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분류해보기
올해 개인적인 목표 중 하나가 책 100권 읽기였는데, 12월이 오기도 전에 달성하게 됐다.
생각보다 쉬워서 놀랍기도 하고, 올해 잘 보냈구나 싶어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읽다보니 속도도 붙고 나름대로 책 읽는 뇌로 전환되는 느낌까지 있더라.
그런데 궁금해졌다.
내가 읽은 책들은 어떤 책이었을까?
오늘은 도서관 KDC 6판 분류대로 올해 내가 읽은 책을 분류해보고자 한다.
(KDC란 한국십진분류법을 뜻하며 도서를 주제별로 10가지 분류하여 이용의 편리를 꾀하는 방식이다. 서양의 듀이십진분류법을 한국의 실정에 따라 변형시킨 버전이기도 하다.)
먼저 000번대.
총류라고 부르고, 보통 초록색 띠지를 두르게 된다.
도서관이나 컴퓨터와 관련한 책들이 이곳에 분류되는데 이용률이 높은 편은 아니다.
딱 한 권 읽었군.
'북큐레이션'이란 책이었는데, 아마 도서전시회 운영 전에 학생들에게 참고해서 알려줄 만한 내용이 있나 싶어서 읽었던 것 같다.
다음 100번대.
새빨간 색이다.
철학인데, 단순 철학 외에도 심리학이라던가 신비한 체험 등등은 이곳에 분류되는 듯 하다.
2권을 읽었는데,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과 '미래를 예언하는 레노먼드 카드'였다.
참고로 분류가 애매한 책의 경우 KOLIS_NET(국가자료종합목록)에서 일종의 다수결에 따랐다.
200번대는 종교서적이 있는 곳이다.
보통 회색 띠지를 두른다.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나마 작년엔가는 불교서적을 한 권쯤 읽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종교책은 학교도서관 내에서도 이용률이 가장 떨어지는 도서이니 그러려니 한다. 주제별 권장비율에 따르면 종교책을 3% 소장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게 과연 맞는 수치인가 의문이긴 하다. 실제로 우리 도서관은 전체 장서의 약 1%정도가 종교서적이다.
300번대는 사회과학.
주황색 띠지를 두른다. 각종 사회학을 비롯하여 경제학, 경영학, 교육학, 법학 등이 모두 이곳에 포함된다. 도서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제분류가 문학이라면, 그다음 순위는 어지간하면 사회과학이 차지하게 된다. 일반 교양서가 워낙 활발하게 나오는 분야라서 그런듯 싶다.
그나마 유의미한 통계가 나올만큼 읽었다.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들', '공정하다는 착각'을 비롯하여 총 11권 읽었다. 현재 독후기록이 108건이므로 약 10%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두번째 지구는 없다'인데, 실제 타일러의 강연을 참관할 기회가 생겨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400번대는 자연과학이다. (글자색 중 갈색이 없어서 슬프다)
자연과학은 갈색띠지를 두르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물화생지에 덧붙여 수학이 이곳에 분류된다. 그외에도 식물, 동물과 관련한 것들이 포함된다. 여기서 TMI를 풀어보자면 각종 분류학은 실용학문으로 발달하면서 그 나름의 체계를 갖추게 되는데 학문의 발달순서나 중요도를 매겨 '분류순서'를 정하고는 한다. 자연과학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분류는 수학이다. 자연과학의 꽃은 수학이라 그렇다. 반대로 사회과학에서 첫 번째 분류는 통계자료이다. 둘의 차이가 극명하면서도 재미있다.(여기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내가 도서관에 찌들었기 때문이다. 학부생때는 재미없어했던 기억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 '걱정많은 어른들을 위한 화학 이야기' 등 총 5권을 읽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둘을 꼽을 수 있는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다'이다. 앞선 책은 워낙에 추천이 많아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건데? 하는 심경이었다가 후반부에 이야기가 종합되면서 짜릿함을 느꼈던 책이다. 과학책 주제에 말이다.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명왕성 킬러의 책은 딱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이었다.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흥미롭고, 내가 접해보지 못한 분야의 직업인 에세이를 읽는 맛이었다. 올해의 베스트에 넣고 싶은 책들이었다.
