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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별을 하였습니다

by 날마다 하루살이

말 그대로 오늘도 한 아이와 헤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원래 만나고 헤어지는 일입니다. 어려운 수학 과목을 매개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좋은 결과를 얻어 정상적인(?) 마무리 과정을 거쳐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부모의 판단에 이끌려 여기저기 학원을 옮기는 경우가 많아 의도치 않게 원치 않는 이별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복잡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수학이 어려운 아이들은 수많은 반복으로 기본적인 것을 겨우 익히고 나면 응용문제를 숙지하기도 전에 다시 진도를 쫓아가야 하기에 충분히 익히는 과정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 제한적 상황 속에서 최대한 노력을 할 뿐입니다. 한두 번 보고 내용을 알고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부르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그런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아이들이 그 정도의 해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저와 같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저는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게 지켜보고 응원할 뿐입니다.


저의 도움으로 한 단계 올라선 그 아이는 조금 더를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 기말고사의 결과는 어려운 시험 문제와 맞물려 아이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아버렸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야속하게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결과로 나온 점수만으론 성과가 없어 보이지만 제눈에 보이는 아이의 내적 성장은 뚜렷합니다. 하지만 밖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문제를 볼 때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졌고 풀 수 있는 것은 실수 없이 안정적으로 풀어낼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과로 다음으로 도약해 주길 바랐지만 한계를 깨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커다란 성과입니다. 부모님은 점수의 앞자리가 변해주길 바라지만 제 눈에는 보이는 아이의 성장을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저는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따라와 준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작은 선물과 앞으로의 당부와 제 마음을 담은 짧은 편지를 준비해 두고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아쉬움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아도 된다는 후련함도 함께 있는 자리입니다. 부모의 관심을 넘은 지나친 간섭은 제게도 스트레스였으니까요.


들어온 아이의 얼굴이 뭔가 이상해 물으니 울다 와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빠에게 혼나고 왔다며... 또다시 감정이 터져 나왔습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전하려던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부모의 기대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더불어 남들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성장의 이야기로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좀 더 자신감 갖고 공부에 임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마지막 수업, 마지막 인사를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간 아이에게서 답이 왔습니다. 평소 감정 표현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여린 소녀가 맞았네요. 진심이 담긴 글에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헤어짐에도 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거쳐간 모든 아이들이 더 도약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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