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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주 Nov 18. 2023

맞다, 나에겐 글쓰기가 있었지!

feat. 코로나

"지이이잉"

학교어플 알림이 울렸다. 이번엔 아들 1호의 리코더 과제. e학습터에 리코더 과제 방을 따로 만들어 놓고 이제부터 리코더 연주 동영상을 찍어 올리라는 것이었다. 온라인 원격수업 이후 학교에서 이뤄져야 할 모든 활동이 집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1호는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에 거부반응이 심하고 적응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예민한 성향의 아이다. 자신이 못하는 것으로 인한 좌절을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담는 그릇 또한 작은 편이다. 그러니 처음 배우는 리코더를 혼자 연습하려니 어땠겠는가. 울고 불고 대성통곡을 하며 리코더를 불었다. 그 앞에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꾹 누르며 달래도 보고 격려도 해보다 감정 조절에 실패해 결국 협박 비슷한 걸 하는, 환장의 호러쇼를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선생님과 직접 연습하고, 검사 맡고 끝냈을 것이다. 선생님 앞에서는 이러진 않았을 테다. 게다가 동영상까지 찍어 올리라니. 아이들 밥 먹이고, 간식 챙기고, 집안일하고, 온라인 학습 챙기고, 숙제 봐주고, 공부시키고, 예체능 보조교사에 카메라 감독에 동영상 편집까지. 내 평생 지금처럼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했던 적이 있었나? 하아...... 물리적인 일상 듀티가 그 정도이고 짜증 나고 화가 나는 나의 멘탈을 붙잡는 것도 나의 몫이요, 아이들의 멘탈을 붙잡는 것도 나의 몫이다. 아이들의 정서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끝에 처리되지 않은 감정 보따리가 꽉 차 기어이 터져버리는 날에는 그 자괴감도 내 것이요, 좌절 끝에 다시 털고 일어서는 것도 내 알아서 할 일인 것이다.


 

억울하다. 이 억울한 감정을 나누고 싶어 고등학교 친구 단톡방에 투덜거렸다. 리코더 영상까지 올리라는 건 너무하다, 동영상 찍어주면서 아이 실수하거나  못하는 것을 바로 잡아줘야 하니 시간 또한 오래 걸리고 아이와도 부딪힌다며 볼멘소리를 했더니 우리 중 평소 똑 소리 나는 행동으로 '똑띠‘라 불리는 친구가 그러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음악수업 있을 때 내가 먼저 리코더 불었잖아. 그럼 애들도 와서 같이 연습한다, 너? 애들 스스로 연습 안 하잖아. 선생님께서 언젠간 검사하실 거라고 귀띔도 좀 해주면서. 아이들이 영상만 멀뚱 보고 있지 어디 알아서 하니? 난 함께해 줘. 맡겨놓지만은 않아. “

평소에 예체능 수업까지 챙겨 함께 했단다. 미리미리 해두었다는 거다.

     

똑띠의 말이 물 없이 된 고구마 먹은 것 마냥 목에 막혔다. 한 술 더 떠 ‘언젠가는 검사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어야지, 평소 아이 학습에 신경을 더 썼어야지.’라는 책망으로 들렸다. 이런 생각하는 내가 스스로도 바보 같았지만 아무리 누르려고 해도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공처럼 그 생각은 끈질기게 솟아올랐다. 내 할 일 게을리해 놓고 투덜거리기나 하는 불량엄마가 된 느낌이었다. 내 마음이 어지러운 탓이겠지, 내가 베베 꼬여 그녀의 말도 꼬아 들은 거겠지 하며 "역시 넌 참 대단하다."로 급히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영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뭐 어쩌겠는가. 베베꼬인 내장이 덜 풀려 얹혀버린 것들은 글로 토해낼 수밖에. 물론 그녀가 나를 힐난할 의도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의 마음이 불안과 짜증으로 꽉 차 빈 공간이 없었다는 것도. 어쩌면 그녀의 말을 일부러 오해함으로써 스스로를 탓하고 책망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남과 비교를 하게 될 때가 있다. 비교가 무엇보다 나쁜 것은 내가 했던 노력들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잊어버리게 된다는 데 있다. '그래, 저렇게 부지런히 해야 하는데..', '내가 부지런하지 못하면서 왜 아이 탓을 해..',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니 대단하다. 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하는 생각들과 함께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아이들 학습결손이 생기진 않을까 늘 살피고 있고, 오히려 시간이 많은 지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학교 다닐 때 못했던 글쓰기와 독서에 더 공을 들이려 노력하고, 관련된 교육 콘텐츠도 많이 찾아보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것에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격려한다. 학교 원격 수업을 충실히 따라 하는 것만큼 티는 안 나지만 내가 하는 노력들도 중요하지 않은가! 결과와 상관없이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남이 하는 말을 받아 들고 내 마음대로 날카로울 때까지 갈고 갈아 나를 찌를 필요는 없다. 우린 모두 다른 사람이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오며 만든 그들만의 역사와 세계가 있다. 비교하지 말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의 방식으로 하면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괜히 똑띠만 미워할 뻔했다.


 감정의 쓰나미가 밀려올 때 머뭇거리면 안 된다. 그것에 휩싸여 나쁜 감정들에 익사당하기 전에 피해야 한다. 앞으로는 쓰나미 경보가 울리는 즉시 글쓰기 대피소로 있는 힘껏 달려와야겠다. 가쁜 숨을 고르고 좀 더 멀리서, 좀 더 높은 곳에서 감정의 파도를 똑바로 쳐다보자. 집채만 했던 파도도 서서히 한눈에 보이고, 그것이 무엇을 파괴하려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도 보일 것이다.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풀어내면 된다.

그렇게  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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