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주 Dec 07. 2023

변태와 한쪽 눈 마주친 날.

-어느 여름.

 어릴 적 아파트에 살았다. 

산 아래 있는 동이라 베란다 커튼을 열고 살아도 사생활이 노출될 걱정이 없어 집에서 바깥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지냈던 것이다. 그러한 습관이 내가 커서까지 남아있었고, 난 누가 내 모습을 볼 거라는 염려 같은 것은 탑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철휘와 둘이 지냈던 조그만 방은 창문을 열면 옆집 1, 2층이 그대로 보이는 구조였다. 

환기가 제대로 되겠나. 

어림도 없지. 

그저 추운 겨울에는 창문 열면 찬 공기가 들어 '창문을 열었구나~' 하는 정도. ㅎㅎ


난 작은 월세방에 살았고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우리는 TV가 없었다. 

TV 놓을 공간이 일단 없었고 옷을 걸어둘 행거를 한쪽 벽에 설치하고 나면, 나머지는 누워 자는 공간이었다.

나는 TV도 없고 나를 이끌어 줄 어른도 없으니 똑바로 살려면 어쨌든 뭔가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쉬는 날이면 서점에 가서 자기 계발서 따위를 샀다. 

그리고 종이신문을 구독했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으니 세상을 알 길은 신문뿐이라 생각했다.

직장에서 언니와 오빠들이 무한도전 이야기를 하며 웃을 때, 나는 그냥 듣기만 하고 아무 말 못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슬프게 느끼지도 않았던 것 같다.



철휘는 늦게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일을 했다. 

집에 와도 철휘는 없고 혼자였다. 

나는 퇴근하면 방을 청소한 후 씻고 엎드려서 신문을 보며 라디오를 들었다. ㅎㅎㅎㅎ

신문으로 기사를 읽는 데, 글자만 읽어도 생생하게 영상으로 세상을 보는 기분에 신문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 들었던 감정 중 강렬해서 잊을 수 없었던 게 하나 있는 데,

걸레로 방을 막 닦으며 너무도 외로운 거다.

'지금은 죽도록 외롭고 힘들지만 나중엔 너무 행복해서 이 시절을 추억할 때가 올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단 버티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신발 신고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는 명랑함을 탑재하고 나섰다. 나는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티 내지 않았다. 나의 가난함과 나의 외로움을-


(당시 내 친구들과 지인들이 보는 내 모습은 어땠을는지 모르겠다.)



어느 한 여름날, 집에 와서 창문을 반쯤 열어두고 음악을 틀어놓고 바닥에 앉아서 손톱손질을 하고 있었다. 난 샤워하고 난 뒤 짧은 티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었다. 

뭔가 싸한 기분에 창문을 봤더니 어떤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을 반만 내밀어서 창문 안쪽의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창문에서 약 1.5미터 떨어져 앉아있었는데 창문이 없었다면 한 걸음 내디뎌 손을 뻗으면 그 남자가 나를 만질 수 있는 거리였다.



이런 눈과 마주쳤다. 






소리를 질렀고 그 변태 놈은 도망갔다.

옆 방 자매들도 나오고, 난리가 났다. 

경찰에 바로 신고했지만 누군지 찾을 수 없었다. 

얼굴 반쪽이니 생김새를 알 수 없었다.


나는 한동안 너무 무서워서 더워도 창문을 꼭 닫고 지냈다.

경찰은 약 일주일 정도 밤 시간에 동네 순찰을 돌더니 그렇게 끝났다.


그 동네는 너무도 위험하다고 생각되었고 

처음으로 안전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출을 하려고 해도 100% 내가 필요한 금액만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일부는 저축으로 모아야 했다.



약 6개월 뒤

나는 주례 옆 가야라는 동네에 신축원룸으로 이사했다.

보증금 천만 원에 그 역시도 월세였지만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이 보였고 환기가 너무 잘 되는 집이었다.

옥상이 있어서 이불 빨래를 해서 옥상에서 햇볕에 말릴 수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많은 집들이 내려다 보였다.


침대를 창문 바로 옆에 가로로 두어 침대에 누우면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사 한 날,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았다. 

방에 드는 공기가 깨끗했고 하늘이 예뻤고 집도 깔끔했다.

그리고 TV를 샀다.

에어컨도 있었다.

세탁기가 새 거였다.

화장실이 깨끗했다.

주방도 냉장고도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약 4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갚아야 할 대출이었지만 보증금이 천만 원이 생겨서 너무 행복했다. 

내가 처음으로 가져본 목돈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산동네 방 하나, 그래도 동생이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