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서서 생각하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구가 같이 철학원에 점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무슨 미신을 믿냐면서 거절을 했지만 친구가 자기가 볼 건데 그냥 옆에만 있어 달라 하기에 나는 한국 철학원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했고 겸사겸사 그를 따라 철학원이란 곳을 방문을 했다.
내가 방문한 철학원은 그냥 평범했고 내 친구는 철학원장에게 그의 운명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원장은 그의 사주를 풀어 그에 미래에 대해서 말을 해주었다.
그의 사주에 대해 모든 풀이가 끝나 돌아가려고 하는데 철학원장이 나보고 생년월일생시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별로 궁금한 것이 없다고 거절을 했지만 온 김에 한번 재미 삼아 한번 사주를 보라는 친구의 설득에 나는 철학원장에게 나의 생년월일과 생시를 주었다.
한참을 이것저것 적던 그는 나에게 대뜸 ‘펜 잡다 왔네’ 하는 것이 아닌가?
헉 나는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으로 친구에게 네가 말했냐고 했지만 친구는 말한 적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장은 나에게 펜으로 여러 사람 아프게 했네 그러면서 내가 계속 펜을 잡고 그 펜으로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면 그 아픔이 내 아들에게 갈 거라고 가능하면 펜을 잡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 펜으로 사람을 아프게 하면 내 아들이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고민을 하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외국에서 자그마한 교민 신문사를 운영을 했었다. 늘 인쇄비 막을 걱정에 머리가 빠지고 어떻게 하면 광고주를 더 구해서 신문사를 키울까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교민들을 우습게 보고 시간만 때우다 가는 관존민비를 일삼는 주재공관장의 행태를 전 세계에 알려서 그의 옷을 벗기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행적을 쫓아다니기도 했었다.
또한 나는 ‘나의 생각’이라는 칼럼으로 한인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실상을 폭로했고 교민사회를 비판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펜으로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을 아프게 했던 나는 밀린 인쇄비와 월세 그리고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신문사를 닫고 미리 광고비를 받았던 광고주들에게 사기군이라는 불명예를 받고는 머리도 식히고 글공부도 더 할 겸 한국행을 택하기로 했고 이렇게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다.
한동안 펜을 놓고 살다가 이곳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이곳을 통해 여러 가지 글을 쓰고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현재 여러 언론사를 보면 그 펜으로 여러 사람을 아프게 하고 있고 또한 댓글이라는 펜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죄를 만들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있다.
나는 더 이상 남을 아프게 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 철학원 원장의 말 대로 내 펜이 사람들을 아프게 하면 그것이 내 아들의 아픔이 되어 돌아온다는 그 말을 믿어서는 아니고 글을 쓰다 보니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글보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쁜 글을 쓰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필자의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예쁜 글, 희망을 주는 글,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두서없는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