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스위치를 확인했다. 위아래 나란히 붙어 있는 스위치 중 위쪽이 말썽이다. 누르면 한쪽이 내려가야 하는데 제자리로 가지 않는다.
이거 왜 이러지?
몰라, 갑자기 그래.
언니 울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 사이 꿍이를 쳐다보니 눈빛이 이리저리 헤맨다. 너였구나. 꿍이가 엄마의 레이더에 걸렸다.
이거 세게 눌렀어? 혹시 주먹으로 친 거야?
으응.
꿍이가 조심스럽게 쭈뼛거리며 말했다. 십여 분 전에 꿍이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내일 유치원에 갈 때 입을 옷을 미리 챙겨둔 꿍이는 엄마가 청소한다고 옷을 한쪽에 치우자 속상해했다. 울그락불그락 콧김을 세게 내뱉는 아이의 표정이 귀여워 웃고 말았다. 그게 뭐 별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언니는 동생이 화난 것을 알고 우스운 표정으로 마음을 풀어주려다 도리어 동생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나 화났을 때 웃기게 하지 말란 말이야!
그러더니 언니를 살짝 꼬집고(언니가 무서워 세게 꼬집지도 못하는 아이다), 방에 들어가 애꿎은 스위치를 주먹으로 탕 쳤나 보다.
불이 켜지지 않아서 스위치 안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일자 드라이버를 가져와 스위치 커버를 뜯었다. 버튼을 뜯어내니 안쪽이 흔들거렸다. 망가진 스위치를 보니 화가 치솟는다. 억울하다. 지금껏 밥 하고 설거지하고 음식물 쓰레기 치우고 식탁을 닦고, 이제 좀 씻으러 들어가 볼까, 드디어 쉴 수 있겠다 마음을 놓으려는 참이었다. 그런 순간에 드라이버를 들고 스위치를 고쳐야 한다니.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고장난 스위치
별 일 아냐, 별 일 아냐. 화 안 내도 돼.
스위치를 어떻게 고치는지 물으러 남편에게 전화했다. 그는 전화기 너머로 노심초사다.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부단히 애를 쓴다. 스위치만 새로 사서 바꾸면 될 일인데, 화난 엄마가 아이에게 큰소리로 야단치고 아이는 속상해할 것이 눈에 뻔히 보여서일 거다.
별 거 아닌 거 맞다. 새벽마다 다짐했다. 아이에게 화를 덜 내려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별 거 아냐'를 수시로 외웠다. 이럴 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좀 쉬고 싶은데 왜 일거리를 자꾸 만들어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거냐고! 아이들에게 속마음을 말하는 대신 화를 누르며(표정은 무서웠을 수도 있다.) 주먹으로 스위치를 치면 안 되는 거라고, 왜 그랬냐고 야단을 쳤다. 아이는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새 스위치가 없으니 내일 사서 교체하기로 했다. 해결 방법을 찾고 나니 그제야 속상하고 걱정됐을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아까는 화가 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는데,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왜 그랬나 싶다. 오늘도 한참 부족한 나를 마주하고는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뭐, 예전보다는 소리 적게 질렀으니까 괜찮겠지. 괜찮은 거 맞겠지.
아이들에게 위쪽 스위치가 고장 났으니 새로 교체할 때까지 누르지 말라고 얘기해 두었다. 조금 이따 아이들 방문에는 종이가 두 장 붙었다. 언니가 그린 그림을 보니 엄마 말을 잘 이해했다. 조금 뒤 작은 방 주인 쿠디와 토디는 기분을 풀고 다시 인형 놀이에 집중했다. (꿍이는 자기를 쿠디, 울이는 토디라고 불러달라고 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내일은 새 스위치를 사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