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만 몰랐을지도
지난주였나, 지지난주였나...
저녁을 먹고 난 뒤 주방에서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
"이든아, 너 아파트 노래 알아?"
이 양반이 우리 아들을 어떻게 보고. 아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아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도대체 어디가?) 모성애가 흘러넘치는 엄마는 말을 받았다.
"여보, 이든이가 야구장 간 것만 해도 몇 번인데. 우리가 야구장에서 그 노래를 얼마나 불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남편의 표정이 조금 변하는 것도 같았지만 이미 나에게 빠져있었기에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빰빰빠~~ 암~ 빠라빠빠빠~~ 암~빠라빠빠빠~~ 암 밤 밤빠 빠라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으쌰라으쌰 으쌰라으쌰) -어깨동무 추임새도 빠질 수 없지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으쌰라으쌰 으쌰라으쌰)
언제나 나를 (호우호우) 언제나 나를 (호우호우)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으쌰라으쌰 으쌰라으쌰)
..." (네 맞습니다. 상상하시는 그대로 춤을 추며 신나게 불렀습니다)
내가 아파트이고 아파트가 나인 듯 물아일체가 되어 신이 나서 급 흥분상태로 노래를 불렀다.
잠깐만요... 여보, 왜 가만히 있는 거야? 같이 해야지?
같이 신이 나야 할 남편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큰소리로 웃는데 뭔가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기도 하고.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아귀한테 밑에서 한 장 주는 대신, 눈보다 빠르게 손동작을 멈추었다.
"아~~~ 옛날 사람, 옛날 사람. 아~~ 부끄러워."
남편은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몸서리를 쳤다.
저... 기... 왜 그러시는데요? 뭐가 문제인가요?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로제를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블랙핑크의 로제. 마! 내가 그 정도는 안다!
브루노 마스를 아냐고? 알다마다요! 심지어 좋아합니다만...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아파트라는 노래를 불렀다나... 그게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다나...
언제?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자기들끼리만?
남편은 오늘 후배가 아파트 노래를 아느냐고 물어서 당연하지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냐며...
하하하 부부는 일심동체입니다. 우리가 아파트 노래를 좀 좋아하그든요.
그걸 그대로 나한테 해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든이에게 한 질문을 중간에 가로채서 스스로 덫에 걸려버렸다.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아무리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가 좋아도 나에게 아파트는 별빛이 흐르는 아파트다. 암 그렇고말고.
그런데...
저만 몰랐던 거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