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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알람이 울립니다.

오전 8:30

by 날마다 하루살이

오전 8:30이면 알람이 울린다. 알람 이름은 '어머님 약 챙겨드리기'이다. 어머님께서 치매 판정을 받으신 후 바로 아랫 동서(어머님의 둘째 며느리)가 시간 맞춰 약을 챙겨드리는 일을 도맡아 했었는데, 그 동서와 어머님 사이에 좋지 않은 문제가 생겨서 나와 막내 동서가 하기로 재조정되었다. 주말엔 오전부터 내가 수업이 있어서 신경 쓰기 어려울 것 같아 주말엔 동서에게 부탁을 했다. 주중에만 내가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게 된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어찌하여 둘째 며느리에게 그런 마음을 품게 되셨을까. 처음으로 전화를 드리던 날 새삼 아랫동서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동안 혼자서 묵묵히 잘 처리해 주었구나...


나의 일정 외에 새롭게 추가된 일정이 조금 번거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은 그게 일상의 시작이니 별 느낌이 없게 되었지만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신경 써야 하니 좀 거북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잘 통화를 않던 고부관계이기에 더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결혼하고 느낀 시댁의 집안 분위기는 그저 '낯설다'정도에서 머무르는 수준이 아니었다. 남자 형제만 있는 집안이라고 감안을 하더라도 그렇다. 내겐 너무도 이상하리만치 가족들 사이의 대화가 어색했다. 게다가 동서들과도 딱히 살가운 대화가 오가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바로 아랫동서와는 묘한 거리감마저 느끼는 세월이었다. 먼저 결혼하여 시부모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동서는 나의 등장에 처음엔 긴장하는 듯 나를 경계했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난 달리 먹은 마음이 없었으니까.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고부간의 대화는 이제 통신기를 통해 매일 이어진다. 하루하루 반복적인 내용이지만 그 반복이 이어지다 보니 감정도 변하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어머님~~~ 저예요.. 윤정이~"

"그래~"

"식사는 하셨어요?"

"나, 밥 먹었던가?"

"식사 안 하셨으면 하시고 약 드셔야죠.

오늘이 ○월 ○일이에요."

"○월 ○일?"

"네~ 달력 한 번 보세요. 약 붙어있어요?"

"응, 약 붙어있네~"

"그럼 얼른 떼서 약 드세요~

"그려, 알았다. 고마워~~~"

"네 어머니.. 이제 식사하세요~~".

"그려, 잘 지내~~~"


누군가가 공유한 아이디어는 이 집 저 집 치매 노인이 있는 집마다 퍼져나갔을 것이다. 우리 집까지 그 정보가 흘러들어왔으니 알만한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바로 아랫 동서가 찾아내서 우리도 실행하고 있다. 달력에 하루치 약을 붙여두고 실수하여 빼먹거나 중복해서 드시지 않도록 돕는 방법이다.


4월부터 약을 드시기 시작했으니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 시간이 얼마나 길어지고 또 어떤 어려움이 내 앞에 놓이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이 정도 선에서 어머님을 돕고 있다.


오늘도 전화를 드렸다. 처음 가졌던 어색함은 서너 차례 통화 이후엔 사라졌다. 어머님께서는 건네주시는 '고맙다', '잘 지내'라는 인사를 듣다 보니 정말 이건 진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판정을 받으시고 둘째 동서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 이전 나를 대하시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물론 내 기억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머님이 야속하고 불편한 대상이었는데 이제 어느새 그 관계가 변하고 있다. 어머님이 점점 가엾게 자리하려 한다.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늘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저, 윤정이에요~~~~"

목소리를 최대한 상냥하게 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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