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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계 Mar 17. 2024

(영화)싱글라이더 리뷰

(영화)싱글라이더에 대한 평

     

싱글라이더(일인탑승자) 어떻게 볼 것인가?     


얼핏 보면 이 영화는 부인과 아이를 외국에 보내고 홀로 생활하는 기러기아빠의 삶과 애환을 주제로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기러기아빠의 삶과 애환은 하나의 소재에 불과할 뿐 주제로 부상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과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이것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면 싱글 라이더는 훨씬 재미있고, 매우 의미심장한 작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첫째, 작품의 구조적 성격, 둘째, 등장인물들이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 셋째, 개인과 사회의 관계, 넷째, 삶과 죽음 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먼저 구조적 성격을 살펴보자.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 살아있는 자의 세상과 죽은 자의 세상이 서로 엇갈리면서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와 과거의 경계와 차별성은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에 관객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경계나 차별성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난해할 수 있다. 특히 현재로 그려지는 것 속에는 살아 있는 상태의 상황도 있고, 죽어 있는 상태의 상황도 혼재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경계의 설정이 보이지 않으며, 설명 또한 없어 관객은 무척 당황스럽다.


남주인공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과거와 현재라는 두 축으로 나누어서 과거는 살아 있는 상황이고, 현재는 죽어 있는 상황이 되어 비교적 구분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상태는 모든 상황이 현재이며, 살아 있는 것인데다가 이것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감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관객을 혼란에 빠뜨릴까?      

이것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둘째 것으로 지적한 등장인물들이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을 먼저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는 다섯 명의 성인과 두 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남자주인공인 강재훈, 여자주인공인 이수진, 배낭여행객 유진아, 호주의 노동자 크리스, 크리스의 부인, 재훈과 수진의 아들, 크리스의 딸 등이다. 이 중 다섯 명의 성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현실 세계에서 실현시키기 위한 꿈이다. 꿈이 있었기에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별다른 불만 없이 삶을 영위해나간다. 그들의 꿈은 인간관계와 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만들어지는 유기적 연결망을 통해 가능할 것으로 믿어졌기 때문이다.     


강재훈과 아내 이수진은 비록 평범한 삶이었지만 아들의 성공이라는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상황에 있는 존재다. 이들의 삶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꿈은 아이만을 향해 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 소박한 꿈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인 아들의 유학을 기점으로 하여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아이를 잘 키워보려던 재훈의 소박한 꿈은 회사가 파산하면서 날아가 버리게 되고, 제2의 인생을 찾으려는 수진의 새로운 꿈은 재훈의 죽음과 함께 날아가 버린다. 따라서 이 영화는 꿈이 있었던 과거와 꿈이 깨어진 현재로 크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꿈이 있었던 과거는 육신이 살아 있는 삶이었고, 꿈이 깨어진 현재는 육신이 죽어 있는 삶으로 된다.     


호주의 노동자인 크리스는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짊어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평범한 가정을 이루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이 식물인간인 코마 상태에 빠지면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고 만다. 육체만 살아 있고, 지향점인 꿈은 없어진 상태다. 코마 상태인 부인은 의식만 있고 육신은 죽어 있다. 꿈은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결국 두 사람의 꿈은 실체가 없는 빈 것이 되고 만다. 여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현재, 혹은 현실은 평범한 삶을 추구하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꿈을 이루어 보려는 소박한 바람을 여지없이 짓밟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사회라는 조직은 그 구성원에게 있어서 더 이상 안식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주인공은 죽음을 통해 그것을 벗어나 보려고 시도한다.     


이 영화에서 삶은 희망을 전제로 하는 이상(理想)의 공간이고, 죽음은 절망을 전제로 하는 현실(現實)의 공간이다. 그러한 까닭에 여기서는 앞과 뒤, 밖과 안이 뒤바뀐 전도(轉倒)된 상황이 전개된다. 죽음은 탈출과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냉엄하면서도 절망적인 현실을 알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이것을 자각한 주인공은 부인과 아이가 영상을 통해 자신에게 행복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던 해변의 절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죽어서도 끊어내지 못한다면 환상에 젖어 있을지라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장 행복하게 느꼈던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이 점은 유진아 역시 마찬가지다.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보듬어주었던 어머니의 품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훈을 따라 해변으로 떠나지 못한다. 삶의 공간에만 머물러 있었던 아내 수진 역시 유학을 계기로 하여 아이에 대한 것에서 호주 이민에 대한 것으로 꿈을 바꾸어 보려 하였지만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다. 죽음을 통해 삶의 현실이 얼마나 냉엄하면서도 절망적인 가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앞으로도 혼자서 꾸는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어려운 것인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태로 말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고 발전시켜 나가는 사회는 전혀 상반된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은 존재다. 한 면은 사람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지만 다른 한 면은 그러한 꿈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림으로써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게 만든다. 사회의 이러한 두 측면으로 볼 때 그것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과의 관계 역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꿈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측면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유기적 관계가 매우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순간에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모든 것을 끊어버림으로써 혼자 남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인생에 있어서 일인 여행자(싱글라이더)일 뿐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부 일일 여행자였을지 모른다. 또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여기는 것이 행복감을 높여주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일인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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