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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셀나무 Feb 23. 2024

주부가 되면 음식솜씨가 저절로 좋아지는 줄 알았어.

누가 했냐고? 내가 만든 거야!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주부가 되면 음식솜씨가 좋아지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어릴 적 바라본 엄마는 육해공 상관없이 다양한 재료를 거침없이 손질하시며 뚝딱뚝딱 환상적인 음식을  매 끼니마다 만들어 내시는 당당한 일류 요리사셨다. 맛은 또 얼마나 기가막힌지 식사시간이 되면 상이 차려지기도 전에  미어캣이 되어 빨리 밥상에 앉아 숟가락을 든 체 얼른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와 같은 맛깔난 음식솜씨를 내 몸에 장착하고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으면서 말이다.  



              

6남매 중 넷째 막내딸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요리고수 엄마를 비롯해 위로 줄줄이 3명의 언니들 서열에 밀려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던 시절을 지냈다.

 6남매를 키우는  엄마의 가장 큰 역할은 일단 먹이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언제든지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간편하게 장을 볼 수 있는 시대는 더더욱 아니었던 그야말로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시절. 항상 매 끼니 시장에서 장을 봐오시고 8명분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던 엄마는 새벽녘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저녁 식사까지  부엌에서 요리장인의 긴 하루를 마무리하셨다. 어릴 땐 왜 이렇게 요리하는 게 재밌어 보이던지. 썰고 볶고 졸이고 끓이며 각각의 재료들이 서로 엉기어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되는 과정들이 과학실험 하는 것 마냥 흥미로워 보였다. 호기심에 늘 기웃기웃 한 과정에라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할당은 늘 상 닦고 짝만 맞추면 되는 난이도 최하 수저 놓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쯤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웬일인지 엄마도 언니들도 없고 아버지와 나만 있었던 어느 날 오후. 출출하셨던 아버지는 나에게 라면을  끓여 오라고 지시하셨고 생전 처음으로 불 쓰는 음식 임무를 부여받은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라면요리를 시작했다. 분명 봉투에 조리법이 설명되어 있었겠지만 모처럼의 기회에 흥분했던 나는 찬물에 라면을 넣고 같이 끓이는 (어깨너머로 봐왔던 찌개 만드는 법을 생각하며 ) 방법을 선택했고 거의  라면한강죽이 된 음식을 아버지 앞에 당당히 가져다 드렸다. 라면 상태를 보고 아버지는 흠칫 놀라신 듯했다. 분명 허기진다고  하셨던 분이 숟가락으로 몇 번 드시더니 배부르다고 하시며  밥상을 멀리 밀어내시고 황급히 나가셨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로부터 더 이상 그 어떤 지령도 받지 못했다. 야심만만 기대에 부풀었던 나의 첫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고 그 이후부턴 점점 더 부엌과 멀어지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새댁이 된 나는 식사를 온전히 내 힘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두려웠다.

“ 엄마, 고등어조림은 양념을 어떻게 하지?”

“ 물을 자작하게 붓고 갖은양념을 버무려서......”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레시피는 너무 어려웠다.

자작하게? 갖은양념?  당시엔 지금처럼 유튜브영상도 없고 네이버 레시피의 도움도 받기 어려웠던 시절이니 음식만 하려고 하면 무조건 친정엄마 찬스 아니면 요리책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처음 내 살림을 하는 기대감도 있고 소꿉장난하듯 이리저리 만들어보는 재미도 있어서 각종 반찬과 찌개며 수제비와 식혜에 두부까지도 만들어 먹곤 했다. 시간을 들여 나름 신경 써서 준비한 밥상을 차리며  어떤 감탄이 나올까 기대하며 남편을 쳐다보지만 미슐랭맛집을 심사숙고하며 평가하는 미식가처럼 까다로운 입맛을 갖고 있는 남편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이 한마디였다.

“먹을만하네”    



      

왜 이렇게 간 맞추는 게 어려울까?

 음식맛의 8할은 간 맞추는 거라는데 간을 못 맞추니 음식을 하는 일에 더욱 소심해졌다. 게다가 엄마의 음식솜씨 우량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데다 배려심이 넘쳐나는  언니들이  밑반찬을 수시로 공급해 주는 바람에 더더욱 요리를 할 필요가 없어졌고 관심도 멀어져 갔다. 그런데 남편과 아이는 식사를 하며 꼭 반찬의 출처를 확인했다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잊지도 않고  성실하게 물어볼 때마다 매번 엄마가 또는 언니가 라고 대답하는 것도 언제부터인지 자존심 상하고 위축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난 엄마음식에 대한 추억이 많다.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하신 적은 없지만 엄마의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난 충분히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기꺼이 감수하신 수고의 음식을 먹으며 매 끼니마다 차곡차곡 엄마의 사랑을 내 몸과 마음에 채워 넣으며 살아왔다. 친정 엄마는 돌아가셔서 더 이상 엄마음식은 먹을 수 없지만 엄마음식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기만 해도 그 시절 사랑받음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기억을 갖게 해 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가장 기억나는 엄마의 음식은 뭔가요?라는 질문을 우리 아이들에게 했을 때 순간 떠오르는 음식이 없어 오래오래 고민하면 어떡하지?  음식 못하는 이유는 이제 그만 찾고  음식을 잘하고 싶은 이유를 찾아봐야겠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주부인 나는 음식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며   자기 효능감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나만의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내 힘으로 밥상을 차려야겠다. 그러려면 일단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봐야 하겠지?

여전히 반찬 도움도 받고 배달음식도 먹지만 그래도   엄마표 음식에 자주 도전하며 자립밥상을 이뤄나가고 있는 중이다.



하나, 둘씩 만들어보는 음식들.


 

이런 결심을 가능하게 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  계셔서 참 다행이다. 언제든지 눈치 보지 않고  몇 번이고 찾아봐도  자상하게 알려주시는  든든한  유튜브 속 요리 선생님들께 감사인사를 전한다.

슈가보이 백종원 님, 편스토랑 류수영 님, 회장님 댁 김수미 님......    



           

주방은 정말이지 끝내주는 놀이터다.

뭐든 실험하고 즐기며 한계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뭐 큰일이야 벌어지겠는가?

맛이 뭣 같다고 해도

먹어 치워 버리면 그만이다.

ㅡ 바버라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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