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한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주변이 꽤나 시끌벅적한 듯했고, 시어머니는 짧은 안부 인사와 동시에 다양한 투자 질문을 속사포처럼 던지셨다.
시어머니는 그날 계모임에 갔는데, 거기서 며느리가 은행원이라는 얘기를 하니 여기저기서 금융 관련 질문이 쏟아졌고, 결국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그때 나는 식은땀이 나며 대충 머리를 굴려 어설픈 대답을 한 뒤, "자세한 건 가입한 은행이나 증권사에 가보시는 게 좋아요. 하하하…" 하고 웃으며 통화를 마쳤다. 머릿속은 빙글빙글 어지러웠지만, 그때는 웃음으로 포장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 맞다. 그 며느리가 나다. 나는 은행에서 무려 13년이나 몸담았던 전직 은행원이다.
이 경력을 공개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게 비슷하다. 와, 그럼 그 집은 자산 걱정 없겠네. 투자도 잘하고 돈도 엄청 잘 굴리겠지? 이런 식인데, 듣는 전직 은행원 손발 오그라드는 소리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투자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직 은행원을 투자 고수로 규정하고 굴리는 족족 플러스 수익을 내는 마이더스의 손일 거라 착각한다. ‘전직 은행원’이라는 착각의 근거를 제공한 나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몸 둘 바를 모른다. ‘괜히 말했어, 괜히 말했어. ‘
출처 Pixabay
은행원으로 일하면 남들보다 투자에 대한 시야가 살짝 더 넓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시야가 매번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주식 계좌는 빨간불(수익)과 파란불(손실)이 번갈아가며 춤을 추고 있다. 빨간불이 뜨면 "오, 오늘은 운이 좋네!" 싶지만, 파란불이 켜질 때는 "으악, 또 손실이야?"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파란불 손실이 언제쯤 빨간불 수익으로 바뀔지는 나도 모른다. 속으로 그저 중얼거린다.
'제발, 제발 이번 주에는 제발 좀… 오르자'
그래도 솔직히 사람들이 '은행원이니까 돈 잘 굴리겠지'라는 눈빛을 보낼 때면 묘하게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마치 내가 진짜로 투자 고수라도 된 듯한 느낌? 하지만 현실은. ‘글쎄, 내 통장 잔고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은행원이면 돈을 잘 굴릴 거라고 생각할까? 은행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돈에 대해 잘 알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금융 용어와 복잡한 수치를 다루다 보면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원은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자신의 돈을 성공적으로 투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은행 내에서는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성을 중시하는 금융 상품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투자에 필요한 도전 정신이나 모험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
사실, 나도 한때는 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이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 펀드에 가입했을 때 수익률이 꽤 괜찮아서 마치 내가 금융 천재라도 된 듯 뿌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플러스는 점점 줄어들었고, 급기야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순간이 왔다. 그때 깨달았다. 투자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내가 일하던 은행에서도 마법 같은 답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현실은 다르다.’
드라마 ‘머니게임’에서 주인공들이 경제 위기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에 부딪쳤을 때 나온 대사이다. 그 대사는 나에게 투자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그럼, 그럼 암요, 계획대로만 될 수는 없죠. 투자도 그런 거죠.' 예측은 계획을 자주 비웃기 마련이다.
결국, 현실은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다. 중요한 건 누구나 배우고,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에서 일하든, 길거리에서 투자를 배우든 말이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배움, 경험이다.
지금도 내 주식 계좌에 켜진 빨간불(수익)과 파란불(손실)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의 현실을 마주한다. 그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뀔 날을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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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 대해서 막연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미래 수익률을 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냐고요..^^ 휴...'남들의 착각을 와장창 무너지게 하는 나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