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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13. 2023

교원 마음방역 심리상담 프로그램

잘못된 귀인, 비합리적 신념, 불필요한 강박

어디 공문에서 보았는지, 검색하다 보았는지, 1정 연수에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2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1년 내 8회기 무료였던 것도 있지만, 교감 교장 결재를 받지 않고 내가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내 용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조퇴 목적지에 ‘ㅇㅇ심리상담센터’라고 적은 것 때문에 한 번 불려 올라가서 개인 상황에 대한 긴 이야기를 하긴 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사실 말을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나서 한참을 펑펑 울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 이런 사람도 많을 거야, 이런 사람들 많이 보셨겠지 하며 나를 위로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의 교원 마음방역 심리상담 프로그램은 교권 보호 위윈회 등 명시적 피해 상황이 발생한 교원과 보통의 교원(?)으로 나누어진다. 메일로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하여 송부했던 것 같고 2~3일 안에 문자를 통해 상담센터가 배정이 됐다며 연락이 온다. 신청서에는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부분과 근무지 근처 상담센터를 원하는지, 거주지 근처 상담센터를 원하는지 등이 나와있었던 것 같다.


센터에 처음 들어가서 대기하는데 포근한 인형들이 많았다. 푹신푹신하고 귀여운 것들은 사람을 말랑하게 만들어줘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첫 상담을 하기 전, 작은 방으로 안내되어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계기 같은 것을 적으라고 주셨다. 대충 5월과 7월의 이야기를 썼던 것 같고 마지막에 ’대단한 진상 학부모를 겪은 것도, 교권 침해를 당한 것도 아닌데 내가 여기에 오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썼던 기억이 있다.


매 회기는 50분. 선생님과 동네에서 마주치거나 했으면 약간은 불편했겠지만 그런 적도 없고, 이 상담의 시간이 다른 관계들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편안했으므로 아주 소상히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지금 기분은 좀 어떠세요?’이다.

편안해요. 후련해요. 좋아요. 뿌듯해요.


실제로 선생님을 만나고 많이 나아지고 있던 찰나였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불필요한 생각들,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 보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내가 편안한 길을 택하는 것들.


오늘 오후에 이 심리상담의 마지막 회기를 하게 된다.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종결할 줄 알았는데, 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동안 내가 뭐가 나아졌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선생님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은요, 제가 우울증 약을 먹고 더군다나 이번 주에는 약이 늘었어요.


종결을 앞두고 선생님과 이렇게 계속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이전의 나로 돌아가게 될까 봐 두렵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은 함께 길을 내는 작업들이라고, 원래 가던 길을 가다가도 ‘아, 맞다! 이쪽 길도 있었지.‘하고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길을 가다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버리면요?

그때는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올라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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