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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10. 2023

[ott]  《박하경 여행기》 1~4화

당근, 콩나물, 무채, 고추장 한 스푼 비빔밥 같은 건강한 여행기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여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매주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계속 이동하고 걷고 움직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의지와는 정반대인 당일치기 여행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2021년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분 작품상을 수상한 이종필 감독의 첫 드라마연출작이자 배우 이나영의 4년 공백기를 깬 작품이다. 각 에피소드는 25분으로 총 8회 분량이다. (몰아보기 한다면 200분! 최근 개봉한 아바타2보다 8분 길다.) 이하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못 보신 분들은 뒤로 가기!


1부 마음 내다 버리기 - 해남


금빛으로 물든 논. 그 옆의 노란 마을버스. “잘못 내렸나?” 시작부터 순조로움과는 멀어진다. 이럴 땐 마음을 비우고 걸어야 한다. 걸어 걸어 도착한 절(미황사). 하경은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지만 스테이는 하지 않는다. 묵언 수행자, 요가 선생님, 소설가, 웃음을 연습하는 진영 보살. 하경은 깨달음을 얻은 듯 보이는 사람과 얻기 위해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섞인다. 이게 당일치기 여행자의 내공인가? 소설가와 함께 스님에게 차를 얻어마신다. 인터넷에서 산 동정오룡. 맛있다. 그리고 템플스테이라면 빠질 수 없는 명상. 스마트폰은 반납하고, 눈을 감고 마음을 버려본다. ‘일, 이, 삼, 사, 오, 육, 동정, 동정우룽? 우롱?’ 잡념이 떠오르면 다시 시작한다. ‘일, 이, 삼, 사, 오, 육, 칠, 캑’ 쉽지 않다. 인터넷에서 산 맛있는 동정오룡처럼, 당근, 콩나물, 무채, 고추장 한 스푼과 깨 솔솔 뿌린 별 거 아닌데 맛있는 비빔밥처럼, 독특해 보지만 평범한 사람과 지낸 반나절. 좋다!


2부 꿈과 우울의 핸드드립 -군산


하경은 진로상담 중이다. 윤서는 대학을 안 가고 음악을 하려고 한다. “음악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잖아” 하경은 현실을 말한다.

아, 저는 성공을 안 할 거예요

윤서의 대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 온 윤서는 딱 한마디를 한다. “쌤, 저 자퇴할래요” 아 사라지고 싶다.

'군산은 처음이다. 옛날 동네가 남아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하경의 옛 제자도 이곳에 있다. 제자의 전시를 축하해 주기 위해 노란 안개꽃을 한 다발 들고 전시장에 들어선다. “김연주 작가는 천재예요”라고 말하는 연주 친구 아리. 연주는 오랜만에 만난 하경을 반긴다. 작품을 설명하는 연주는 학생 시절 선생님 앞에서 발표하듯 긴장하고, 하경은 그림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얘기만 해주고 싶다. "좋은데 나한테도 막 뭐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 노란 안개 꽃말처럼 '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를 퍼부어준다.

하경은 전시장에서 큐레이터, 군산지부장, 고양이 채널 운영자 매미를 소개받는다. (여담이지만 군산지부장은 김용삼 배우, 매미는 엄하늘 배우가 연기했는데 두 분은 영화감독이다. 김용삼 감독은 본인의 영화 '혜영'에서도 주인공으로 출연, 엄하늘 감독은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단편을 제작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는 꼭 추천하고 싶다!)

연주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심오하다. "으라파 라구라구", "....", "으라파 라구라구", "..." 점점 연주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작아지는 연주에게 힘을 주고 싶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예술이 하고 싶은 거잖아. 계속해 봐


그때의 응원처럼 연주에게 닿기를. 연주에게 닿은 응원은 노래가 되어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 윤서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너 작곡한 건 있어?"


