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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꿋 Nov 10. 2023

점 하나만 찍으면..

브런치에 점찍기

또 시작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라는 병이 도졌다. 일 벌이는 걸 겁나 싫어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더 꺼린다.

게으름의 대명사인 나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난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크고 작은 일에 도전을 했다.

일단 되든 안 되든 시도해 보는거다.

세상만사 그냥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고 싶었고 나 또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2022년 복직 즈음, 슬초(슬기로운 초등생활) 브런치 프로젝트 신청 공지를 보았다.

생소했다. 왠지 모르게 끌렸다. 하지만 프로젝트 가격도 만만찮고, 무엇보다 글 쓰기에 자신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글 쓰는 거 한번 배워 봐?' 등록하고 싶은 마음 반절,

‘이거 해서 뭐 하나. 이제 사무실 나가면 시간 없을 텐데’ 하는 마음 반절이 격렬히 부딪쳤다.

처절한 내면 싸움의 결과, 복직 후 업무 적응 등의 핑계로 등록하지 않았다.

이후 카페 게시판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합격 후기가 쭉쭉 올라오는 걸 보고 괜히 샘이 났다.

핑계란 핑계는 덕지덕지 갖다 붙여놓고 신청조차 안 했으면서 합격자의 후기를 읽는 내내 질투가 나서 머릿속에 뜨거운 불길이 튀어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솝 우화가 생각났다.

여우가 “ 저 포도는 아직 덜 익어서 맛이 없는 신포도야. 안 따먹길 잘했어”라는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프로젝트 신청했어도 작가가 못 되었을 거야. 복직하면 시간도 없는데 신청 안 하길 잘했어”

스스로 합리화했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여우와 신포도



휴직 공백으로 사무실에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코로나 이후 바뀐 사무실 분위기, 새로운 직원, 바뀐 업무 프로그램 등 정신줄 가출한 상태로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누렸던 시간부자 자유로움을 잃어버리자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끝없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는 그런 날이 무수히 자리 잡았다. 필수 나사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다.

뭘까? 뭐지?

삶에 찌든 내가 아닌 다시 '나'를 찾고 싶었다.


"그간 잊고 지낸 '나'를 찾으실 분은 환영합니다"


슬초 게시판에 뜬 공지를 보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작년처럼 고민만 하다 타인을 부러워하며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았다. 신청 알림을 받고 망설임 없이 바로 결제를 했다. '일단 부딪혀 보자.' 이번엔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알리지 않았다. 불합격의 공포는 생각보다 거셌다.

솔직히 글쓰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 쓰지도 못했다.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그 시절 5학년 선생님께서 독후감, 일기 등을 쓴 글에 "잘 썼다."라는 코멘트를 늘 달아주셨다. 그 당시 꾸준히 쓰라고 적어주신 거라 추측한다.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걸 보면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미약한 끈 한 자락이라도 잡고 싶어서 내 기억 속에 새긴 거 같다.

불합격의 부담이 컸으나 합격할 때까지 코칭해 준다는 안전빵 공지를 보고 편한 맘으로 교육날짜를 기다렸다.


두둥, 기대감은 곧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강의 듣는 도중 끝나고도 단톡방에서 동기들의 대화 글은 재치와 위트가 넘쳐흘렀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비교가 될 만한 것들이 스믈스믈 나타났다.

'어. 이게 아닌데........'

빠릿빠릿하게 과제를 제출한 분, 단톡방에서 분위기를 리드하는 분부터 시작해서 내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었다. 과제 제출한 분 글을 보니 비교하지 말고 편하게 글 써보라던 선생님의 말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필력이 대단한 동기 글을 보니 내 글이 초라하고 위축되어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매번 바쁘단 핑곗거리만 생기고 글은 안 써지고 시간에 쫓겨 겨우 과제 마감날에 제출하였다.

'나'를 찾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샌가 "합격, 불합격"에 신경이 곤두서고, 동기들의 글에 주눅이 들어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 왜 지원했는지 동기마저 잊어버렸다.

마음만 바빠진 채 수십 번 고치기를 한 끝에 마무리한 글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부족하지만 작가지원 신청서제출할 땐 주저 없이 접수했다.

'떨어지면 코칭받지 뭐', '아. 근데 진짜 불합격이면 우짜지?', '지원한 거 내 주변은 아무도 모르니깐 괜찮아' 불합격의 기운만 온전히 다 받아들이다  "합격" 통지를 받으니 얼마나 기쁘던지 감사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두려움이 앞섰다.

도전 자체를 후회하고 포기도 해 봤다. 물론 간혹 성공 경험도 있었다.

인생사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일단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까지가 쉽진 않다. 실패의 결과물을 마주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슬초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에 한 점을 찍었다.

시작!!! 그 하나만 찍으면 뒤에 찍히는 점들은 쉬이 따라올 것이다.

물론 점들이 그냥 점으로만 그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점씩 수많은 점들을 연결하다 보면 그 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최종 그림이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해진다.



사진출처: Unsplash,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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