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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비 Nov 16. 2023

느긋한 신작가의 어느 여유로운 월요일

2028년 11월 10일 (5년 후 상상 일기)

아~ 오늘은 책방도 쉬는 날인 월요일.

남들은 월요병으로 일요일 오후부터 피곤하고 긴장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 여유로운 월요일이 가장 좋다.

우리 책방은 주 5일 문을 연다. 일요일과 월요일을 휴무로 정했는데 일요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서, 월요일은 나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쉬는 날이라고 해서 늦잠을 자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 설레는 새벽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느새 나의 루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나의 작업실로 가서 은은한 무드등을 켜고 따뜻한 차를 티포트에 끓인다. 작업실은 내가 살고 있는 건물 맨 꼭대기 옥탑층인데 조용한 새벽녘 나무향이 나는 원목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메일이 와있는지 알림 메시지가 뜨는데 지금 이 시간은 나만의 읽고 쓰는 시간이기에 가볍게 무시한다.


새벽 3시간을 온전히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으로 보낸 뒤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아이들도 각자 나름대로 아침 공부를 마친 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무섭다는 중2병에 걸려 사춘기를 무섭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너무나 밝고 건강하게 지내는 딸이 고마울 뿐이다.

신랑 역시 일찍 일어나 서재에서 작업을 하고 나와 주방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 메뉴는 상큼한 유자소스를 곁들인 샐러드와 연어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 따끈한 머시룸 수프다. “여보야~ 아침식사 준비해 줘서 고마워. 오늘도 호텔 조식 부럽지 않네~“

이번에는 건강검진차 어제 내려오신 부모님들이 우리 집 게스트룸에서 나오신다. 건강이 염려되어 매년 건강검진을 해드리고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물다 가신다. 예전에는 우리 집에 오시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집도 넓어졌거니와 재정과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이 또한 즐거운 맘으로 기꺼이 하고 있다.




책방을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쯤이다.

평생 월급쟁이로만 살 줄 알았던 내 삶이 월글쟁이(?)로 살 수 있었던 건 우연히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필연적일 것 같은 우리네 인생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연의 연속이고 운이 작용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연히 글 쓰고 여행하며 재미있게 사는 삶을 살고 싶어 했는데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핸드폰 속 작은 화면이다. 염색 안 한 검은 긴 머리에 매일 똑같은 검은 티셔츠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와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유튜브 속 알고리즘에 이끌려 들어왔다.  편집이라곤 하나도 없는 투박 그 자체였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았다. 마찬가지로 휴직 중인 나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으니깐…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 첫째가 초등도 안된 어린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왜 이리 육아와 교육에 불안하고 걱정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녀를 실물로 만나게 된 건 22년도 늦가을 무렵 내가 사는 도시의 한 도서관에서다. 설레는 맘으로 제일 먼저 강연장에 도착해서 화장실부터 다녀오려고 했는데 그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헉~ 실물깡패인데?  너무 놀란 나는 “어머나! 선생님~ 안녕하세요?” 부끄럽게 인사하고 얼른 도망가버렸다. 마치 연예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리고 시작된 강연. 조곤조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적당한 유머를 곁들인 그녀의 강의는 내 맘을 흔들어 놓았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그녀와 닮은 삶을 살고 있다. 오늘 강연을 갈 곳은 전라도 여수. 간장게장과 갓김치 생각에 벌써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그렇다. 나는 책을 내고, 전국 방방곡곡 강연을 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다. 일부러 지역의 도서관을 찾아가 내가 그러했듯 정보가 부족한 지방소도시에 사는 엄마들에게 내가 아는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아이들의 수가 급감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녀교육은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강의를 마치고 오늘의 매니저를 자처한 남편과 함께 유명한 남도 한정식 식당을 찾는다.


평일 점심에 이렇게 여유롭게 맛있는 음식 먹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니 너무 좋지 않아? 간장게장에 밥을 쓱쓱 비벼가며 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코로나 무렵부터 경제에 관심을 가진 남편은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 경제공부에 매진하더니 어느새 퇴사하고 건물관리를 하며 살고 있다.

그 역시 나처럼 그토록 바라던 경제적 자유를 얻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띠링~” 그때 카톡 알림이 뜬다. 이번 주말에 우리 브프 2기(브런치프로젝트 2기) 모임이 있었지?

신라호텔에서 이은경선생님과 조교님, 매니저님을 모시고 5주년 감사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다음번 10주년에는 하와이에서 한다고 했던가? 벌써 동기들과의 모임이 기다려진다.


생생히 꿈을 그리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5년 전 깜깜한 새벽에 노트북에 심각한 얼굴을 들이밀고 타닥타닥 글을 쓰던 한 여인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가에 비친 얼굴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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