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무학교 학습일지
5월 12일, 무주 토종과일나무학교의 세 번째 인터넷 강의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강화에서 고성까지 - 통일을 준비하는 토종 조사>, 강사는 씨앗도서관 협의회의 박영재 선생님입니다. 박 선생님은 작년에 김포 도시농부학교에서, 그리고 금년 초에 겨울농사학교에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 번째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씨앗 강의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이번에는 토종과일나무가 주요 주제이니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2018년 한반도 토종벼 남북교류협력위원회에 참여하여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에 대한 토종씨앗의 수집 조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접경지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도를 소개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서해의 강화도에서 동해의 고성군에 이르기까지 넓지 않은 지역이지만 이곳에 한반도의 모든 기후 유형이 전부 나타난다고 합니다. 광화군 부근은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가 보이고, 고성군 지역은 동해안의 해양성 기후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은 내륙형 기후지역 입니다. 이곳은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8도, 겨울에는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반면에 동해안의 고성 지역은 1월 평균이 영하 2도 정도이며, 서해안의 강화군은 영하 7도입니다. 비무장 지대 접경지역은 이렇게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니 식물의 식생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이 접경지역은 또 한반도 지질학의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지질 유형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철원평야가 있는 철원군은 그 위에 있는 평강군의 오리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려 거대한 대지가 형성된 곳입니다. 이곳으로 흘러온 용암은 다시 파주까지 흘러갈 정도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질학적으로도 특이하고, 지층도 다양합니다.
선생님의 조사에 따르면, 강화도 지역에는 북한 황해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으나 다른 접경지역에는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의외로 적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온 전통씨앗이나 독특한 작물은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공주 마곡사 등 10 승지에 해당하는 지역의 화전민 촌에 함경도 등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접경지역은 70, 80년도에 현지 토착민들 소개 작전(청야작전)에 의해서 기존 마을을 폐쇄하고 남쪽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곳은 그 흔적으로 마을이 있던 자리에 과일나무들이 야생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저도 고성에서 군생활을 할 때 가끔 전방에 투입되어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숲 속에서 벌레가 많은 복숭아나 자두를 따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이 없어진 마을 터였던 모양입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서 비무장 지대를 평화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자연 속에서 자라는 수많은 토종과일나무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토종 조사와 관련하여 선생님은 좋은 자료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어떤 지역을 조사할 때는 그 지역의 군지나 면지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파주 군지, 연천 군지, 고성 군지를 보면 그 지역에서 재배된 작물이나 과일나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각 군청이나 면사무소 문화관광과에서 발간한 지방지에 소개된 현지의 음식문화나 생활권, 시장, 혹은 지명 등을 통해서 다양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해야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의 군청을 방문할 때는 꼭 이런 자료를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사는 지역의 전통음식에 관심이 많은데 정말 좋은 정보입니다.
이어서 식물이 지구상에 나타나게 된 과정, 그리고 나무에는 산 능선 등 양지를 좋아하는 양수가 있고 오리나무처럼 개울가나 골짜기 혹은 그늘을 좋아하는 음수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오리나무는 특히 우리나라에 많은 나무로 참나무목, 자작나무과에 속한 낙엽활엽 교목입니다. 옛날에는 이 나무를 민가 주변에 심어 놓고 가지를 잘게 썰어 녹비로 사용했습니다.(주1)
과일나무에 대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소개가 있었습니다. 뿌리를 얕게, 즉 천근성으로 키우면 과일나무 당도는 올라가고 대신 깊은 맛은 떨어진다고 합니다. 나무가 크면서 뿌리가 깊어지면 과일의 단 맛이 줄어들어든다고 하니 너무 크게 키우면 안 되겠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그 맛이 차츰 깊어지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과일나무를 심어서 아이들에게 과일을 먹게 한 뒤에, 아이들이 자란 뒤에는 그 과일나무를 베어 없앴다고 합니다. 그대로 두면 벌레가 들끓어 작물에 피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과일나무를 부지런히 심는데 나중에는 그것들이 벌레들을 불러 모아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과일나무도 잘 생각해서 심어야겠습니다.
뾰쪽한 이파리 나무인 침엽수는 넓은 이파리 나무인 활엽수보다 식물 진화과정에서 먼저 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침엽수는 500년 넘게 자란 나무가 많지만 활엽수는 100년 넘는 나무가 드물다는 것도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식물 종의 수준에서 생각한다면 수명이 짧을수록 자연환경에 살아남기가 좋겠지요. 자꾸 변하는 새로운 환경에 새로 태어난 개체가 더 잘 적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자연에서 개별 개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종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 인류는 그 반대다. 종 자체의 번영에는 관심이 없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무는 다년생, 즉 여러 해 살이 식물이지만 풀은 한해살이가 많습니다. 한해만 살고 죽는다는 것은 개체로서는 슬픈 일이지만 종으로서는 번창을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추운 겨울을 씨앗으로 넘기고 봄에 새 생명이 자라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체의 희생으로 얻게 된 젊음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을 변화시켜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을 얻습니다. 농업혁명이 그것입니다. 과일나무는 천근성으로 키워서 달콤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리고 원래 길던 수명을 짧게 키워 더 많고 싱싱한 열매를 얻습니다. 또 야생에서 자라는 식물을 변화시켜 작물로 만들어 사람이 먹기 좋은 채소를 생산합니다. 아직도 많은 식물이 작물화가 가능하다고 하니 잡초도 유심히 살펴보고 자연의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농경지와 임야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 식물 식생이 풍성하여 좋다고 합니다.
