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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제자가 나보다 더 잘났다면?

-물구나무서서 생각하기

by 물구나무

영화 승부를 봤다.
이병헌과 유아인, 두 배우의 연기가 정말 대단했다.
특히 유아인.
사건사고만 없었다면, 지금쯤 훨씬 더 높은 자리에 있었을 배우.
참 아쉽고, 그래서 더 눈길이 갔다.

그 영화 속 대사가 자꾸 머리에 남는다.
"배우려 하지 말고, 이기려 해라."
왜일까?
왜 그 말이 그렇게 마음속을 맴도는 걸까?

나도 생각했다.
만약 내 제자가 나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리고 언젠가 나를 이긴다면?

나는 솔직히 기쁠 것 같다.
내가 가르친 이가 나를 넘어섰다는 건,
그만큼 잘 키웠다는 뜻이니까.
그걸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화 속 이병헌은,
자신에게 승리한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나의 자부심이었다."
그 말에 유아인이 감동받는 장면을 보며
나도 마음 한편이 찡해졌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때. 지금은 30대 초반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 아들이 떠올랐다.
제자가 아니라, 내 아들이
나보다 더 잘나고,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정말 진심이다.
나는 아들이 내 인생을 닮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걸어온 거친 길 말고,
더 넓고 평탄한 길을 걸었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눈에 비친 아들은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자주 다그치고, 상처되는 말도 한다.
“이 모자란 놈아…”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나도 마음이 무너진다.

아들은 그런 나를 원망한다.
“아버지는 절 한 번도 믿어준 적 없어요.
저는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울먹이며 하던 그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나는 안다.
그 애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지.

그런데도 내가 더 독해지는 건,
내가 걸었던 험한 길을
아들이 반복하지 않길 바라서다.
내가 대신 맞았던 바람을,
그 아이는 피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울 엄마는 말한다.
“좀 다정하게 대해줘. 아들이 너무 힘들어해.”

나도 안다.
아이를 칭찬해 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게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그래서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아들아,
넌 지금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고,
너는 나의 자랑이 될 수 있는 아이다.
결과보다도, 너의 진심과 노력이
아버지 마음을 울린다.

지금 네가 가는 길이 느려 보여도,
어쩌면 그건 더 단단히 뿌리내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실패해도 괜찮다.
돌아가도 괜찮다.

넌 반드시 너만의 방식으로 빛날 거야.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아버지는 너에게 말할 거다.

“넌 내 인생 최고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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