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찬 May 20. 2024

Bottega Veneta XV : Salvia Blu

5월 20일, 맑은 날씨에 어울리는 향

XV : Salvia Blu, 우리말로 번역하면 [15 : 푸른 샐비어]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파르코 팔라디아노 XV 샐비어 블루(Parco Palladiano XV Salvia Blu)는 대조 사이의 고양과 공생의 향기입니다. 신선함과 따뜻함, 새벽의 이슬 맺힌 빛과 완전한 아침 햇살 사이에서 나옵니다. 각 성분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는 설명문을 내걸고 판매되었다. 지금은 아쉽게도 국내에선 만나보기 어려운 편이다.


어떤 향일까.


탑 노트에서는 배의 물기 어린 프루티함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찐득하게 아삭이고 달콤한 배와는 달리 조금은 풋풋하고 가벼운 서양 배의 향이다. 배가 만들어낸 드넓고 신선한 분위기 사이로 세이지와 라벤더 향이 바람을 타듯 가벼이 흘러들어온다. 라벤더의 아로마틱한 향이 세이지의 향과 어우러져 색다른 라벤더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요하면서 보라색에 가까운 짙푸른 새벽의 향처럼 신선하고 정적인 향이다.


미들 노트에서부터 배에 가려져있던 청사과의 향이 은은히 퍼져오기 시작한다. 아삭한 과즙의 향이 탑 노트의 새벽바람처럼 신선한 세이지, 라벤더 향과 만나면서 향에 생동감을 더해간다. 배의 향이 고요하고 물기 어린 새벽이었다면, 청사과의 향은 동이 터 오며 밝아지는 시간의 생동감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옅게 느껴지는 프리지아의 향이 미들 노트 전체를 은은하면서도 기분 좋은 플로럴함을 가지게 만들며 청사과 향과 섞여 향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구석구석 꾸며내는 듯 보인다.


점점 향 전체에 깔려 있던 Iso E Super 향이 마지막까지 배와 사과의 모습을 하고 향의 마지막을 장식할 준비를 한다. 옅게 느껴지는 제비꽃 같은 보랏빛 플로럴 향과 배의 물기가 향의 끝까지 함께하고, 사과 향이 여전히 생동감 넘치게 느껴진다. 다만 제비꽃 향이 세이지, 라벤더와 섞여 신선하기만 했던 허브 향 속에 조금 더 무게감을 더해주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새벽과 아침 사이, 동 튼 직후의 시간을 그려내며 향이 천천히 마무리된다.


내가 생각하는.


보테가 베네타에서 내놓은 파르코 팔라디아노 컬렉션, 브랜드의 시그니처 패턴인 인트레치아토 패턴이 병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이 컬렉션 중 샐비어 블루는 15번째 즉 마지막으로 출시된 막내 향이다. 이 이후에 보테가 베네타는 향수 사업을 전체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더 이상의 파르코 팔라디아노 컬렉션의 신작은 커녕 남아있는 향들마저 서서히 단종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건축물과 정원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이 컬렉션,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받고 있는 살비아 블루는 어떤 향일까? 라는 의문에서 시도해본 시향이었다.


출처 Copilot AI, 수채화로 그린 듯 잔잔한 향이다.


15 : 샐비어 블루는 공식적으로는 우디, 플로럴, 그리고 머스크 향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해 본 이후 느낌이 조금 달랐다. 우디도 머스크도 분명 있지만 이 향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플로럴과 프루티 노트들이었다. 다른 노트들이 향이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면 서양 배와 라벤더의 향은 다른 향들의 도움을 받아 향 전체를 가득 채우는 메인 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온도감 낮은 라벤더의 그리너리한 매스큘린함이 워터리하고 달콤한 서양 배의 향과 만나 브랜드의 홍보 문구에 걸맞는 '아침 햇살과 새벽의 어스름 그 사이 어딘가'처럼 느껴진다. 넓게 펼쳐진 고요한 과일 정원에서 새벽 바람을 맞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출처 Copilot AI. 연보랏빛 하늘 아래 맞는 바람의 향기.


향의 밸런스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라벤더의 매스큘린함은 다른 플로럴 노트들로 줄어들고, 배와 사과의 향이 너무 달콤하지 않도록 세이지와 그리너리 노트, 우디 노트들이 제자리에서 뿌리내리고 있다. 새벽 정원의 합주처럼 살비아 블루의 향이 기분 좋고 나른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단점이라면 역시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는 Iso E Super의 향,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느껴질 수 있는 '샴푸' 향기일 것이다. 왠지 모르게 너무 더운 날이나 꽉 막힌 공간에선 향의 장점인 프루티 플로럴이 축 쳐지는 듯 내려앉아 그저 그런 흔한 샴푸 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인공 노트는 말할 게 있을까, 밸런스를 잘 잡아주지만 이상하게도 거슬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듯하다. 다만 향의 온도감이 원체 서늘한 축에 가까우며, 햇빛이 적은 시간대에 착용하고 나가 본다면 굉장히 기분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혹시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꼭, 시향해보기를 권한다.


20대 초반 - 20대 후반에게 조금 더 추천하고 싶은 향수이다. 캐주얼이나 스트릿 룩보다는 차분한 느낌의 세팅이 어울리는 편.

작가의 이전글 환상적인 동화 속의 향, 구어망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