500번대는 기술과학이다.
심경적으로는 온갖 잡다한 분야가 다 포함된다는 느낌이다. 하늘색 띠지를 두르는데 그야말로 하늘처럼 포용적인 분류번호라 할 수 있겠다. 의학을 시작으로 농업, 건축, 기계, 전기, 제조, 생활과학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서 생활과학이 포인트인데, 요리책을 비롯해 인테리어, 뜨개질, 육아, 패션 등을 모두 포괄한다. (학창시절 가정 과목을 생각하면 쉽겠다) 그말은 즉슨 미묘하게 낑기는 서가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서가로 오시는 분들은 보통 한 번에 여러 권을 빌려간다...
TMI를 좋아하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 진 모르겠는데 일단 생각나는 대로 풀어보겠다. 분류체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미묘한 중복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건축은 610 건축예술과 540 건축학으로 나뉘어 있어 어느쪽에 분류해야할 지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큰 도서관쯤 되면 600번대 서가와 500번대 서가가 저멀리 떨어져있을 수 있다. 어쩌면 다른 층에 배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건축 책을 보러 왔는데 원하는 책을 찾으러 한 층을 오르내려야 한다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건강에는 좋을지도...) 하여튼 그리하여 건축은 540번대로 통일하고, 610번대는 공기호가 되었다. 물론 이전에 분류한 책은 그대로 둔다는 도서관계의 '국룰'이 있는지라 불편함은 여전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논리적 오류는 제거한 셈이다...
TMI라는 말은 참 대단하다. 쓸데없는 정보일수록 길다. 단어 그 자체가 진리를 품고 있다니... 하여튼 올해 나는 기술과학 책을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등 8권을 읽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책을 꼽으라면 '밥 챙겨먹어요, 행복하세요'라는 책이었다. 트위터에서 이미 몇 번 봤던 요리레시피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것 같아서 읽어봤다. 요리마다 맞춤 술을 추천하는 센스가 대단했다... 요리의 난이도가 쉬워서 나같은 게으름뱅이에게도 이정도는...? 하는 기분을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멋졌다.
600번대는 예술이다.
노오란 띠지를 두르고 있는데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 곳이긴 하다. 앞서 말했듯이 공기호로 시작되며 조각, 공예, 서예, 회화 등을 포괄한다. 특이점으로는 오락 및 스포츠도 이곳에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전에 남학교에서 근무할때는 일부러 스포츠 책을 신경써서 구입하고는 했다. 운동부 친구들에게 어떻게든 독서를 시키려는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는데 그나마 관련 도서는 읽지 않을까 해서였다. 정말로 해당 분야의 책을 쭉쭉 독파하는 친구가 있었다. 운동하면서 공부도 놓지 않는 친구라던데 어찌나 기특하던지!(다만 운동부 친구들은 다똑같이 빡빡머리에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1년 넘게 얼굴을 구분하지 못했다...)
뭔가 읽긴 했으려나 싶었는데 용케 세 권이나 읽었다. 신기하니 제목을 다 써놓겠다. '인생 보드게임', '마법의 디자인', '당신은 사건 현장에 있습니다'라는 책이었다. 마지막 책은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어찌나 재밌게 읽던지... 말릴까 말까 고민을 좀 했던 책이기도 했다.
700번대는 언어이다.
연두색 띠지에 보통 제일 구석에 비치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외국어 원서를 포함하는데, 이런 책은 정말 읽는 사람만 읽기 때문에 별도배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종 언어학부터 외국어 서적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체감상 100번대와 비슷하게 인기가 없다. 나는 올해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등 3권의 책을 읽었다.
대망의 800번대다.
진한 남색띠지에 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문학! 도서관 좀 다녔다 하는 사람이라면 외우게 된다는 마법의 숫자 813.6(혹은 813.7)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워낙 양이 많다보니 사람들은 도서관 책의 절반정도는 문학책이 아닐까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또 막상 그정도로 많지는 않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약 3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권장비율보다 무려 11%나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요구가 가장 많은데...
