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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친절로 잃은 것/얻은 것

by 날마다 하루살이

"언니야, 10분 연착된대~"

"그래? 알았어. 근데 형부가 데려다줄 거야~"


오늘은 유방 정기검진 받는 날이다. 내가 사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중요한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대전으로 나간다. 미리 주변에 소문을 내고 약속도 잡았다. 시골 구석에 박혀있는 내게는 특별한 외출 기회가 주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언니는 미리 날짜 맞춰 연차를 내었다. 기차역에서 만나 지하철로 병원에 가는 나와 함께 하기로 했다. 동생은 반차를 내고 점심시간을 맞추기로 했다. 우리끼리의 만남은 처음 있는 일이다. 병원 진료는 뒷전이고 같이 보낼 새로운 경험에 들뜨는 아침이다.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신나겠다~


정기검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남편과 함께였기에 지하철로는 처음 가는 것이다. 우연히 병원이 '지하철 출구 1분 거리'라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읽고 혼자서 다녀오리라 맘먹었다. 요즘 새로운 걸 접할 기회가 없어진 난 조금은 흥분되었다. '새로움'! 촌스런 내가 혼자서 찾아가는 길..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그것도 나이 들어 익숙함이 없는 낯선 경험을 앞둔 아줌마는 설레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대전에 살고 있는 언니가 역부터 동행할 테니 길 잃을 염려도 없이 맘 편히 다녀오리라 맘먹고 있었다.


근데 형부 차라니~~~! 배려와 친절 속에 나의 새로운 여행(?)이 묻혀버렸다. 조금 아쉬웠다. 낯선 곳에서 길 찾기 탐험 여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게다가 도중에 걸려온 언니의 전화로는 늘 나오던 출구 말고 다른 쪽으로 나오라는 안내를 해주었다. 형부차를 댈 수 있는 장소! 히잉~ 처음부터 길 엇갈리는 건 아니겠지! 나,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 담은 맘을 안고 기차 좌석에서 일어났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방향으로 계단을 오른다. 그다음엔 평소 다니던 반대방향으로 가야 한단다. 화살표를 보고 따라가지만 중간에 끓기는 구간이 나타났다. 바로 그 위치에 안내데스크가 하나 있었다. 그냥 혼자 찾아볼까 하다가 물었더니 친절히 안내해 주어 훨씬 확실한 맘가짐으로 발을 옮길 수 있었다.


드디어 출구를 만났다. 언니에게 전화를 하자 바로 통화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며, 지금 들어오는 형부 차와 바로 마주쳤다. 형부차에 올라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병원 예약 시간을 잘 맞출 수 있게 되었다. 형부 덕에 한편 편하게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길 찾기 경험은 병원 건물 앞에 도착해서 시행할 수 있었다. 미로처럼 연결된 상가 사이로 엘리베이터를 찾는 일부터 나의 도파민은 자극받았다. 혼자였다면 당황했겠지만 언니와 함께라서 안심이었다. 이렇게 커다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두 가지로 운행되었다. 저층부와 고층부로 나뉘어서 운행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하는 층까지 가는 것도 미로 찾기처럼 재미있었다. 이런 나의 촌스러움도 나는 좋다.


처음 떨리던 가슴을 안고 방문했던 그 병원이 이제 몇 차례 다녀갔다고 익숙한 공간으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리도 편안한 것이로구나...

걱정 조금 보탰던 문제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견을 받았다. 평생 가지고 살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언니와 병원 소파에서 동생을 기다렸다. 동생이 미리 얘기했던 식당으로 우릴 데리고 가기로 했다. 손님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새로웠다.


진료 결과가 다른 방향이었다면 달라졌을 오후 시간이었다.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날것 그대로의 고기"이라면 원래 먹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내가 육회 비빔밥도 맛보았다. 밥이랑 섞이니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나중엔 회덮밥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로 찾기는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가보지 않은 곳을 네비의 안내를 따라가는 행위는 신기했다. 대전에 산다고 대전 바닥 골목골목을 다 알지는 못할 터. 동생이 실수 없이 해내고야 말았다. 우린 적당한 자리에 주차를 하고 다시 역사로 들어갔다.


돌아오는 기차표를 끊고 남은 시간을 이야기로 채 채웠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알지 못했던 동생의 결핍에 대해 들었다. 나의 결핍과 겹치지 않는 다른 결의 결핍이 있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다 지난 일이다.


14:14 나의 기차 시간 앞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대전역에서 빠뜨릴 수 없는 성심당 빵을 나눠 들고 우리는 헤어졌다.


새로움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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