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운동 겸 산책을 다녀왔다. 늘 그렇듯 휴대폰은 두고 나간다. 내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니 돌아와 부재중 전화 목록을 확인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런 류의 일들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휴대폰이다.
돌아와 확인해 보니 그런 휴대폰에 그야말로 불이 났었다.
부재중 전화 10통!
모두 어머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바로 전화를 드려볼까 하다가 잠시 멈칫했다. 분명히 통신선을 타고 날아오는 언어가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어머님의 치매 증상인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의 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동서와의 문제를 또 언급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또 불편한 이야기.
사실이 아니기에 더 불편한 이야기.
어머님의 고정된 생각을 바꿔줄 수 없기에 더 답답한 이야기.
감정 섞여 나오는 그 분노를 받아내야 하는 이야기.
당사자가 아닌 나도 듣기에 거북한데 동서가 꽤나 힘들겠다는 단순한 생각만 할 뿐이다. 그 감정의 골은 어찌하여 어머님 가슴에 새겨진 걸까. 내가 어찌 도울 방법이 없다. 어머님의 이 증상도 치매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쩌면 오랜 세월 가슴속에 남몰래 키워온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 감정분출을 듣고 싶지 않아 멈칫했다. 어차피 내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괜히 전화했다가 내 기분까지 엉망 되는 건 아닐지...
망설이다 폰을 들었다. 신호음이 울리는 사이 제발~~~ 이란 간절함에 두근거린다.
"어머니~~~ 전화하셨었네요?"
운동 나가느라 폰을 두고 나갔어요...라고 설명드리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전화 안 했는데?
이거 만지다가 잘못 눌렀나 보다!"
다행이다. 어머님께서 기억하시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행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니 괴롭지는 않은 걸까. 일단은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켰던 어제 아침과는 다른 감정 상태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님.. 내일 아침에도 오늘처럼만 받아주세요.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
고맙다고..
잘 지내라고..
그런 이야기만 나눌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