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지 않은 이유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고

by 여름

쓰는 사람들의 쓰는 마음에 대한 책인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조금 읽다가 문득 따라 해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써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번 적어봤지만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은 부러 외면해 왔었기 때문이다. 쓰기 싫은 이유는 수없이 많을 테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다 보면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설득되어 앞으로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까 봐 그랬던 것도 같다.


아니었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에 담긴, 쓰고 싶지 않은 여러 마음을 읽다 보니,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책을 따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무작정 시작했다.


내가 쓰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어렵다.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에 위안을 얻으며 쓰고 싶지만 잘 써진 글을 보다가 내 글을 보면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이걸 어쩌나,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서 몇 번 읽어보다가 이내 고쳐쓰기를 포기한다. 도서관 서가마다 빼곡한 책들, 그 안의 더 빼곡한 문장들은 어쩌면 그리도 수려한지. 며칠 전 읽었던 소설집도 그랬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옅은 풍경화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문장에 감탄하고 은근히 질투도 났다. 질투는 경쟁할 수 있는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는데, 동경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쓰다 보면 잘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일까, 해보지도 않으면서 의구심이 생긴다.


2. 에너지를 아끼고 싶다.

사막에서 별을 본다거나 호주 울룰루에 가서 지구의 배꼽을 보는 것처럼, 종이로 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동시에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와 에너지를 쓸 만큼 가치 있는 글을 쓰지 못할 바에는 지구를 위해서라도 책을 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타닥이는데 필요한 전기도 아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3.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거다 싶어서 쓰다가 생각한 게 아니네 하고 지우다 보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노트북 화면 속 커서가 깜박이며 다음 글자를 재촉하는데, 키보드 위 손가락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 있다. 뭐라고 써야 한담, 백스페이스 키를 그만 누르고 싶다.


4.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변비에서 탈출한 것마냥 몸이 가볍고 훌훌 날아갈 것처럼 기쁘다. 문제는 쓰는 동안이다. 찌뿌둥한 머리와 떨떠름한 손가락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왜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을 애써 하고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이럴 때면 지피티나 제미나이가 부러워진다. 몇 초 사이에 여러 페이지의 글을 후루룩 뽑아내는 녀석, 게다가 나보다 훨씬 잘 쓰는 것 같다.


5. 잘 쓸 자신이 없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원하던 글이 아니어서 뒤통수를 긁적이는 중이다. 지금껏 고민하고 썼으니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말고 발행해도 된다는 생각과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서로 노려보고 있다. 역시 글쓰기는 어렵다. 잘 쓸 자신이 없다. 그래도 쓰다 보면 언젠가 나아질까? 쓰다 보니 정말로 좋아지는 게 맞았구나, 훗날 이 글을 보면서 웃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긍정회로를 움직여 본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어렵고 힘들지만 원래 글쓰기는 그런 것이니까 그냥 쓰자'가 되려고 한다. 쓰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 쓰는 것이 재미있고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왜 글쓰기가 힘든지 알게 되면 해결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는데, 쓰다 보니 그냥 써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못 썼다고 자책하지 말고, 나라도 내 글을 칭찬해 주면서 무턱대고 쓰기로 했다. 오늘도, 앞으로도. 지금은 어정쩡하지만 언젠가 마음에 드는 글을 쓸 테니까 괜찮다. 괜찮을 거다. 아하핫.



이미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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