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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Mar 04. 2024

며느리는 어려보이면 안되나요?

며느리의 변신은 유죄

친할머니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이 태어난 나를 보고 친정엄마가 임신 중 벌겋게 비벼먹은 고추장 비빔밥이 문제라고 타박 하셨다고 한다. 돌쟁이인 나를 안고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박박 밀어왔다고 친정엄마는 지금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신다. 아무래도 딸아이인데 남자 아기처럼 민머리로 변신시킨 할머니가 원망스러웠을 테다. 할머니의 방편인지, 유전적인 건지 알 수 없지만 남들 부럽지 않은 숱부자가 되었다. 유치원 가려고 머리를 묶으려면 알록달록한 예쁜 머리방울은 내 숱을 감당하지 못하고 '툭'하고 끊어지기가 일쑤였다. 길고 탄성이 좋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그 위에 예쁜 방울은 한두 번 감아 내 머리 위에 얹어지는 식이었다.


숱이 많은 머리는 미용실에서 반기지 않는다. 남자 미용사의 볼록하게 솟아오른 힘줄과 바들바들 떨리던 팔뚝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가는 미용실마다 머리숱 많다는 말을 듣게 되면 미안함에 웃음으로 때웠던 적이 부지기수였다. 재방문하기가 망설여졌고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다니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날들이 생각난다. 아이를 낳고도 이마만 광활하게 넓어질 뿐 묵직한 머리숱은 변함없이 일정량을 유지했다. 아이 키우느라 미용실은 일 년에 한두 번 큰 맘먹고 시간을 내야 갈 수 있는 곳이 되었고 그렇게 황비홍의 변발처럼 산지가 10년째이다.  



나이가 마흔에 접어들고 항상 긴 머리만 고수하던 내게도 단발병이 도지고야 말았다. 인터넷으로 여자 연예인이름 'ooo 단발머리'를 검색하면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몇 개 골라 폰 갤러리에 저장했다. 그동안 긴 머리를 묶고 다니면서 숱 많은 머리덕에 무게감도 상당했고, 긴 머리는 비용 추가가 발생하기 때문에 짧은 머리가 여러모로 장점이 많게 느껴졌다.

미용실 의자에 앉고 폰에 저장해 놨던 단발머리 사진들을 헤어디자이너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속옷라인을 넘어 넘실대던 머리카락이 한순간에 싹둑 잘려나갔다. 그렇게 잘려나가는 가위소리는 목캔디를 입에 머금을 때 콧속으로 들어오는 멘솔 향처럼 상쾌하게 퍼져나갔다. 광활하게 빛나던 이마를 가리기 위해 앞머리도 과감하게 잘랐다. 세월의 흔적은 앞머리를 잘라도 팔자주름과 눈살의 처짐은 가리지 못해 아쉽기만 했다.


"사장님 현금으로 하면 좀 깎아주시나요?"

"고객님, 머리숱 '겁나' 많아요. 고객님 머리는 돈을 더 받았어야 해요."


'겁나'라는 단어에 머쓱해진 나는 조용히 카드를 디밀어 계산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현금으로 계산해도 가격이 같다고 말하면 될 걸 굳이 저렇게 얘기했어야 했나 싶은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비집고 들어왔다. 씁쓸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어색하게 짧아진 머리칼 덕분인지 가볍기만 했다.


구정 전 날, 아점으로 밥 한 끼 해결하고 시댁으로 향했다.

"어머님, 저희 왔어요."

짧아진 머리 스타일에 어머님이 어떤 반응이 보일지 궁금했다. 어머님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걸어보아도 10년 만에 변한 며느리의 머리는 관심이 없으신 모양이다. 시누이가 오면 옷차림 하나하나에도 지적하시는 분인데 며느리의 변신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가 보다. 그렇지 뭐... 나야 어머님의 딸이 아니니까...

남편이 뒤늦게 들어오면서 어머님께 묻는다.

"엄마, oo이 머리 잘랐는데 봤어?"

"어머, 얘~~~ 머리 잘랐구나!"...........

(네, 저한테 관심 없었으면서... 아들 말에 이제야 알아보시는(척?)군요....)


친척이 없는 덕분에 조촐한 음식 준비는 두 시간 만에 끝났다. 남편은 전을 다 부치고 나자 습관처럼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설거지 요정인 나는 빈 그릇들을 씻기 위해 음식을 담았던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담느라 왔다 갔다 하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한마디 하신다.


"OO아, 머리말이야... 다시 길러라."

"네? 왜요?"

"단발머리가 너한테 너무 학생 같아." "차라리 기르는 게 좋겠다."

................................


10년 만에 짧아진 머리는 예쁘다, 별로가 아닌 다시 '길러라'로 평가되었다. 학생 같아 보인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애매하게 느껴졌다. 확실한 건 어머님 마음엔 안 들었고, 예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안 어울린다는 것을 돌려 말씀하신 건지, 아니면 짧아진 머리 탓에 어려 보여서 그런 것인지 친정 엄마가 아니라서 더는 물을 수 없었다. "학생 같아... 학생 같아... 학생 같아......"가 메아리치듯 가슴에 남을 뿐이다.

우리 남편은 30대 초부터 정수리에 탈모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휑하게 빈 머리카락을 가리고자 모자를 쓰고 다닌다. 자식 사랑이 극진한 어머님은 아들의 탈모를 해결하고자 탈모샴푸도 사주시고 천연헤어팩도 추천하시지만 말 잘 듣는 자식은 이 집에도 없다. 아들의 탈모에 반해 숱부자 며느리의 단발머리는 어머님의 눈에 위기감만 충만하게 담아드렸나 보다. 며느리가 무슨 옷을 입던, 신발을 신던 내색하지 않던 분이 10년 만에 관심을 보이셨다는 건 의미 있는 낯설음이다.


10년 차 변발의 황비홍에서 귀밑 5센티 단발머리는 지인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머리에 껌이 붙었니부터 심경의 큰 변화까지 웃음 섞인 농담으로 인사를 건넨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주를 이루지만, 나이 마흔에 어려 보이는 건 어느 선까지 일까 정도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다.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며 '챱', '챱' 소리와 함께 두들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조금씩 선명해지는 주름들과 듬성듬성 비집고 나오는 새치다. 이왕 어려 보일 거 염색도 해보자. 미용실에 예약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OO헤어죠?"




어머님, 이왕 학생 같아 보이는 거 조금만 더 일탈을 꿈꿔보겠습니다.


출처: 픽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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