무려 57권을 읽었다. 전체 108권중에 무려 52%를 차지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골고루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를 따져보니 전혀 아니었다! 이래서 통계자료가 중요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에세이부터 장르소설, 고전문학, 시집 등을 최대한 다양하게 읽었다는 것인데... 내가 그림책을 따로 분류해놨다는걸 생각하면 이조차 머쓱해지기는 한다. 추천을 겸하여 읽은 책 중에 좋았던 것을 단순 나열해보겠다.
- 배움의 발견
- 오베라는 남자
- 리스본행 야간열차
- 고르고르 인생관
- 페인트
- 용의자 X의 헌신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아무튼, 떡볶이
- 세상의 긑과 부재중 통화
- 스타피시
-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 종의 기원담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개인적으로 올해는 주머니시를 이벤트용으로 구입해서 많이 읽어봤는데, 어지간한 시집보다 좋았다. 담배갑 사이즈의 작은 종이갑에 명함사이즈의 시가 20편 담겨있다. 한 편씩 나눠주기에도 좋고 책갈피로 쓰기에 딱이다. 개인적 추천으로는 '내가 아는 모든 겨울을 여기 적는다'와 '당신에게서 다 자란 개냄새가 나'가 좋았다. 다른 주머니시에 비해 읽기 편하고 로맨틱한 시가 많았다.
벌써 900번대다.
마지막 분류번호이자 보라색 띠지를 두르는 친구들. 역사 외에도 지리책이나 전기서 등을 포괄하고 있다. 분류하기 애매했지만 '매거진 B - 발리'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었다. 사실 매거진 B는 ISSN을 받는 정기간행물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KDC 분류대상이 아니지만 주제별로 낱권 수서하였으므로 그냥 주제분류를 넣었다... 각 도서관마다 분류가 다른 이유는 각각이 나름대로 도서관 실정에 맞게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앞서 한 분류에 따라갈 확률이 높다. 그런 결과물들이 모여서 그 도서관만의 분류체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따로 모아봤다. 그림책이야 너무 빨리 읽으니 독후기록에 쳐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한데 나름대로 기록해두고 싶은 추천도서만 적었으니 이해하길 바란다. 사실 나는 웹소설이나 만화책도 엄청나게 읽는 사람인데 양심적으로 이건 포함 안 했으니 나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총 16권(14%)인데 모두 추천하고 싶으니 양해바란다.
- 부끄럼쟁이 꼬마 유령
- 우리 같이 앉을래?
- 적당한 거리
- 오리건의 여행
- 올빼미 기사
- 우리집 고양이
- 별이 빛나는 밤
- 밤을 달리는 고양이
- 일등석 기차여행
- 네모
- 돌섬, 바다의 노래
- 어린 곰의 아침 식사
- 가을에게, 봄에게
- 내 고양이는 말이야
- 귀여운 것들이 우리를 구원해줄거야(이건 800번대에 분류할지 말지 꽤 고민했다)
- 오렌지색 여우 페리보
결과를 종합해보자면 내 취향은 문학/그림책을 위주로 읽으면서 다양한 분야를 찍먹하는 독서가라고 할 수 있겠다. 100권 읽기 목표를 채우느라 쉬운 책에 시선이 많이 간 것은 사실이므로 내년에는 벽돌책 도장깨기를 시도할지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만들지 고민중이다.
요즈음에는 나 자신에게 꼭 맞는 잇템찾기가 중요하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 일단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만, 지금까지의 내 취향 역사를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도 있는 듯 싶다. 그러려면 일단 독서기록부터 남겨야 할텐데... 심플하게 쓸 수 있는 독서어플이 많으니, 이번 기회에 한번 체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나는 '북적북적'이라는 어플을 썼다. 한 해동안 읽은 책을 세로로 높이 쌓아 센티미터로 변환해서 알려주기도 하는 어플이다. 나는... 고작 124.71cm의 책탑을 쌓았다. 내 키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니, 나도 앞으로 발전할 길이 무궁무진한 셈이다.
- 요약 -
000 총류 1권
100 철학 2권
200 종교 -
300 사회과학 11권
400 자연과학 5권
500 기술과학 8권
600 예술 3권
700 언어 3권
800 문학 57권
900 역사 2권
그림책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