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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찬 Oct 28. 2023

환상적인 동화 속의 향, 구어망드

부드럽게 퍼지는, 달콤하고 바삭한

항상 글을 쓰는 카페로 향하던 도중 머리 위로 무언가 날아와 보송하게 머리 위에 얌전히 앉았다. 떼어내서 보니 연노랑색으로 변한 낙엽 한 장이었다. 조심스레 핸드폰의 케이스를 열어 낙엽을 넣고 다시 닫았다. 아마 이번 겨울까지는 책갈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듯싶었다.


가을, 한 두 달 전만 해도 푸릇하던 신록빛의 잎사귀들이 노을에 물들어 계절의 나무를 장식하고 들판에 펼쳐진 농작물이 황금빛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풍요로운 시간이다. 예로부터 가을은 수확을 대표하는 계절이 아니었던가. 적당히 서늘하면서도 마냥 춥지만은 않은 이 계절에 나는 항상 같은 길을 지나다니며 정취를 만끽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길 한복판에는 베이커리에서 고소한 향기가 부드러이 퍼져나온다. 늘상 지나치려고 하다가도 인심 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웃음과 퐁실퐁실한 생크림 빵의 맛이 잊혀지지를 않아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두 손에는 쿠키와 빵이 가득 들려 있다. 여름에는 있으면 먹고 아니면 말던 빵과 쿠키들이 가을만 되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다.


가을 말미쯤인 요즈음의 길거리에는 빵집뿐만 아니라 노점상들도 우후죽순 길거리에 생기곤 한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속담이 사람을 말에 빗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을만 되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찾고, 그러던 중에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은 누구에게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땅콩빵, 와플, 풀빵, 와플 등, 모두 유행에 반짝하고 사라진 혹은 사라질 간식들과는 비할 수 없을 전통의 강자들이다. 나 또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왼손을 움직여 땅콩빵을 하나씩 집어먹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고소, 달콤, 부드러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정도? 모든 빵을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라고는 해도, 우리가 기대하는 디저트는 분명 달콤함이 혀를 감싸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옛날 동화 속에서도 빵과 과자는 아주 매력적인 장치로 쓰여왔다. 그림 형제가 쓴 헨젤과 그레텔 -숲 속에 버려진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마녀의 과자집을 발견하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과자집을 먹다가 마녀에게 발견되어 헨젤이 갇히고, 그런 헨젤을 그레텔이 기지를 발휘하여 구해내어 마녀의 보물을 가지고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지에 전래되는 유명한 동화이다, 미국의 진저브레드 맨 -어느 노파가 구운 진저브레드 쿠키가 오븐에서 도망쳐 다른 사람들과 온갖 동물들이 생강빵을 잡으려 하지만 잡히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없어 여우의 도움을 받는 진저브레드 쿠키를 여우가 날름 먹어버리는- 이야기도 비슷하게 과자가 주된 장치로 등장하는 동화이며 이외에도 달콤함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인지 수많은 동화들에 과자, 설탕 등이 등장한다. 빵의 향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계절에 어렸을 때 종종 읽었던 동화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오늘의 글 주제는 이런 매력적인 디저트의 향, 구어망드Gourmand이다.


구어망드, 즉 미식가를 뜻하는 이 단어는 프랑스에서 온 말이다. ‘좋은 음식과 음료를 소비하는 데 큰 즐거움과 관심을 갖는 사람’을 뜻하는 이 말은 시간이 흘러 어느새 향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향조를 표현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고 구어망드가 아무 음식의 향이나 대표하는 말은 아니다. 향수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20세기 후반, 오리엔탈 향조의 하위 분야 중 하나로 표현되기 시작한 이 단어는 주로 초콜릿이나 빵, 사탕, 디저트 등 우리가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요리들의 향을 표현한다. 즉 달콤함이 없는 요리를 대표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구어망드 향이 뭔지 느끼고 싶다면 근처에 있는 빵집 환기구 앞에만 서도 무슨 느낌인지 알 수 있다. 향기만으로도 코 속에 고소한 곡물과 설탕의 달콤한 향이 섞여 ‘행복한 향’을 내고 있다.


