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字一言, 麗
우리말로 곱다, 고운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고 알려진 麗(고울 려)는 매우 흥미로운 글자이다. 곱다, 아름답다, 보기 좋다 등은 본래의 뜻이 아니라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기본적인 의미로 하는 데에는 약간의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만들어질 당시의 글자 모양에서 변화된 것까지를 살펴보면 이러한 의문이 좀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이 글자는 윗부분에 丽(고울 려)가 있고, 아랫부분에 鹿(사슴 록)이 상하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형태다. 丽의 아래는 사람을 나타내는 人을 두 개 나란히 놓은 모양의 글자가 변형된 형태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一을 놓았다. 그래서 이 글자는 부부, 짝을 의미하게 된다.
鹿은 사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자(象形字)로 뿔, 머리, 몸통, 발, 꼬리가 있는 사슴이 서 있는 모양이다. 이 글자는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맨 위는 뿔, 중간은 머리, 몸통, 꼬리, 아래는 네 개의 다리를 표현한다. 사슴은 먹이를 구해야 할 때는 함께 움직이는데, 맛있는 쑥 같은 것을 발견하면 소리를 내어 서로 짝을 부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丽의 아래에 鹿을 넣어서 麗라는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麗의 기본적인 뜻은, 쌍을 이루다. 짝을 이루다. 서로 붙어 있다. 서로에게 의존하다. 붙어 있다. 걸려있다 등이다. 사슴이 쌍을 이루어 함께 다니는 것이 보기 좋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아름답다, 보기 좋다, 곱다 등의 뜻이 파생되어 華麗, 美麗 등의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이 글자가 지명이나 나라 이름으로 쓰일 때는 곱다,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붙어 있다. 걸려있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려’로 발음하지만, 이 경우는 ‘리’로 발음한다. 이때의 뜻은 걸려있다. 매달려 있다. 붙어 있다 등이다. 대표적인 것이 高句麗, 혹은 高麗인데, 고리, 혹은 코리로 읽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영어식 명칭이 코리아인데, 이것이 바로 高句麗에서 왔다. 영어에서 –a는 접미사로 땅, 나라 등을 나타내므로 코리아는 코리국이 된다. 고구려는 장수왕 때에 나라 이름을 이미 高麗로 했는데, 이때의 발음이 바로 ‘코리’였다. 이 말은 ‘높은 곳에 걸려있는’이라는 것으로 하늘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임을 강조한 말이 바로 高麗이며 그 발음이 ‘코리’였던 것이다. 이것이 서양에 알려지면서 coree, cory 등으로 되었다가 kore로 되었다.
麗水라는 지명도 있는데, 이것도 원래는 ‘리수’로 읽어야 하며, 그 뜻은 물과 같이 붙어 있는, 물에 걸려있는 등이다. 이 지명은 중국에도 있다. 동,서,남의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만 산이 막고 있는 곳인데, 옛날부터 이곳은 농경지가 반이요, 물이 반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여수 역시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고, 북쪽 한 방향만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분지이다. 그러므로 물과 짝, 혹은 물에 걸려있는, 물에 붙어 있는 곳이 정확한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여수 지역의 옛 이름이 海邑이었다는 사실도 이런 상황을 잘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