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때 헤어질 것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모든 인연이 다 시절인연이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된다. 좋았던 순간, 미래에 대한 장밋빛 바람들, 굳은 맹세 그 모든 것 들은 다 세월 속에 사라져가고, 내 카카오톡 친구목록은 매년 새롭게 업데이트된다.
돌이켜 누군가와 모질게 악담을 주고 받으며 매몰차게 돌아선 기억은 없다. 대개의 경우 만남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헤어짐도 큰 이유는 없다. 그냥 공통분모가 없어지거나 만남이 시들해지는 여러 가지 사유로 연락이 뜸해지면, 구지 이별이라고 하지 않아도 그냥 멀어진다. 그러다 늘 전화하던 타이밍이 되어도 전화를 걸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안 하게 되면, 그 관계는 소리 없이 종언을 맺는다. 그렇다면 전화를 하게 되면 유지가 될까?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닌, 관계를 유지하는 데 쏟는 노력은 큰 힘을 갖지 못한다. 끝날 것은 어차피 끝이 나고야 마는 것이다.
만남을 시작하고 관계가 좋을 때 우리가 하는 맹세나 확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장밋빛 바람들이 다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는 거짓이 없었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했다.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갔고, 진심 어린 충고도 있었다. 마음을 다해 격려해 주었고, 사심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꼭 잘되라고 축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참 좋았다. 분명히 그때는 그랬다.
어릴 적 누군가의 마지막 연락을 받아 본 적이 있다.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가 수첩에서 내 연락처를 지우기 직전 연락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변했다고 말했다. 딸이 발달장애이고 딸을 돌보기 위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다니던 좋은 직장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전했다. 그녀가 나에게 너는 어떻게 사니?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최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있다며 꿈과 희망과 포부에 대해서 말했던 것 같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을 것이다. 당연히 나에게도 동일한 반응이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딸이 발달 장애 라는 것은 당시 나에겐 의미로 다가오지 못했다. 나는 아팠다. 그때 내가 아팠다. 나는 심한 감정장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자식 때문에 세상이 무너졌지만 나는 그냥 내 세계가 붕괴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화한 의도를 알아챘을 때부터 불쾌한 감정을 갖고 있던 나는 나에게 다가온 이별에 나름대로 대처하느라고 애를 썼다. 최대한 밝게 희망적으로 말했던 것은 내가 마음을 감추고 그녀에게 전한 최선의 예의였다. 통화를 끝낸 순간 우리는 서로 모멸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공감받지 못한 그녀와 모욕당한 내가 함께 씩씩대며 박박 서로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 한순간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냥 스쳐가는 만남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만나는 일은 천지인 시간의 합일만큼이나 어렵다는 생각을 우스개처럼 하곤 한다. 그녀가 나를 만나려고 했던 시간은 수첩을 정리하며 그래도 바로 지우지 않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던 그 순간이었다. 그때 그녀는 나를 만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진솔하게 자신을 내어 보이며 나를 맞이하기 위해 말을 건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지 못했다. 나에게도 사연이 있고, 변명거리도 있지만 결국 그녀가 나를 만나고자 한 시간에 나는 그녀를 맞이하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안정이 되고, 그리고도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 비로소 그녀의 사정이 마음에 스쳐 지나간다. 발달장애인 딸아이는 상태가 어떤지도 물어보고 싶고, 오랫동안 치열하게 준비해서 자격을 취득했는데 어이없이 날개가 잘린 것에 대한 위로도 전하고 싶다. 변했다고 하는 데 뭐가 어떻게 변했다는 것인지 그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도 싶어진다. 나는 이제야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었지만, 우리의 시간은 어언 30년의 간극이 벌어져 있다. 우리의 이별은 되돌이킬 길이 없다.
그렇다면 돌이키고 싶은가? 김광진의 편지라는 노래가사엔 이런 말이 있다.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라고. 그녀는 나를 잊었을 것이고, 자기연민에 빠져 내 속에 갇혀살았던 나도 그녀를 궁금해할 여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를 아직까지 놓지 못한 것은 그녀가 나에게 걸어준 그 마지막 전화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재재변같은 아이의 장애는 그녀를 변하게 했고, 그리고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나도 점차 변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가 지금만 같았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도 나쁠 것은 없다. 나는 그녀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가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장애를 가진 딸이 그녀에게 더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그녀가 편안하기를 바라며 그녀의 인생이 완성 되어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내 인생의 책갈피에 그녀를 잘 갈무리해 정리해서 넣는다. 어쩌면 이제 다시는 그녀를 꺼내보지 않게 될 것도 같다. 30년을 돌고 돌아 나는 겨우 그녀라는 챕터에 마침표를 찍는다.
점심 때 자주 직장동료 두 사람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 그 중 한 사람이 농담으로 늙어서 다 한동네에서 살자고 한다. 나더러는 슈퍼를 하라고 했다. 단, 밖에는 넓은 평상을 놓으라는 것이다. 또 다른 동료에게는 자신이 매일 퇴근하며 슈퍼에 들를 테니 너는 맛있는 음식을 해달라고, 평상에 앉아 노닥노닥 맛있는 거 해먹으며 맨날맨날 행복하게 살자고 한다. 우리는 다 같이 그러자 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동료들과 가식없이 웃고, 말하고, 때로 일의 고단함을 나누면서 나의 지금을 살고 있다. 지나온 내 삶은 비록 이 친밀한 행복이 머지않아 소리소문 없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걸 일깨우지만 내일의 이별이 두려워 오늘의 만남에 그늘을 드리울 필요는 없다. 오늘은 그냥 행복하자.
인연이란 것을 하늘이 내리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맺는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냥 나의 때가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다시는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놓치는 실수는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는 우리 안에 꼭 남는 것이 있다. 그녀가 내 인생의 책갈피에 남겨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