최초의 구어망드 향수라고 평가받는 건 1992년 출시된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의 엔젤Angel이다. 예전에 한 번 시향해본 적이 있고, 달콤한 과일과 솜사탕, 그리고 캐러멜과 바닐라의 향이 난다. 가장 정석적이고 기초적인, 과일이 가미된 디저트 향.


후각으로 느끼는 디저트라고 불리는 구어망드 향수들 중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고 널리 쓰이는 향료들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디저트에서 가장 친숙하게 느끼는 건 바닐라일 것이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빵, 우리가 아는 모든 달콤한 디저트에는 바닐라가 첨가될 수 있고 위화감도 없다. 가장 기초적인 이 바닐라 향은 음식에서 부드러운 ’향‘을 더해준다. 특유의 풍미 또한 느껴지는데, 이 풍미가 바로 바닐라가 향신료로 쓰이게 된 이유이다. 물론 바닐라 자체로 느껴지는 단 맛은 없다. 우리가 혀로 느끼는 달콤함은 모두 설탕의 맛이지만, 후각적으로 느껴지는 바닐라의 향은 달고 부드러운 향을 가진다. 후각과 미각의 차이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바닐라는 포근하고 부드러우면서 무거운 향이다. 향조 상 분류는 구어망드보다 스파이스, 즉 향신료 쪽에 가까운 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온갖 곳에 불려다니는 것일까, 아마도 향수의 베이스 노트 중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향조들 중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그 존재감도 뚜렷해서 가을, 겨울에 어울린다는 향수 중 바닐라가 없는 걸 찾기가 더 힘들다. 제르조프Xerjoff의 리라Lira는 시트러스가 가미된 구어망드 향수이다. 시트러스 중 이렇게도 더위와 어울리지 않는 향도 없을 것이지만, 이렇게도 추위와 어울리는 향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바닐라가 들어가면 대다수의 어떤 향조라도 추운 날씨에 어울리게 변한다. 원래부터 낮은 온도에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럼이나 스웨이드, 토바코 등의 노트를 가진 톰 포드Tom Ford의 토바코 바닐Tobacco Vanille이나 바닐 파탈Vanille Fatale은 바닐라의 향미가 더해져 그보다 더 무겁고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완벽하게 추운 날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향수가 되었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바이 더 파이어플레이스By the Fireplace와 위스퍼 인 더 라이브러리Whispers in the Library에도 바닐라가 들어간다. 차이점이라면 바이 더 파이어플레이스는 구어망드로써의 바닐라를, 위스퍼 인 더 라이브러리는 스파이스로써의 바닐라를 강조했다는 점일까, 실제로 둘 다 시향해보면 전자는 바닐라의 풍미가 더해진 달콤하고 부드러운 밤 향이 메인, 후자는 나무의 향이 수식하는 바닐라의 향이 메인이다. 이 두 향수가 아마도 바닐라의 용도를 나타내는 예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카라멜, 캬라멜, 즉 캐러멜Caramel. 영어의 캐러멜은 프랑스어의 카라멜 혹은 스페인어의 카라멜로Caramelo에, 카라멜과 카라멜로는 라틴어의 카라멜루스Callamellus에, 카라멜루스는 옛 그리스어의 카라모스κάλαμος에 그 어원을 둔다고 알려져 있다. 쫄깃하고 달콤한 이 사탕은 가열을 통해 수분이 제거되며 갈변화되고 단 맛이 극대화되는 과정을 거쳐 우유나 기타 부산물을 더하면 우리가 아는 캐러멜이 된다. 소금을 더하면 솔티드 캐러멜, 사과 겉면에 끼얹어 굳히면 토피 애플, 커스터드 위에 설탕을 뿌리고 토치로 녹여 캐러멜 층을 만든 크렘 브륄레 등 어디에나 응용되고, 가장 보편적인 디저트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밀크 캐러멜에도 바닐라가 들어가며 그렇기 때문에 캐러멜 향은 바닐라가 들어간 향수에 덩달아 같이 쓰이고는 한다. 조금 독특하게도 니샤네의 테로Tero는 그런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캐러맬과 파출리의 조화가 더 강조되고 지나치게 달콤하진 않으며, 바닐라는 느껴지지 않는다. 러쉬의 렛 더 굿 타임즈 롤Let The Good Times Roll은 정반대로 코가 아릴 정도로 달달한 캐러멜 팝콘의 향이 난다. 여기서도 역시 바닐라 특유의 향을 느낄 수는 없다.


