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사자 Jan 15. 2024

공감, 이해 그리고 호기심

 콜센타에는 CS교육을 담당하는 강사가 있다. 그녀가 늘 지적하는 말이 있다. 나는 공감이 아니라 반응만 하고 있다고 했다. 상대가 훈풍이면 나도 훈풍이 되고, 상대가 삭풍이면 나도 삭풍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훈풍은 흔적이 없고 삭풍만이 남아 고객만족도는 사정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공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이다. 유의어에는 동의나 동감이 있지만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공감은 너와 내가 같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너의 마음을 내가 인정한다라는 느낌에 더 가깝다.      


 공감은 이해와도 결이 다르다. 이해는 나의 사리 분별에 맞추어 너의 말을 알아듣겠다라는 뜻이다. 알겠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이해는 공감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늦게 일어났는데 아이들 준비도 늦어지고 차도 막혀서 아침부터 진짜 짜증나더라.”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감정은 짜증이고, 원인은 늦게 일어나고 아이들 준비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감추고 있는 속뜻은 아침부터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났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적절한 리액션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누구나 짜증이 나지요.’ 이고, 이제 그녀는 원하는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날씨가 춥다고 불평한다 해도 진짜 추워서 일 수도 있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는 데 이 자리에 있다는 불편함일 수도 있다. 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상대가 발하는 언어적 그리고 비언어적인 모든 표현에 대한 주의집중이 필요하다. 그래서 똑같이 춥다고 말하더라도 공감의 리액션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적절한 리액션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호기심이다. 내 잣대와 기준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해버리면 더 이상 호기심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왜? 그래서? 라는 호기심이 일어야 내 생각의 회로를 돌려 상대방의 말에 질문을 할 수 있고, 그래야 그 또는 그녀의 사정에 대해 알 수 있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에서 깊은 마음에 다가가는 공감과 시의적절한 리액션이 나오는 것이다.      

 올해의 최우선의 목표는 타인과의 소통이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첫째,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절대 말을 끊지 말자. 둘째, 하루에 한 번씩 타인에게 질문을 던지자. 반성하고, 다시 결심하고. 다짐하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목표이고 계획이다.      


 오랜 세월 내 감정에 침잠하고, 늘 내 사정만 내세우며 언제나 나, 나, 나에 나름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 이만만 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안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의 사정도 들어보고, 그의 감정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다.      


 비록 지금은 반응하는 데 급급하지만, 타인에게 호기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 정확한 이해를 넘어서 적절한 공감까지 가야 하는 길은 창창하다. 그러나 가 볼 만 하고, 가 보고 싶고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다.      


 미움받을 용기도 좋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다만, 어떤 누군가를 만난다면 진심으로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진짜 그의 마음과 정신에 닿아보고 싶다. 굳세게 잠긴 빗장을 억지로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만큼은 열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