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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속도가 버거운 나이

by 날마다 하루살이

아이 학교에 제출할 서류가 있어서 두 곳 관공서를 가야 했다. 건강 보험료 납입 증명서와 주민등록 등본이었다.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건강 보험 관리공단으로 먼저 가고, 돌아오는 길에 읍사무소에 들러서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되겠다고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려 보고 출발했다. 어차피 아침 운동 겸 걸어서 다녀오면 되겠다 싶었다. 1개 서류 완료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읍사무소로 향했다. 무인 민원 발권기를 이용하려고 그 앞에 섰는데 이런 낭패를 봤나! 이 발권기에서도 건강보험료 관련 서류를 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고 생각하려다 일부러도 운동하는데 운동한 셈치자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평소에 해보지 않은 모든 일에는 처음이 필요한 법이니까!


자연스럽게 등본을 떼고 돌아 나오려는데 나이 드신 남자분이 바싹 다가와 도움을 요청하신다. 손에 여러 장의 서류를 들고 계셨고 그중 한 장을 내게 보이시며,

"내가 할 줄 몰라 그러는데 좀 해줄래요?"

하신다.


내게 내민 서류에 적힌 여러 사항 중 '무인'이라고 적힌 두 장의 서류를 내게 부탁했다. 그중에는 '2층'이라고 적힌 것들도 있었으니 오늘 일처리를 하시려면 바쁘시겠구나.. 싶었다.


"저도 안 해본 것이지만 한 번 해 볼게요~"

"등기부 등본이라...'건물, 건축'과 관련된 것인가?"

이상하다. 찾을 수 없단다. 무식해도 바로 고칠 수 있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이전 화면'이나 '처음'으로 되돌아 나와 다시 시도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한 번 해보자~!

첫 번째 미션은 잘 안되니 두 번째 미션부터 처리해 보자.

'건강 보험 자격 득실 확인서' 그 이름도 생소한 서류명 앞에서 순간 당황했지만, 필요한 서류와 비슷한 글자 조합을 찾아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다음이야 뭐~^^ 순서대로 진행하니 하나는 해결되었다. 하나 해결하고 용기백배 충전하고 두 번째 미션에 들어갔는데 등기부 등본 떼려는 집 주소를 정확히 모르신다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분의 아버님께서 거주하시는 집이어서 잘 모르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동○호임은 아시지만 정확한 도로명주소를 입력해야 처리해 주는 기계는 도통 다음으로 진행시킬 수가 없었다.

이때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직원이 나오길래 도움을 요청했더니,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정확한 주소를 아셔야 해요" 그건 우리도 지금 알고 있는 상황 아닌가.. 어떻게 해서든 도우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난 어떴게 해서든 돕고 싶었다. 순간 떠오른 생각! 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동 ○○주공 아파트 주소'

우와~~ 참으로 좋은 세상! 검색하면 다 나와~!

주소창에 입력하고 있는데 다른 젊은 직원이 나왔다. 주소를 검색한 걸 보여주고 서류가 발급되는 것을 확인하고 난 돌아 나왔다.

"감사합니다~"

내가 돌아 나오는 모습에 이 사건의 당사자 아저씨께서 인사를 하셨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는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곁에서 서류에 필요한 입력 사항을 도와주시면서도 감정적으로 불편하신 기색을 거의 받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하면 누구에게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의 기다림 같았다. 조바심 내지 않으시고 불안해 안절부절못하실 법도 한데 차분하게 내가 하는 것을 지켜봐 주셨다. 다른 서류에 주소가 있는지 차에 다녀오시기도 하면서 날 도우려고 하셨지만 머릿속에서는 주소가 떠오르지는 않으신 모양이었다.

"지난번에도 여기서 했는데..."만 되뇌셨지 커다란 심경의 동요가 없어 보였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셨던 걸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고..


누구나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 그 과정이 지금처럼 편안하게 흘러간다면 좋겠다. 난 누구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최대한 도와주려 노력한다. 조금은 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이길 바라면서. 지금은 도움을 주는 위치였지만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아직은 어린 아이, 세상의 변화에 어색해 하는 내 남편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때 자연스럽게 요청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길 바란다. 그건 서로의 믿음에 근간을 두고 있을 것이다. 서로 간의 신뢰가 깔려있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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