초콜릿은 카카오와 설탕, 우유 등이 섞인 디저트의 일종이다. 어원은 모두가 알다시피 스페인어 카카오Cacao일 테지만, 조금 더 파고들어 보면 아즈텍어로 쓴 물이라는 뜻의 쇼콜라틀Xocolatl이 되겠다.

카카오매스를 생으로 맛보면 (맛만 봤다. 먹을 수가 없다) 왜 아즈텍에서 쇼콜라틀이라고 불렀는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무슨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대형 마트에서 99% 함량의 다크초콜릿을 한 입 맛보기를 권장한다. 때문에 당시에는 물에 섞어 마시던 카카오는 유럽으로 넘어오면서 설탕이 더해져 핫초코의 형태로 퍼져 전래되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카카오버터를 만드는 기술을 발견했고, 1876년 스위스에서 지금의 네슬레Nestle 사의 창립자인 다니엘 페터와 앙리 네슬레가 최초의 밀크 초콜릿을 개발하며 시장에 과자 형태의 초콜릿이 퍼지게 된다. 이후 허쉬, 페레로 로쉐, 마스 등 수많은 기업들이 초콜릿 제조에 뛰어들어 현재까지도 스니커즈, 키세스, 페레로 로쉐 등 수많은 초콜릿을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초콜릿도 캐러멜처럼 바닐라가 사용된다, 그렇지 않은 다크 초콜릿도 있다. 그래서 향료로써의 초콜릿은 바닐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까지는 아니다. 바닐라와 함께 사용된 초콜릿 향조는 대부분 구어망드로, 그렇지 않은 초콜릿(카카오) 항조는 스파이스로 느껴진다.

킬리안의 느와 아프로디지악Noir Aphrodisiaque이나 블랙 팬텀Black Phantom은 달콤하다, 그리고 무겁다. 두 가지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느와 아프로디지악은 씁쓸하면서 관능적인 느낌을, 블랙 팬텀은 달콤하고 찐득한 느낌을 준다. 노트의 차이이겠지만 두 향수의 초콜릿이 유사하면서도 그 안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는 건 독특하게 다가온다. 마인드 게임Mind Games이라는 회사는 2022년에 더블 어택Double Attack을 출시했고, 분명 카카오가 아니라 초콜릿으로써의 정제된 향이 나는데 카카오만큼의 신선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신선하고 매콤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조금 독특한 향조가 있는데, 대추야자Date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대추라고 하면 삼계탕, 약밥, 차 등 전통적인 음식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대추야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추와는 다른 맛이다. 대추처럼 생겼고 퍼석한 식감까지는 얼추 비슷하지만, 혀가 아릴 정도로 달다는 게 차이점이다. 사막 지방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이 대추야자는 거의 대다수의 식물이 그렇듯이 현대에 와서는 향료로써 쓰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추야자를 음식에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을 서구권(서아시아가 아닌 서유럽권)에서 만들어지는 향수가 현대 향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대추를 향수로 만나보기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편견이었다는 건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루이비통Louis Vuitton, 한국에서 그 인지도가 타 브랜드와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높은 명품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그런 브랜드에서 올해 여름에 출시한 향수 퍼시픽 칠Pacific Chill은 브랜드의 인기를 반증하듯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시트러스 향수 중에서도 달콤함이 부각되는 퍼시픽 칠은 베이스 노트에 흔히 쓰이는 머스크나 우디 향조를 메인으로 사용하는 대신 대추야자와 무화과를 사용했다. 암브레트(머스크 향조)도 있었지만 잔향에서 포근함 대신 달콤함이 더 큰 존재감으로 맴돌았기 때문에 아마도 비중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사막을 표현하기 위한 향수나 아예 사막에 위치한 서아시아의 향수들은 대추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어크로스 샌즈Across Sands는 프랑스 회사에서 만든 향수지만 ’모래를 건너‘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아시아권에서 친숙한 향조를 주로 사용해서 만든 향수이다. 대추야자와 오우드(우드)향이 물씬 흐르면 달콤하면서도 사막 특유의 향신료 느낌이 풍겨오는 듯하다. 대추야자가 넘쳐나는 현지에는 수많은 향료 가게가 있는데, 그곳에서 만들어주는 향수들은 상상 이상으로 긴 지속력을 자랑한다. 내 몸에 뿌리기는 조금, 아니 많이 부담스럽지만 하나 가지고 있기도 하다. 브랜드는 없지만 향을 표현하는 향수로써의 목적이라면 아마 이것보다 더 ‘향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말은 없지 않을까.


