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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써니 Aug 12. 2024

간절함이 새벽을 깨우다

예전엔 못하던 일을 지금은 해내는 이유

20년을 올빼미로 살았다. 


독서실에 다녀오면 12시가 넘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매일 밥을 새로 짓고 찌개도 새로 만들었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밥을 먹으며 TV 보는 게 행복했다. 내일 아침 일어날 것보다 지금 당장을 누리는 게 더 좋았다. 자는 시간이 새벽 1시를 훌쩍 넘겼다. 


고등학교 때 학생부 선생님 별명은 미친 마녀였다. 걸리면 얼굴로 손이 날아왔다. 지각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아침마다 학교로 뛰어가면서 내일은 절대 지각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지만 여전히 다음 날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고 뛰고 있었다. 버스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날에는 지각이다. 어김없이 손바닥이 얼굴로 날아왔다. 하필 그 장면을 담임 선생님이 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또 뛰었다. 


미친 마녀보다 아침잠이 더 강력했던 거다. 


대학생활은 말해 무엇하랴. 늦은 시간까지 누리다 강의 시간에 맞춰 겨우 일어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아이를 낳고 밤 시간이 더욱 소중해졌다. 신랑이랑 먹는 야식이 내 삶의 행복이었다. 신랑이 야식으로 해주는 소시지, 떡볶이는 포기할 수 없었다. 치킨, 회도 시켜 먹었다. 육아에 지친 나에게 주는 보상 같았다. 그러니 아침에 또 못 일어났다.


그랬던 내가 새벽 기상을 선택했다. 시작은 신랑에게 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같이 하자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나도 하니 너도 하라고 말이다.



하면 할수록 새벽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특별한 걸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시간에 일어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처음엔 밀린 집안일도 했다. 아까웠다.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고, 책을 펼쳤다. 한 것도 없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기상 시간을 조금씩 당기기 시작했다. 6시에서 5시 50분, 5시 30분, 5시 15분, 5시. 


조느라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도 다음 날 다시 알람을 맞췄다. 이대로 포기하면 나에게 실망할 것 같았다. 큰소리쳐 놓은 게 민망해서라도 꾸역꾸역 일어났다.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변해야 했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기상 시간이 당겨질수록 자는 시간도 당겨졌다. 12시 넘기는 게 기본이었는데 10시만 되면 졸렸다.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남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신랑은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새벽 기상을 하는 이유는 신랑이 아니라 나에게 있었으니. 


퇴근길, 신랑이 나를 데리러 온다. 

"마누라, 나 이제 공부 시작하려고. 이제는 준비가 된 것 같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신랑, 이렇게 마음먹을 거라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신랑과 마주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혼자 새벽 기상을 한 지 100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10월의 어느 날, 그렇게 신랑도 미래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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