을 씻으려 성당에 간 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우연히 시간이 겹쳐진 것뿐. 


나에게는 믿는 종교가 없다.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 상 어찌어찌 하다 보니 타로도 공부하고 사주명리학 책도 읽고 그런다. 아주 어린 날에는 스스로 교회에 걸어들어가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시절이 한 2년 있었다. 명리학적으로는 정신적 세계에 관심이 많은 기토(己土)가 일주라 그렇다 한다(프로이트와 융도 기토 란다). 사춘기 시절 예수에 매료돼 사로잡히다시피 살았던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얕은 공부를 뒤로 하고 현실의 나는 데카르트주의자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소심하고 쪼잔한 데카르트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난 합리주의자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 어딘가에 신적 존재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없다'고 말할 생각, 없다. 오히려 나는 깊은 신앙심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사주명리학이나 타로도, 그 신비함을 믿고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고작 이론으로 공부하고 머리로 받아들일 뿐 믿지 않으므로 공부가 깊어지지도 않고 내 마음에 위안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어디든 성스러운 곳에 가게 되면 꼭 기도를 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거대하고 신비롭고, 선한 영성에게.


역사와 함께 하는 명동성당

명동성당은 유서 깊은 곳이다. 종교적으로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신자는 아니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여행을 가면 모든 성소에서 반드시 기도를 하고 나온다. 그리고 명동성당.... 내게 힘든 일이 생기면 그곳에 들러 기도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신도들은 '나의 주님', 혹은 '나의 성모님'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겠지. 하지만 나는 반성과 죄송한 마음을 먼저 들먹이며 그들을 부른다. 신도도 아니면서 기도를 하는 나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먼저 한다. 내가 아쉬울 때만 기도를 올려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한다. 기복신앙은 좋지 않다고 배웠고 기복신앙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하는 건 아닌가 비판하는 마음이 한가득이면서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마다 비루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는 나를 용서해 달라고 먼저 말한다.


신령스러운 존재는 있을까 없을까

오늘 내가 무슨 일로 명동성당에까지 가서 지하성당에서 한 번,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초를 태우며 또 한 번, 두 번의 기도를 해야 했는지 이 글에서는 쓰지 않으려 한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소중한 마음은 함부로 입밖에 내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 지난 번에 입춘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밀이었던 것과 같은 이유이다. 다만 나의 기도는 아주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기복의 기도였음은 고백한다. 그러고 보니 명동성당에서의 기도는 내가 아주 작아지고 하찮아질 때마다 이루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찾아간 명동성당, 맨 뒷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려 했는데 마침 혼례성사가 방금 시작되었다. 그럼 성모마리아에게 작은 초 하나 불 밝히고 가야겠구나, 싶었는데 둘러가는 길에 지하성당이 있다. 우리나라 최소의 순교 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유해가 모셔진 지하성당에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미사를 기다리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도 잠시 그 한 구석에 앉아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집을 나서기 전, 초는 천원짜리 몇 장이 있어야만 살 수 있었던 기억에 잔돈을 마련할 때 남편은 5천원을, 나는 주머니에 3천원을 넣어두었는데 기도를 마친 내게 남편이 다가와 5천원을 성자 앞 헌금함에 넣고 왔다고 말한다. 유물론자에 아나키스트인 남편, 어디 가서 온 가족이 각자의 기도를 올려도 멀뚱거리며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의 무늬만 헤아리던 남편도 오늘은 나의 '명령'에 따라 기도를 올렸을까.


그리고 뒷마당에 나가 성모마리아 앞에서 또 한번의 기도를 올린다. 미워하던 친구를 용서하게 해달라고 했을 때, 남편의 지인의 죽음을 건네 들어 마음 아팠을 때, 내 주변의 어리고 아픈 영혼들을 생각할 때, 그렇게 몇 번의 기도를 올릴 때도 그랬듯, 매번 그랬듯 나는 눈물을 흘린다. 


오래전 베드로 대성당의 신비한 기도

아주 오래 전 유럽 여행을 갔을 때도 그런 적 있었다. 바티칸 시국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한여름 관광객 천지라 피에타 상도 본둥만둥 구경을 하는 건지 떠밀리는 건지 애매한 투어 중이었다. 


이상하게 한적한 구석이 있어 그리로 가려 하니 거긴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 아니란다. 기도소였다. 신도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앞에는 경비들이 서서 관광객들은 못 들어가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멀찌감치서 구경이라도 하려 그곳을 기웃거렸는데 아무도 날 막지 않았다. 내 복장은 진지하지 않았지만 내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랬을까?  경비원들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기에 얼떨결에 기도소에 들어가 앉아 기도를 올렸다.


기독교를 떠나온 지 오래 된 나를 죄송해 하면서(마음에서 신앙심이 우러나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고작 나의 어머니와 나의 딸의 축복을 빌면서 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딱히 힘든 일도 그렇게 처절한 기도를 올릴 일도 아니었으나 이상하게 인생의 무게가 총체적으로 느껴지며 온갖 상념이 떠올랐던 것 같다. 그 기도 사건은 내가 별로 경험하지 않는 몇 개의 신비로운 사건 중 하나로 오래 남는다. 


'주말은 뒹굴'이란 모토가 무색하게 1만보를 거의 채우다시피 많은 일을 한 하루. 남들의 성소에 가서 수줍은 기도를 한 주제에 큰 숙제를 한 기분을 맛본다. 언젠가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은 채로 이 세상을 떠나 원자로 분해되어 사라지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래도 꽤나 진지하고 깔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영혼의 자존감이 조금 높아진다. 참 이상하다, 가장 부끄러울 때 이런 기분이 드는 것. 


기도하러 간 건 참 잘 한 일이었다.  


 Adiós는 스페인어로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이지만 '신(Dios)께 네 축복을 빌어주겠노라'는 의미란다. 평상시 인사에도 신을 부를 수 있는 나라 사람들이 가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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