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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주 Nov 20. 2023

꿈꾸는 김작가의 어느 보드라운 월요일

2028년 11월 20일 월요일 날씨 맑음

"딸랑"

책방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내며 나를 반겨주는 작은 은색 종이 아침 햇살에 반짝 빛났다.

그 햇살이 부딪혀 부서져 나온 빛의 파편들이 바스테트의 까만 털 위에 은빛 물결을 만든다. 눈으로도 만져지는 보드라운 윤기.

"야옹~"

녀석이 나른한 기지개를 켜며 다가와 내 다리에 몸을 비빈다. 제 몸의 따뜻한 온기로 내게 묻어온 찬 기운을 덥혀준다. 마음까지 몽글해지는 순간이다.


 북까페와 고양이. 아직도 가끔 씩 꿈꾸는 것은 아닌지  볼을 꼬집어 본다. 5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두 가지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와 아이들이 끊임없이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댔지만 남편은  '그러기엔 공간이 너무 좁다, 3호는 방도 없는 마당에 반려동물까지 키우잔 말이냐'며 단칼에 거절했었다. 하긴 다섯 식구에 30평대 아파트는 나를 찾아 숨어들 공간도 마땅찮은, 인구밀도가 높아도 너무 높은 공간이었다. 나만의 서재를 원했지만 현실은 내 책상 하나는커녕 식탁을 트랜스포머처럼 쓰는 형국이었다. 늘어놓은 책들과 노트북을 얼른 치우고 밥을 먹었고 흘린 김칫국물 쓱쓱 닦아내고 다시 식탁에 앉았다. 분명 그랬었는데 서재를 넘어 북까페라니. 게다가 고양이라니. 5년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이게 다 5년 전 우연히 시작했던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와  이후 출간한 나의 첫 책,  '금요살롱'으로 시작된 인생 2막 덕분이다.


 '금요살롱'은 아이들의 몸이 자라는 만큼 마음도 같이 자랐으면 해서 시작한 가족프로젝트였다. 입시를 목표로 공부만 하느라 정작 마음은 자라지 못한 청소년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적이 많다. 그런 염려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고 그간의 기록들이 책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소개된 것이다. 바뀐 입시제도의 영향인지 '금요살롱'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도 서점의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평소엔 강연을 많이 다녀 바쁘다. 오늘처럼 아르바이트생 대신 북까페 문을 연 날은 무엇보다 달콤한 휴일이나 다름없다.




남편은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강연과 회의등 일이 많아진 나를 위해 차 한 대는 뽑아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요즘은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지 예전보다 술을 많이 줄였고 일찍 일어나 운동도 한다. 그렇게 요리를 좋아하더니 주말엔 본격적으로 요리수업을 듣고 있어서 아이들과 나는 덩달아 주말마다 스페셜 요리를 먹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아들 1호는 열한 살 때부터 재미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후로 꾸준히 글을 쓰더니 웹소설 공모전에 덜컥 당선되었다. 지금은 연재소설로 돈도 꽤나 벌고 있다. 평소 생물학에도 관심이 많던 터라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 서울에 있는 대학의 생물학부에 수시 합격한 상태다.

 딸 2호는 예고에 다니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아이여서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많이 내성적인 성향의 아이여서 친구문제가 늘 고민이었는데 커가면서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부딪히고 배우면서 많이 성장했다. 지금은 단짝 친구 세 명과 예쁜 우정을 쌓는 중이다.

  중학교 일 학년인 딸 3호는 여전히 똥꼬 발랄이다. 언니, 오빠는 무난하게 지나가긴 했지만 사춘기구나 싶은 생각이 들던 시기가 있었는데 요 녀석은 아직이다. 셋 중에 제일 책을 안 읽어서 고민이었는데 웬걸, 지금은 책벌레가 따로 없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책 한 권 씩을 읽어주었더니 책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금요살롱이 무르익으면서부터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꿈결 같은 날들이다. 앞으로도 오늘만 같으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이렇게 좋기만 한 날들이 계속될 거라 믿을 만큼 낙관적이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운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나에겐 생을 걸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어서다. 훗날 저마다의 개성대로 잘 자란 내 아이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우리 엄마,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해.'

'우리 집엔 <금요살롱>이라는 문화가 있었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별 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부모님과 울고 웃으며 이야기 나누던 그 시간들이 나를 키운 8할이라고 할 수 있지.'

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이런 꿈이 있으니 인생을 그냥 살 수 없다. 대단한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은 내 앞의 파도를 의연하게 넘으며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 진실하고 당당하며 열정적으로 삶에 임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줄 것이다.


"딸랑"

첫 손님이 상쾌한 11월의 바람 한 줌과 햇 살 한가닥을 몰고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북까페 '몽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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