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
오랜만에 약속이 잡혔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앞서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가 바로 집 앞 돈가스집이지만 붐비는 점심시간을 약속 시간으로 정한 터라 미리 가서 자리를 잡기 위함이었다.
여러 자리에는 벌써 "예약석"을 알리는 푯말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빈자리 한 테이블을 안내받았다. 만나기로 한 상대가 올 때까지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음악소리가 들린다. 바로 옆 우리 집에서도 가끔 들리는 음악 소리가 정돈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들으니 또 달리 들린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소리다. 잠깐이지만 집안일도 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이구나.. 싶은 게 갑자기 이 시간이 너무 귀하게 여겨졌다.
폰을 보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거나 마주 앉은 동행인과 식사를 나누는 모습이 아주 가까이 보이는 좁은 식당이다. 내가 안내받은 테이블도 4인용 식탁 중앙에 칸막이를 하고 따로 손님을 받는 구조였다. 칸막이 한쪽에 난 앉아있다.
지난봄 친구와 이곳에서 잠깐 만났을 때는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가게 밖에서 만나 같이 들어왔으니 들어오자마자 수다가 이어졌고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여유는 없었다.
아니 혼자만의 시간은 아이들이 등교했다 돌아오는 순간까지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흔하디 흔한 시간이다. 오늘 이 시간이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언젠가 이런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미용실이었다. 온전히 나에게로 향하는 집중의 시간. 창밖엔 바람이 불어도 내부공간은 이쁜 음악이 감싸안는 포근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때도 문득 '아... 좋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는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 '가요무대'등 노래 프로그램이 아니고선 따로 음악을 듣진 않는다. 라디오를 듣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플레이 리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내가 음악소리에 이렇게 귀 기울인다. 예전 그 어느 날로 돌아간듯한 기분이다. 나의 젊은 날! 그때는 커피숖에 앉는 일도 가만히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도 늘 있는 일상이었다. 지금처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절이었다.
그동안 너무 바빴나?
이렇게 흥분될 일이야?
잠시 후 상대가 내 앞자리에 마주 앉았다. 또다시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잠시 동안 쉼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