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전시회를 연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로하신 후배의 어머니께서 시를 쓰셨고 그 시를 바탕으로 후배가 작품으로 완성한 모양이었다. 하루하루 손꼽으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날짜를 챙겼다. 일주일 전부터 편지를 써두고 내 마음을 담았다. 몇 마디 쓰는데도 손에 느껴지는 작은 떨림으로 펜을 꽉 쥐어야 했다. 평소보다 글씨가 이쁘게 써지지 않아 신경에 거슬렸지만 진심을 담아내려고 애썼다.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원은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고 나의 산책길의 마무리 단계에서 지나치는 곳이다. 그러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나치는 아주 익숙한 길이다. 그런 그 길을 어제는 평소와 다른 설렘을 품고 걸었다.
'같은 길인데 또 이렇게 다른 느낌이구나'
가슴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래전 일기장을 펼쳐 보는 살짝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어떤 축하의 말을 건넬까
무슨 멋진 말을 해줄까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쓴 편지는 너무 초라한 선물이지 않을까
화장도 않고 너무 무례하게 보이진 않을까
아니면 내 모습 너무 초라해 보이려나
온통 나를 더듬어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의 당숙모님과 후배의 작은 이모가 같은 분으로 우린 가끔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특별한 날에 우연히 마주치는 행운 말고는 거의 만날 기회가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한때 가깝게 지냈던 시절도 있었지만 살. 다. 보. 니. 그렇다. 그 시절 유난히 날 잘 따라주어 수없이 편지를 나누었고 우리 집에도 편히 놀러 오던 녀석이었는데 어느새 교사의 인생으로 작가의 인생으로 멋지게 자기를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에 비하니 내 모습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조금 무거워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사정(대학 졸업 이후 엄마의 병간호로 사회생활을 못한 나)을 잘 알고 있으니 맘 편한 구석이 있기도 했다.
역시 후배는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손님들 챙기느라 바빴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전시장을 나오는데 뭔가 내 마음에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어렵게 우리가 만났는데 이 정도 대화밖에 못 나눴구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녁 내 카톡만 확인했다. 아마 나처럼 아쉬웠다면 나의 편지를 읽고 나서 분명히 카톡을 보내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