토종 씨앗과 관련하여 종자를 수집하는 일 외에도, 씨앗 스토리 찾기 즉 씨앗이 전하는 옛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옛 기록, 특히 <임원경제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옛 기록에는 작물과 과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으나 중국의 이야기와 우리나라 이야기가 섞여 있어서 혼란스럽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기록물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중국 성리학에 깊이 빠진 유학자들로 무의식 중에 자기가 살고 있던 조선을 폄하하거나 현실을 무시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농업이나 임업, 공업을 천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 농업이나 임업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영제 선생님이 발굴하고 있는 토종씨앗 이야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겨울농사학교 수업시간에 일부 원고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책으로 출판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토종 씨앗 조사 현장에서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씨앗 보존이나 농산물의 갈무리에 대해서는 여성들, 즉 할머니들이 잘 알고 있으나, 과일나무나 마을의 역사, 지명에 대해서는 남성들이 잘 안다는 것입니다. 논농사나 밭 갈기, 제사와 관련된 일도 할아버지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전통 시대에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씨앗 관리는 여성의 일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딸이 시집갈 때 친정에서 씨앗을 챙겨서 보냈는데 이러한 분업 때문이었던 모양입니다. 여성들은 고향에서 자란 뒤에 시집와서 시댁에 적응하였기 때문에 마을의 역사나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모를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요즘과는 많이 달랐던 전통시대 생활상입니다.
옛날에 구황식물로 사용되었던 방울빗자루나무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습니다. 방울빗자루나무는 토종 아스파라거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먹을 것이 없을 때 구황 음식으로만 사용되었다고 하니 신기합니다. 선생님은 접경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토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하였습니다. 각지 토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철원지역에서 키운 콩이 잘 자라서 알이 굵더라도 같은 콩을 남부지방으로 가져가서 키우면 좁쌀처럼 작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은 콩이라도 지역마다 모양도, 맛도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지역에 잘 자라는 식물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농부로서의 경쟁력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외에도 질의응답 시간에, 미숫가루 만들기 등 구황 음식을 소개한 <구황벽곡방>(<구황촬요>), 쑥갓 등 채소 이야기를 담은 이옥의 <필운지>, 구한말에 일본에서 발간된 <한국토지농산 조사보고>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고려쌈이 전통시대에 중국에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 음식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고려쌈은 상추쌈 혹은 부루쌈(사투리)으로 불리는 음식문화입니다. 보김치, 쌈김치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토종배추를 포기배추로 개발했다고 합니다.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 개똥을 거름으로 사용하였다는 개똥참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개똥참외는 강아지가 참외를 먹고 길거리에 똥을 쌌는데 거기에서 이듬해 봄에 싹이 나서 참외가 열렸다는 전래 이야기도 있습니다. 개똥참외와 관련된 구전민요 <타박네> 노래를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불렀는데 저는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어디를) 울며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 깊어서 못 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
산 높아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줄라? 명태 싫다. 가지 줄라?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무덤가에 기어 기어 와서 보니,
빛깔 곱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기에,
두 손으로 따서 들고 정신없이 먹어보니,
우리 엄마 살아생전 내게 주던 젖맛일세.
엄마 무덤 바라보며, 울며 불며 집에 오니.
따스하던 그 방 안은 싸늘하게 식었는데,
우리 엄마 나를 안고 재워주던 이불속에,
엄마 모습 보이잖고 눈물 자욱 남아있네.
아직 엄마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가 엄마 무덤을 찾아가 무덤가에 난 참외를 먹고 슬프게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불속에서 울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무덤가에서 개똥참외라도 먹어서 다행입니다. 꿈속에서나마 엄마 젖을 먹을 수 있기를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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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강의는 토종 과일나무 사이트(https://cafe.daum.net/nativetrees)에 올라와 있습니다.
강의 영상1 https://cafe.daum.net/nativetrees/t1Pc/13
강의 영상2 https://cafe.daum.net/nativetrees/t1Pc/14
주1) 이동혁, 「'특징없는 것이 특징'인 오리나무 알아보기」, <Chosun Biz>, 2019.11.30.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7/20191127027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