구어망드, 사실 구어망드라는 향조의 분류 자체는 가공하여 만들어진 디저트류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범위가 넓다. 말린 과일, 꿀, 생크림, 솜사탕에 빵, 도넛 전부 그런 향이 난다면 구어망드 향수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예시로 든 향수들은 구어망드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진짜 식향을 가진 구어망드 매니아들의 코를 만족시켜 줄 향수 또한 얼마든지 시장에 넘치게 출시되고 있다.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의 클라우드Cloud도 솜사탕처럼 달콤한 향을 가지고 있고, 조 말론의 진저 비스킷Ginger Biscuit은 로투스 향을 생생하게 구현해내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서도 구어망드 향수들은 사실 향수 시장에서 좋은 취급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먹고 싶게 하는 느낌이 드는 향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내게 그 향이 난다면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식욕을 돋게 하는 향’과 ‘내게서 나는 향’,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나는 진저 비스킷을 먹고 싶은 거지 내가 진저 비스킷이 되어서 먹히고 싶은 게 아니니까. 평론가들은 구어망드 향을 종종 가볍고 장난스러운 향 정도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구어망드 향조가 섞인 향 중에는 명성 높은 향들이 많지만, 본격적으로 음식 자체를 표현한 향 중에는 이렇다 할 만한 유명세를 떨치는 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동화를 보면서 자라온다. 성인이 된 지금도 동화 속 세계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속은 기괴하고, 헨젤과 그레텔 속 마녀의 최후는 끔찍하다. 숲 속의 공주를 잠들게 만든 마녀의 악의는 어린아이들에게 친근하지 않은 종류의 것이며, 백설공주의 새어머니인 왕비의 악의도 그렇다.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며 그 기원은 인간의 과오와 고통에 뿌리를 둔다. 현대에 와서 어린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을 위해 내용을 바꿀 때에야 현실의 무게를 덜어내어 환상적인 이야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옛 동화들을 읽고 있자면 분명 신비하고 유쾌하면서도 교훈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기묘한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간극을 메워주는 극 속의 장치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 예를 들자면 과자집이나 설탕요정이다. 아이들은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의 죽음보다는 과자집에 이끌리고, 진저브레드 맨은 잡아먹히지만 한낱 과자가 사람들을 놀리면서 도망가다 잡혀 먹힌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과자는 현실의 잔혹함을 숨겨주는 일종의 장치이다.


현실의 삶은 제각각 다르지만 한 발짝 잘못 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외길을 걷고 있다는 건 똑같다. 그 길의 넓이가 넓은지, 좁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런 현실의 잔혹함을 잔혹동화가 어린아이를 위한 소소한 이야기처럼 느끼는 방법일 것이다. 결국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옆이 아닌 앞만 보도록.

동화 속의 과자집이 그렇듯 우리 또한 달콤한 과자의 향이 나는 향수로 조금 가려보는 것은 어떨까? 달콤한 진저브레드 쿠키의 향을 맡고 있다 보면 그때만큼은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메르헨 판타지 속 주인공이 된 듯 기분 좋은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


글을 마치고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여덟 시 반, 늦다면 늦고 이르다면 이를 시간이다.

아까 떨어진 나뭇잎에 나는 내가 가진 진저브레드의 향을 톡톡 뿌려준다. 펼쳐놨던 동화책에 끼워놓고 이제 나갈 생각이다. 풍요롭고 기분 좋은 만족감을 선사해주는 가을의 이 순간만큼은 온전한 계절을 만끽하도록 공원에 다녀올 것이다. 돌아와서 내일이 되기 전에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나뭇잎과 함께 편안한 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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