3부 메타멜로 - 부산


제2의 수도, 영화의 도시, 갈매기와 바다. 그리고 밀면 맛집. 맛집의 메뉴판은 단출하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없을 순 없지. '물?, 비빔", 물?, 비빔?' 선택은 비빔, 무얼 선택했든 결과는 맛. 있. 다. "서울에는 왜 밀면집이 없을까? 있는데 모르나?"

여행지에선 사소한 우연도 인연으로 믿게 하는 마술 같은 것이 있다. 밀면집에서 한번 헌 책방에서 또 한 번, 지하도에서 또또 한번. 하경은 그렇게 우연히 영화감독 지망생(창진)을 만난다. 여러 번의 우연 때문일까,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봐도 어색하지 않다. 그들이 본 영화는 마술사들이 달 탐사를 가기 위해 대포를 쏘는 이야기인 ' Le Voyage dans la Lune(달 세계여행)'이다. 1902년 제작된 당시 사람들은 달로 여행 가는 건 '마술'같은 일이라고 생각 던 걸까? 1969년 마술사가 아닌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한 걸 봤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나타난 창진은, 갑자기 사라지고 또 갑자기 나타났다. 이것도 마술일까? 신기하게도 창진이 하는 말들은 하경의 것과 닮아있다. '귀엽다'라는 세 글자로 반대말, 변해버린 의미, 옛 짝꿍까지 소환하고 나니 밤이다. 걷다가 귤을 사서 건넨 창진은 다음날 '우연히' 만나자 이야기하고 귤을 건네받은 하경은 계획에도 없는 1박 2일 여행을 하게 된다. 10시 남포동 부산극장.

하지만 다음날 하경은 혼자 영화를 봤다. 가방 속 귤을 보니 창진을 만난 건 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일주일 후, 하경은 이번엔 서울에서 물밀면을 먹는다. 역시 맛있다.  서울에도 밀면집이 있으니 '언젠간 만나겠지. 영화는 계속되니깐' 우연히 (컷!)


4부 돌아가는 길 - 속초


코로나가 창궐하던 때 어디든 가려면 QR코드를 찍어야 했다. 일종의 필수 입장권처럼 신분증보다 스마트폰 속 앱이 중요했던 시절(?)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의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딸~ 이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하경도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며 아버지의 전화를 받는다.

하경은 속초에 왔다. 기억하는 첫 여행지. 일 때문에 바쁜 아빠가 시간을 쪼개 간 여행은 마지막 가족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이던 시대에 갑자기 몰아친 IMF는 조금씩 모든 걸 바꿔버렸다.  그 시절 부모의 나이가 되니 알겠다. 나는 내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 벅찬데, 부모님은 이 이상의 것을 짊어졌었다니.

하경은 속초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기다린다. TV를 보며 '세상이 말세'라고 호통치는 할아버지와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듯 옆에 앉아 있는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언쟁하는 슈퍼 주인아저씨. 가만히 듣고 있던 하경에게 역시나 불똥이 튄다. 어르신, 아니 선생님은 완고하시다. 나라 걱정에서 배부른 배부른 청년들까지 소환하다 결국 '여자들이 더 문제야'까지 나왔다. 하경은 참지 못하고 주고받은 말은 풍선처럼 커져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늙은이 꼭 이겨 먹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너는 안 늙을 것 같으냐!



이런 논쟁의 끝은 늘 이런 식이다. 버스가 도착했다. 하필 같은 버스라니. 간단한 인터넷 수리 접수에 '바쁜데 미안하다'라는 아빠의 문자를 받은  하경은 눈물이 터진다. 불편한 마음은 후회로 변해간다. 서울에 도착한 하경은 어르신, 아니 선생님에게 달려가 예의가 없었다며 고개 숙여 사과한다. 선생님은 짐 가방을 뒤져 검은 봉지를 건네신다. "집에서 직접 만든 거니 먹어" 집에 도착해 맥주와 함께 검은 봉지 속 김부각을 먹으니 "시원하다"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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